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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한해살이 평가로 미래 먹거리 만들 수 있나

중앙일보 2016.07.07 00:26 경제 8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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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기
경제부문 기자

요즘 재계의 화두는 단연 ‘변화’다. 글로벌 경쟁 격화와 전반적인 경기 침체 탓에 변하지 않고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위기감이 바탕에 깔려있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인사혁신 로드맵을 내놓았다. 연공서열 중심의 경직된 인사제도를 수평적이고 실용적으로 바꾼다는 게 골자다. 한 예로 종전 7단계인 직급 체계를 4단계로 줄이고, 여름철엔 반바지 착용을 허용하는 등 나름 파격적인 내용을 담았다. SK그룹도 최태원(56) 회장이 직접 나서서 “사업과 조직, 문화 등 기존의 SK틀을 깨달라. 출퇴근 문화에서부터 근무시간·휴가·평가·보상 등이 변화에 맞는 방식인지 의문을 제기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넓게 보면 우리 기업들이 원하는 ‘변화’는 ‘기업가 정신’과도 맞닿아 있다. 하지만 우리 기업들의 유인 체계가 변화를 추구하는데 적절한 것인지 여부는 다시 따져봐야 한다.

현재의 성과 평가는 변화보다는 안정 지향적으로 짜여있다. 성과 평가는 대개 해당 연도의 실적을 바탕으로 하는 ‘단년주의 평가’를 기초로 한다. 연초에 세운 목표에 비춰 얼마만큼의 매출과 이익을 냈는지가 가장 중요한 기준이다. 평가 대상인 실적 자체가 미래보다는 과거의 것이 중심이다. 실적이 나쁘면 좋은 고과를 받기 어렵다. 최고경영자(CEO)나 임원급에게 부진한 실적은 곧 물러남을 뜻한다. 언제 성과가 나올지도 모르는 일을 붙들고 지속적으로 돈과 시간을 투자하는 경영자가 드문 이유다. 그리고 1년 단위의 평가에 익숙하다 보니 긴 시간을 토대로 미래를 보긴 더 어렵다. 하다못해 프로스포츠 구단도 선수를 영입할 땐 과거나 현재보다는 미래 가치를 더 많이 따지는데 말이다.

소위 변화 방안도 각 기업마다 큰 차이가 없다. 복장을 자율화하고 회의 시간을 줄이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약방의 감초다. 이런 소소한 일들이 변화 그 자체인 것처럼 여겨지는 건 더 큰 문제다. 반바지를 입는다고 해서 미래 먹거리가 생기진 않는다.

제대로 된 변화를 원한다면 지금의 임직원 성과평가에 미래를 위한 투자와 관련한 내용을 공격적으로 반영하는 건 어떨까. 손해를 보더라도 긴 안목으로 투자하고 연구하는 것, 그건 기업가 정신과도 연결된다. 세상을 놀라게 한 애플의 아이폰이나 쌍용자동차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올린 티볼리가 한 두 해 만에 나온 것은 아니지 않나. 우리 기업도 한해살이풀 같은 변화는 그만둘 때가 됐다. 그리고 ‘이거다’ 싶은 변화 방향을 찾지 못하고 있다면, 어설피 변하려하기 보단 조금 더 숙고하는 게 여러모로 낫다. 불필요한 변화는 비용일 뿐이다.

이수기 경제부문 기자 retali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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