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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속 숨어있는 1인치를 또 작품으로

중앙일보 2016.07.07 01:27 종합 23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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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규태씨의 ‘블로우 업 아메리카’ 연작 중 한 점. [사진 한미사진미술관]

히피처럼 보이는 연인이 키스하는 모습 오른쪽 옆으로 샌들 신은 발 하나가 튀어나와 있다. 사진가 황규태(79)씨는 처음 이 사진을 찍었던 1960년대 중반에는 이 발의 존재를 몰랐다. 이번에 서울 위례성대로 한미사진미술관에서 여는 개인전을 위해 옛날 흑백 필름을 컴퓨터 작업하다 사진 구석에서 이 발을 발견했다. 발은 확대되어 새로운 작품으로 거듭났다. 작가는 지난 달 25일 개막한 전시회 제목을 ‘블로우 업 아메리카(bLow UP aMeriKa)’라 했다. ‘블로우 업(blow-up)’은 사진이나 그림 등의 확대를 말하는 용어다.

황규태 사진전 ‘블로우 업 아메리카’
흑백 인종 불평등 상황 확대해 포착
미국 생활서 느낀 고독·소외감 표현

이탈리아 감독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1966년 작 ‘블로우업’에는 현장에서 사진을 찍고도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살인사건을 몇 번의 확대현상 작업으로 희미하게 포착하는 사진가가 나온다. 황 작가는 자신을 영화 속에 포개놓고 시치미를 뗀 채 ‘블로우업 된 아메리카’를 보여준다. 경향신문 사진기자를 지내다 미국으로 떠났던 그에게 신대륙의 이미지는 영어 알파벳 대소문자를 뒤섞어놓은 재치와 장난기로 갈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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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퉁이를 확대한 작품. [사진 한미사진미술관]

흑백 인종 간의 불평등한 상황은 ‘블로우 업’ 과정을 거치며 더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호기심 넘치는 눈으로 들쑤신 미국은 카메라 앞에 무장해제된 채 무기력한 우울을 보여준다. 작가는 『블로우업-재해석한 1960년대』(눈빛)를 펴내며 “눈속임과 허풍이 원래 내 태생인데, 그래서 내가 찍은 사진들은 황당무계하다” 고 농담 반 진담 반 썼다. 컴퓨터와 스캐너와 포토샵을 무기 삼은 그는 실체와 환영 사이를 오가며 우리 눈을 교란시킨다. 스트레이트 사진이면서도 초현실적인 요소가 넘실거려 요상해 보이는 그의 작품에는 이방인이 느낀 고독과 소외감이 물씬하다.

그는 바깥을 찍으면서도 자신의 내면을 비추는 걸 잊지 않았다. 확대는 그 과정에서 맞춤한 속임수의 안개를 피워 올렸다. 그는 “카피(copy)와 찍음(creativity)의 차이를 구분함이 무의미하다. 결과의 차원도 무의미하다. 인생의 결과도 그런 것 아닐까”라고 사진으로 들이대는 듯하다.

도록에 ‘인용과 확대의 미학’이란 글을 쓴 박상우 중부대 교수는 이 시절이 황규태에게 “완전히 새로운 사진, ‘뉴 포토’로 진입하기 위한 사진에서의 과도기에 불과했다”고 평가했다. 그 ‘새로운 사진’이란 1960년대 후반부터 시작한 강력한 실험정신으로 무장된 주관적 컬러사진이다. 박 교수는 황규태의 ‘뉴 컬러’ 사진이 세계사진사에서 다른 작가들보다 8년쯤 먼저 시작됐다고 분석했다. 전시는 8월 13일까지.

13일 오후 2시 미술관 20층 라운지에서 황규태 작가와의 만남이 열린다. 02-418-1315.

정재숙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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