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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인성 기자의 교육카페] 초등생 수행평가 더 이상 ‘엄마 평가’가 되지 않으려면

중앙일보 2016.07.07 01:32 종합 22면 지면보기
“아빠, 일어나! 남대문시장 가자!” 어느 주말, 모처럼 낮잠을 즐기던 저를 딸이 깨웠습니다. 영문도 모른 채 옷을 갈아입던 제가 아내에게 물었습니다.

“굳이 남대문시장까지 갈 필요 있나. 10분만 걸으면 동네 시장에 갈 수 있고, 차 타고 5분이면 마트도 가는데….”

“쇼핑이 아니라 과제야, 과제. 수업에서 발표해야 하는데, 점수 매겨 성적에 넣는 거래.”

아, 학교 수행평가였군요. 요새 초등학교 사회과 수업엔 ‘우리 고장의 중심지’를 조사·발표하는 게 있어요. 선생님께서 몇 곳을 정해 줬는데, 하필 딸은 남대문시장을 골랐네요. 길이 꽤 막힐 텐데…. 역시나 딸과 아내를 내려주고 공영 주차장에 차를 두고 돌아가는 데 30분 이상 걸렸죠. 그래도 딸도 저도 즐거웠습니다. 아동복·문구 상가를 돌고, 남대문도 보고, 갈치조림 골목에서 저녁을 먹었죠.

본격적인 숙제는 집에 돌아와 시작됐죠. 학교에선 ‘보고서 작성과 발표 준비는 수업 시간에 한다’고 안내했습니다. 당연히 저는 아이가 찍은 사진, 인터넷에서 찾은 글 정도를 챙겨 보내면 될 거라 생각했고요.

아내의 생각은 달랐답니다. 학부모 ‘단톡방’을 보니 어떤 부모는 아이에게 발표 연습을 시키더군요. 수업에서 작성할 보고서 초안을 미리 써주는 분도 있고요. 저는 “초등학교 성적은 중요하지 않아. 애한테 맡기자”고 주장했지만, 아내는 “칭찬받기 좋아하는 애가 주눅 들지 모른다”고 걱정하더군요.

올해 교육부는 ‘학교생활기록부 작성 및 관리지침’을 개정했습니다. 초등학교는 물론 중·고교도 선다형·서술형 시험(지필평가) 없이 수행평가만으로 성적을 매길 수 있게 됐죠. 가급적 수행평가를 늘리라는 권고인데, 저는 좋은 일로만 여겼답니다. 인공지능의 시대를 살아갈 자녀들까지 부모 세대를 숨 막히게 했던 ‘정답 고르기’에 매달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을 테니까요.

하지만 학부모의 반응은 신통치 않았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수행평가는 사실상 엄마 평가’라는 불만이 많았거든요. 지난해 한 사교육업체의 설문에 따르면 부모의 절반 이상(54.7%)이 자녀 수행평가에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성적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63.9%), “다른 학생도 부모 도움을 받기 때문에”(51.1%) 어쩔 수 없다는 겁니다.

논란이 일자 교육부는 ‘과제형 수행평가’는 지양하고 ‘수업 과정형 수행평가’를 늘리라는 지침을 다시 보냈어요. 꽃씨 심어 관찰하기, 미술 작품 같은 과제 평가는 부모·학원이 대신 할 수 있으니 수업 중 발표·토론·실습으로 평가하라는 겁니다. 그래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듯합니다. 세부적인 가이드라인이 없고 교사들의 경험도 부족하니 제 딸의 수행평가처럼 ‘부모 평가’로 되돌아가는 일이 생기죠.

미래 세대의 창의력을 키우려면 학교 수업부터 개선해야 합니다. 성적 경쟁이 심한 한국에선 시험·평가부터 고쳐야 수업도 바꿀 수 있고요. 학부모·사교육의 개입 여지를 줄이면서 수업도 살릴 수 있게 수행평가를 정착시키려는 교육당국·학교·교사의 지혜와 노력이 절실합니다. 

천인성 교육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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