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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의 시시각각] 서별관 회의는 죄가 없다

중앙일보 2016.07.07 00:49 종합 30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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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
논설위원

서별관 회의의 전성기는 김대중 정부 때다. 1998년 초 강봉균 당시 경제수석이 제안했다. 외환위기가 부른 구조조정이 계기였다. 어느 칼에 누가 죽는지도 모르는 대혼란의 시절, 숙수의 정교한 솜씨는커녕 어설픈 칼잡이들이 설칠 때였다. ‘경제 사령탑이 필요하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가는 중이다. 중지를 모아야 한다. 이러다간 다 죽는다. 기자들을 따돌리고 장관들끼리 허심탄회, 머리를 싸맬 곳이 필요하다. 장소는 청와대 서별관이 좋겠다.’

DJ는 외환위기의 책임을 물어 경제부총리 자리를 없앴다. 하지만 막상 없애놓고 나니 경제 사령탑의 필요성을 인정하게 된 터였다. 강봉균의 건의를 흔쾌히 허락했다. 이규성 당시 재정경제부 장관과 이헌재 금융감독위원장, 진념 기획예산위원장, 전윤철 공정거래위원장, 전철환 한국은행 총재가 주요 멤버였다.

DJ 시절 구조조정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데는 서별관 회의의 공이 컸다. 산업 간, 기업 간, 노동자 간 첨예한 이해관계를 조율했다. 때론 지저분한 갈등과 반목의 오물을 처리하고 흘려보내는 경제의 하수구 역할도 했다. 연 20%대의 살인적인 고금리를 강요한 국제통화기금에 맞서 금리 인하를 밀어붙인 힘도 서별관 회의에서 나왔다.

회의가 끝나면 A4 한 장에 결정 내용을 담고 장관들이 서명했다. 당시 관계자는 “책임은 정무직인 장관이 질 테니 부하 공무원들은 소신껏 일하라는 취지였다”고 말했다. 보신안위·복지부동이 천성인 관료들을 구조조정 같이 ‘위험한 일’에 끌어들이려면 그런 절차가 꼭 필요했다.

서별관 회의는 구조조정의 수술대로도 쓰였다. 강봉균은 99년 1월 대우의 김태구 사장과 삼성의 이학수 본부장을 서별관에 불러놓고 삼성차·대우전자의 빅딜을 몰아붙였다. 밤 12시를 넘겼지만 돌려보내지 않았다. 결국 삼성·대우는 빅딜합의서에 서명했다. 청와대라는 장소가 주는 압박감, 재벌 총수의 대리인들도 견디지 못한 것이다.

그 서별관 회의가 요즘 야당과 언론에 무차별 난타를 당하고 있다. 밀실·비공개·비공식이 주요 죄목이다. 이들이 꼭 찍어 지목하는 범죄 현장은 대우조선해양 지원 방안을 논의한 지난해 10월 22일의 서별관 회의다. 분식회계 사실을 알고도 대우조선에 4조2000억원 지원을 결정한 것, 정부는 쏙 빠지고 산업은행에 총대를 메게 한 것이 나라 망칠 일이란 것이다. 그러므로 국정조사도 하고 서별관 회의는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서별관 회의야말로 지금 꼭 필요하며 더 자주 열려야 한다. 지금이 어느 땐가. 세계 정치·경제의 한 치 앞이 안 보이는 위기다. 브렉시트발 신고립주의의 파고가 얼마나 크고 거셀지 짐작도 하기 어렵다. 그야말로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가는 중이다. 경제 사령탑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한 사람의 머리로는 안 된다. 장관들이 부처의 역량과 지혜를 모두 짜내 한 테이블에 올려놓고 머리가 깨져라 토론해도 될까 말까다.

그뿐이랴. 변양호 신드롬을 극복하는 데도 서별관 회의는 꼭 필요하다. 구조조정은 피와 살이 튀는 전장이다. 훗날 감사원의 감사와 검찰의 수사, 정치적 단죄의 공포에서 누구도 자유롭지 않다. 서별관 회의를 폐지했다고 치자. 누가 구조조정 같이 공(功)은 없고 과(過)만 있는 일에 총대를 멜 것인가. 아무도 안 나서니 결국 모든 사안을 대통령이 직접 결정하게 할 것인가. 그게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나라인가.

한 가지 의구심이 더 있다. 그때 그 서별관 회의는 당시 경제부총리인 최경환 새누리당 의원이 주재했다. 당시 좌장이 최경환이 아니라 순수 경제 관료였다면 어땠을까. 그래도 야당은 그날의 서별관 회의를 꼭 찍어 정치 공세를 펼쳤을까. 최경환의 문제라면 최경환만 공격하고 말 일이다. 밀실·비공개가 문제라면 기록을 남기면 될 일이다. 면피가 문제라면 서명을 남겨 책임지도록 하면 될 일이다. 어느 것도 서별관 회의를 폐지할 이유는 되지 않는다. 단언컨대, 서별관 회의는 무죄다.

이정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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