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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콩쿠르 "비용 댈 테니 출전을"···한예종 연 70명 입상

중앙일보 2016.07.07 02:25 종합 4면 지면보기

이젠 창의 한류다 <중> 클래식 본 고장서 약진하는 K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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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 윤(성악가)

  지난달 4일 오후 영국 런던 로열오페라하우스. 루마니아의 제오르제스 에네스코가 80여 년 전 작곡한 ‘오이디푸스’가 공연 중이었다. 눈길을 끈 건 14명의 주요 배역 중 크레온 역의 사무엘 윤 과 포르바스 역의 심인성 등 한국인 두 명이 동시에 캐스팅됐다는 점. 풍부한 성량을 과시한 둘에게 박수가 쏟아졌다. 세계 최정상급 오페라 무대에 한국 성악가 둘이 나란히 오른 건 이례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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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선(프랑스 임마누엘 갓 무용단원)

지난달 30일 독일 남동부에 위치한 드레스덴시. 170여 년 역사의 젬퍼오퍼 발레단에 예정에 없던 소집령이 내려졌다. 이 자리에서 아론 와킨 단장은 “이상은(30)을 프린시펄(수석무용수)로 승격한다”고 깜짝 발표했다. 독일 진출 6년 만의 희소식. 이상은은 발레리나로선 큰 키(1m81㎝) 때문에 ‘주역을 딸 때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 늘 불안했다. 와킨 단장은 “그게 변별점 아닌가. 큰 키를 능가하는 실력을 갖췄다”고 말했다.

유럽파 10인이 말하는 성공 비결
최영규 “자정까지 연습 한국인뿐”
서예리 “폭발적 감성 세계인에 통해”
최빛나 “사회적 목소리에 민감”

K아트가 진격하고 있다. K팝·K드라마에 비해 약세를 보이며 한류 사각지대로 남아 있던 클래식·무용 등 한국 기초예술의 약진이 두드러지고 있다. 지난해 조성진의 쇼팽 콩쿠르 우승은 상징적 사건일 뿐 최근엔 “출전만 하면 휩쓴다” “한국이 안 나오면 권위가 떨어진다”고 할 만큼 한국의 ‘콩쿠르 독식’ 현상마저 빚고 있다. “한국인이 없는 유럽 오케스트라·발레단을 꼽는 게 어려울 정도”(한정호 칼럼니스트)라는 전언도 있다.

어떻게 클래식 본고장에 K아트는 뿌리내릴 수 있었을까. 현재 유럽에서 왕성하게 활동 중인 한국인 아티스트 10명을 만나 심층 인터뷰를 했다. 생생한 현장의 목소리를 통해 K아트의 원동력을 따져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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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규(네덜란드국립발레단 수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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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규(네덜란드국립발레단 수석)

  ◆경쟁시스템=체계적인 교육과 치열한 생존 경쟁. 이들이 꼽은 K아트 성공의 1순위 요인이다. 네덜란드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인 최영규(25)씨는 “아침 8시부터 밤 12시까지 독하게 남아 있는 이는 한국인밖에 없다”고 자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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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은(파리오페라발레단 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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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은(파리오페라발레단 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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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은(파리오페라발레단 쉬제)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의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는 지적이다. 특히 국제 경연대회 성적은 독보적이다. 최근 3년간에도 한예종 무용원은 매년 50명 안팎, 음악원은 20여 명의 입상자를 배출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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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예지(스페인국립무용단 솔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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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예지(스페인국립무용단 솔리스트)

 무용원 김선희 교수는 “올 초에도 해외 콩쿠르 측에서 ‘비용을 제공할 테니 제발 출전만 해달라’고 읍소해 왔다”고 말했다. 콩쿠르 입상은 곧 해외 예술단체 입단으로 연결돼 지난해 무용원 출신 입상자 중 14명이 입단 테스트를 받거나 예비학교 과정을 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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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원(노부스콰르텟 비올리스트)

◆뜨거운 감성=유럽을 근거지로 활동 중인 현악 4중주단 노부스콰르텟. 지난 5월 독일 뮌헨에서 모차르트·멘델스존 연주회를 했다. 어느 때보다 냉정한 절제력을 보여 멤버 전원이 만족했다. 하지만 현지 언론은 “한국에서 건너온 젊은 연주자들의 넘치는 에너지가 돋보였다”는 반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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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리(성악가)

고음악 전문 성악가로 활동 중인 서예리(40)씨는 2013년 스위스 루체른 페스티벌을 자신의 최고 무대로 기억한다. “임신 8개월째였다. 몸은 무거웠지만 배 속에 생명이 있다는 것이 나를 벅차 오르게 했다”며 “관계자들이 벌벌 떨며 걱정했지만 정작 무대를 보고는 놀라워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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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희영(로테르담필하모닉 첼로 수석)

계원예술대 성기완 교수는 “이성과 논리를 넘어선 21세기 감성의 시대와 한국인의 속성이 궤를 같이한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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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빛나(카스코아트센터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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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빛나(카스코아트센터 관장)

◆사회적 참여=네덜란드 카스코아트센터의 최빛나(39) 관장은 지난 2년간 가사노동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아파트에 몇 달간 묵으면서 주부들의 일상을 세밀하게 관찰하고, 이를 다큐멘터리로 찍고 책을 만들어 토론회를 열었다. 심지어 외국인 차별에 반대하는 시위도 참여했다. 최 관장은 “사회적 목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특성이 작업 과정에 배어 나왔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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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아영(설치미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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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떡타령이 록 만나니 “올레”
② “한국적 색깔의 중심엔 한글” “체제 순응적 모습 극복을”


설치미술가 김아영(37)씨는 지난 6월 말부터 팔레드 도쿄에서 ‘이 배가 우리를 구해주리라’는 제목의 개인전을 열었다. 사진 편집을 하고 음악 편곡에도 관여했지만 심혈을 기울인 건 대본 작업이었다. “미술적 장치보다 서사구조를 통해 뚜렷한 메시지를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한국인의 사회비판적 성향이 예술 분야에서 차별화 요소로 적용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안호상 국립극장장은 “무색무취한 글로벌 콘텐트에 비해 로컬리즘을 표방한 한국 문화가 경쟁력을 갖게 될 것”이라고도 전망했다.

베를린·암스테르담=최민우 기자 런던=고정애 특파원, 류태형 객원기자 minw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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