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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사스타킹]② 로망이 살아 있는 동네를 찾아라

중앙일보 2016.07.07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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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동에서 충격을 받은 후 목표가 바뀌었다. 남들처럼 그냥 회사에서 가까운 아파트를 구해서 편하게 살기로. 회사에서 멀지 않은 독립문 인근을 알아봤다. 선배들도 많이 산다는 동네였다. 20평 미만의 아파트를 찾아 언덕을 올랐다. 산꼭대기에 아파트가 있었다. 부동산을 찾아가 보니 “전세는 없다”는 말만 돌아왔다. 부동산에선 신축 빌라가 몇 개 있다며 빌라를 권했다. 부동산 아주머니를 따라 골목으로 들어서자 새집 냄새가 폴폴 풍기는 신축 빌라들이 곳곳에 들어서고 있었다. “땅이 있으면, 건물을 짓고, 월세를 받는게 최고”라는 세간의 이야기는 우리네 삶에 현실화 되고 있었다.

‘서른 넘은 남자가 근사한 집에 살아서 뭐하냐’, ‘회사 가깝고 편하면 최고’라는 생각은 집을 보면서 좀 흔들렸다. 의.식.주가 제대로 충족되지 않는다면 그건 인간으로서 기본권을 박탈당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배부른 소리지만, 6년쯤 회사를 다니며 너무 험하게 살았다. 출입처 가까이 살고자 멀쩡한 집을 두고 오피스텔에서 전전하기도 하고, 가구 하나 없는 반지하에서 지내기도 했다. 이제는 좀. 제대로. 살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이 정해지자 행동이 빨라졌다. 좀 더 문화적이고 삶을 누릴 수 있는 곳에서 살고 싶었다. 재미있는 이웃이 있으면 금상첨화. 이곳 저곳 거리를 따져가며 후보지를 물색했다. 회사가 강북이니 강남보단 강북이 좋을 것 같았다. (사실 강남은 이상하게 거부감이 있다. 무의식 속에 강남=금수저라는 인식이 있어서일지도 모르겠다) 이곳 저곳 평균적인 집값과 그동안 살아보지 않은 동네, 그리고 재미 있는 동네라는 교집합에서 후보로 떠오른 곳은 3곳이었다. 이태원 인근 보광동, 서울숲 인근 성수동, 성미산 마을이 있는 성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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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동은 최근 뜨는 동네다. 서울숲이 코앞에 있고 2호선이 지나가며 한강도 가깝다. 재건축 수요가 있는 낡은 아파트가 아직 남아 있고, 과거 구두공장 거리는 카페 거리로 탈바꿈했다. 창업센터도 가깝고 건국대학교도 1~2정거장 내에 있어서 약속을 잡기도 편하다. 근처 한강인근 자양동에 살았던 경험이 있어서 뚝섬유원지 같은 한강공원에 좋은 기억이 있었기에 강력한 후보군이었다. 검색을 해 보니 이미 뜨는 동네로 입소문이 나는 중이었다. (물론 이제는 엄청 뜬 동네가 되 버렸다)

첫번째 목표는 낡은 아파트였다. 한참 리모델링과 ‘전셋집 수리하기’에 꽂혀 있던 시절이라 맘에 드는 구조만 찾으면 아파트 전세로 들어가는 것도 좋겠다 싶었다. 두번째는 오피스텔이었다. 주차가 편하고 지하철역에서 멀지않은, 침실이 하나쯤 따로 있는 오피스텔이면 좋겠다 싶었다. 인터넷으로 매물 후보를 압축하고 발품을 팔았다. 회사 업무를 하며 주말에 부동산을 찾아 헤매는 건 쉬운 일은 아니었다. 특히 누군가의 인생이 담긴 집이라는 공간에 불쑥 들어가 보는 건 내 성격과 맞지 않았다.

