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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과장 승진을 거부한다”는 현대차 노조

중앙일보 2016.07.07 00:54 종합 29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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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환
경제부문 기자

많은 직장인이 동료보다 빨리, 높이 승진하기 위해 전력투구한다. 그런데 ‘승진을 거부할 권리를 달라’고 요구하는 노동조합이 있다. 현대자동차 노조다. 현대차 노조는 올해 노사 임금협상 요구안에 ‘승진 거부권’을 포함시켰다. 대리에서 과장으로 승진하면 노조 조합원 자격이 사라지는데 조합원으로 남을 수 있도록 승진을 거부할 권한을 달라는 내용이다.

노조가 ‘만년 대리’로 남겠다는 속내는 무엇일까. 현대차는 과장부터 연봉제를 적용한다. 5단계로 인사고과가 이뤄지고, 고과에 따라 연봉도 달라진다. 과장부터 신경쓸 일이 많아지는 것이다. 하지만 대리로 남으면 강성 노조 울타리 안에서 고용 안정을 보장받을 수 있다. 노조로선 이들을 조합원으로 유지하면서 세를 키울 수 있어 좋다.

선우명호 한양대 미래자동차공학과 교수는“인재를 키워내고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건 기업 경영의 핵심이자 고유 권한인데 노조가 황당한 요구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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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회룡 기자]

현대차 노조의 황당한 요구는 이뿐이 아니다. 현대차 직원 연봉은 평균 9600만원으로 국내 최고 수준이다. 노조 조합원은 웬만하면 만 60세 정년도 보장받는다. 그런데 기본급 7.2%(15만2050원·호봉승급분 제외) 인상, 당기순이익 30% 성과급 지급을 요구안으로 들고나왔다. 임금피크제에 대해선 “정년을 1년 연장해 61세까지 보장하지 않으면 꿈도 꾸지 마라”고 엄포를 놨다. 회사 형편이라도 좋다면 모를까 그것도 아니다. 현대차는 지난해 4년 만에 최악의 실적을 냈고, 내수시장 점유율은 처음 40% 아래로 떨어졌다.

노조는 아랑곳하지 않고 파업 수순을 밟고 있다. 5일 노사 임금협상에서 교섭 결렬을 선언했다. 13일엔 파업 찬반투표를 한다. 노조는 조합원들에게 ‘우리 파업합니다’란 메시지를 보내며 22일 금속노조 총파업에 참여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쳐 왔다. 파업에 들어간다면 2012년 이후 5년째다.

국내 제조업체 ‘맏형’인 현대차 노조를 흉내 내는 동생 노조도 많다. 지난해 조(兆) 단위 적자를 기록해 구조조정 위기에 내몰린 조선업체도 파업을 본격화하고 있다. 현대차와 마찬가지로 대리→과장 승진 거부권을 내건 현대중공업 노조는 현대차와 공동파업을 추진 중이다. 삼성중공업 노동자협의회는 7일 4시간 전면 파업에 돌입한다. 권오갑 현대중공업 사장은 막가는 노조의 행태를 이렇게 꼬집었다.

“아버지가 100만원 벌다가 60만원 벌어오면 거기 맞춰 살아야 합니다. (자식은) 아버지가 사장이었을 때 월급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자식의 ‘배부른 투정’ 때문에 집안이 파탄났다는 얘기를 들어서야 되겠는가.

김기환 경제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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