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클린턴 ‘e메일 족쇄’ 풀린 날…오바마와 공동 유세

중앙일보 2016.07.07 02:00 종합 10면 지면보기
기사 이미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5일 노스캐롤라이나주 샬럿에서 공동 유세를 마치고 헤어지기 전 인사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8년 전 자신을 위해 유세에 나선 클린턴에 대한 답례의 뜻으로 지원에 나섰다. 현직 미 대통령이 대선 후보를 위해 함께 지지 연설을 한 건 28년 만이다. [AP=뉴시스]

무대에 선 두 사람은 8년 전과 같았다. 버락 오바마와 힐러리 클린턴. 2008년 6월 27일 ‘통합’을 뜻하는 뉴햄프셔주 유니티(Unity)시에서 클린턴은 오바마의 손을 맞잡고 오바마 지지를 호소했다. 어깨를 감싸 안고 얼굴을 맞대기도 했다. 주연은 오바마, 조연은 클린턴이었다. 두 사람은 나란히 워싱턴을 떠나 한 비행기로 이동까지 했다. 클린턴은 시종 “우리의 목표는 오바마가 미국의 차기 대통령이 되는 것”이라고 치켜세웠다. 오바마는 감격했다.

오바마 “바통 넘겨줄 준비 됐다”
8년 전 클린턴의 지원 유세 보답
FBI선 클린턴 불기소 권고했지만
“e메일에 비밀 정보 110건 포함”
클린턴 판단력·능력에 의문 남겨
트럼프 “사법시스템 조작” 꼬집어

8년이 지난 5일(현지시간). 이번에도 두 사람은 워싱턴에서 같은 비행기를 타고 노스캐롤라이나주 샬럿으로 공동 유세를 떠났다. 다만 비행기는 에어포스 원(대통령 전용기). 오바마는 조연에 치중했다. 에어포스 원 트랩을 내릴 때도 클린턴 앞에 서지 않도록 걸음을 조절하는 섬세함까지 보였다.

와이셔츠 차림으로 소매를 걷고 연단에 선 그는 “남성이든 여성이든 역사상 클린턴만큼 대통령 자격을 갖춘 사람은 없다”고 치켜세웠다. 또 “나는 이제 바통을 넘겨줄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2008년 경선을 거론하며 “경선을 거치면서 그녀를 더 존경하게 됐다. 경선기간에 그녀가 얼마나 똑똑하고 준비된 사람인지를 상세히 관찰할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오바마는 지지자들을 향해 주먹을 쥐어 흔들며 ‘힐러리, 힐러리’ 연호를 이끌었고 클린턴과 진한 포옹도 했다.

이날 유세는 오바마로선 8년 전 자신을 위해 공동 유세에 나선 클린턴에 대한 답례였다. 현직 대통령이 대선 후보를 위해 함께 지지 연설을 한 경우는 1988년 조지 HW 부시를 지지한 로널드 레이건 이후 28년 만이다.

클린턴은 이날 오바마의 공동 유세 외에도 ‘e메일 스캔들 불기소’라는 선물을 얻었다. 미 연방수사국(FBI) 제임스 코미 국장은 기자 회견을 열고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장관 재임 중 개인 e메일 서버로 송수신한 e메일 가운데 비밀 정보가 있었지만 ‘고의적 법 위반’의 의도는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법무부에 ‘불기소 권고’를 하는 것으로 결론 내렸다”고 말했다. 클린턴으로선 지난해 3월 뉴욕타임스(NYT) 보도로 처음 불거진 e메일 스캔들의 수렁에서 일단 벗어난 셈이다. 클린턴 캠프의 브라이언 팰런 대변인은 이날 “누누이 얘기했듯 개인 e메일 계정을 사용한 건 실수이며 이 문제가 해결돼 기쁘다”는 환영 성명을 발표했다.

하지만 클린턴이 법적 책임은 면했지만 코미 국장의 회견 내용은 “날카로운 ‘구두 기소’였다”(CNN)란 의견이 지배적이다. 그동안 클린턴이 입버릇처럼 반복해왔던 “(개인 e메일 서버로) 송수신할 당시는 그 어떤 것도 비밀로 분류된 게 없었다”(나중에 비밀로 분류됐다는 뜻)는 주장이 사실과 다른 것으로 드러났다. 코미 국장은 “클린턴 전 장관이 국무부에 제출한 e메일 3만여 건 중 52개 그룹 110건이 당시 비밀 정보를 포함하고 있었다. 특히 8개 그룹은 1급 비밀정보(top secret)를, 36개 그룹은 2급 비밀 정보를, 그리고 8개 그룹은 3급 비밀 정보를 각각 포함했다”고 밝혔다.

대쪽으로 소문난 코미 국장은 나아가 “국가 기밀을 다룬 그녀의 행태는 극도로 부주의했다. 명백히 입증은 안 되지만 적대 세력(해커)들이 그녀의 개인 e메일 계정에 접근하는 게 가능했다고 본다”며 클린턴을 강하게 비난했다.

미 언론들도 “코미 국장은 대통령 자질의 두 기둥인 (클린턴의) 판단력과 능력에 대해 기소한 것이나 마찬가지”(NYT), “e메일 이슈는 선거일까지 클린턴을 따라다닐 것”(워싱턴포스트)이라고 평했다.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아니다”란 말과 같다는 비아냥도 나온다.

클린턴의 경쟁자인 도널드 트럼프는 이날 유세에서 “FBI는 부정직한(crooked) 힐러리가 국가 안보를 손상했다고 말하면서도 기소는 않는다고 한다. 사법시스템이 조작됐다”고 꼬집었다.

워싱턴=김현기 특파원 luckyman@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