아파트는 너무 낡았다. 내가 쉬는 내부 공간만 잘 만들면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단점이 눈에 많이 보였다. 주차공간이 없어 고성이 오가기 일쑤였고 언제 재건축을 할지 몰라 2년 동안 살 수 있다는 보장도 없었다. 조금 깨끗한 집은 리모델링을 했다는 이유로 가격이 비싸거나, 입주자가 못 하나도 못박는다고 엄포를 놨다. 언제 나가야 할지 모를 낡은 집에 들어가서 집을 뜯어고칠만한 자신은 없었다. 반면 오피스텔은 매물이 없었다. 월세로 나오는 집은 많았지만, 60~70만원씩 하는 월세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오피스텔 아닌가. 관리비까지 더하면 80~90만원을 거주비에 써야 할 판이었다. 차라리 오피스텔을 살까도 고민했지만 비싼 오피스텔 취득세(4.6%)가 부담스러웠다. 결혼이라도 하면 오피스텔을 처분해야 하는데 오피스텔 거래가 쉽지 않다는 김칫국도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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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씩 들어서는 동네 맛집과 언제든 산책할 수 있는 서울숲ㆍ한강은 매력적이었고, 공장을 개조해서 만든 카페는 하루종일 있어도 지겹지 않았지만 성수동은 내가 살만한 집이 없었다. 일단 너는 후보에서 제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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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로망, 이태원도 목록에 있었다. 원래는 번잡한 걸 싫어해서 너무 화려한 곳으로는 이사 가지 않지만, 이태원 해밀턴 호텔 건너편 쪽에 있는 보광동은 괜찮을 듯 싶었다. 언덕배기에 자리잡은 주택의 옥상에서 보이는 남산타워. 고개를 돌리면 한강. 슬리퍼를 신고 이태원에 나가면 맛집이 즐비하고 핫하다는 가게들이 모여드는 곳. 물론 우려도 있었다. 신입이라면 누구나 거치는 이태원지구대 경험은 이태원을 믿고 이사갈 수 있을지를 고민하게 했다.

경찰기자가 본 이태원은 사건사고의 종합선물세트다. 주말이면 어김없이 발생하는 사건사고들. 술마신 외국인들까지 엃힌 지구대의 혼란상을 보고 있으면 이태원의 그늘이 생각보다 짙다는 걸 알 수 있다.이태원은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만큼, 재미와 함께 거주자가 감수해야 할 몫도 큰 곳이다.

여튼 돌아가서, 몇 곳을 미리 사전 물색하고 보광동을 찾았다. 최근 몇몇 쉐프가 가게를 연 해방촌 인근 지역이었다. 큰 기대를 하고 갔지만 도착하기도 전에 지쳤다. 꼬불꼬불 미로같은 골목길이 이어졌고, 차들은 모두 곡예 운전 중이었다. 경사가 직각에 가깝지 않을까 우려되는 언덕도 몇개를 넘어다녀야 했다. 겨우 목적지 앞에 도착하자 주차할 곳이 없었다. 전화로 물어보니, “거주자 주차를 신청하면 운 좋으면 내년에는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는 답이 돌아왔다.

반쯤 포기한 채 집을 보러 들어갔다. 낡은 주택. 방 구조나, 옥상을 쓸 수 있다는 점은 좋았다. 머리속에 그렸던 남산타워를 보며 옥상파티를 여는 모습을 그려봤다. “썩 나쁘진 않군”이라는 생각이 들던 찰나 옆집 사람들이 나왔다. 그리고 신경질. 그렇다. 보광동 골목은 너무 좁아서 옆집과 거리가 너무 좁았고, 소음ㆍ주차 문제 등으로 갈등이 많았다. 근처 주차장을 찾아봤지만 너무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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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주인들은 돈을 쎄게 불렀다. 몇 년전만 해도 1000만원이 월세 10만원의 값어치를 했는데, 지금은 1000만원이면 월세 5만원 값어치도 안됐다. 기준금리가 1~2%를 오가고, 은행 시중금리도 3~5%대라고는 하지만 참 돈값이 없어졌다. 일단 보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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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 만료 일자가 다가오며 마음이 급해졌다. 주말 뿐 아니라 야근 후 쉬는 날에도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구하기에 나섰다. 다음 목적지는 ‘성미산 마을’로 유명한 성산동. 넓게 상수역 인근 부터 성산동까지 옵션에 넣고 발품을 팔았다. 집을 보러 다니며 새로 결심한 건 ‘옥상’이 있는 집을 구하겠다는 목표였다. 옥상이라는 게 ‘마당’ 있는 집을 구할 수 없는 서울에서 대안적인 공간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 였다. (당시에 페이스북에 ‘옥상연합’이라는 페이지도 만들고 여러 재미난 구상을 많이 했었다. 지금 어떻게 됐냐고? 여전히 구상 상태다. 그 와중에 루프탑이 트렌드가 되서 까페나 식당도 루프탑이 엄청 늘었다 ㅠ.ㅠ)

성미산 마을을 염두에 둔 건 공동체라는 실험이 흥미로워서였다. 공동 육아와 공동 교육, 함께하는 삶이라니! 재미난 동네라는 내 상상에 잘 어울리는 곳이 아닌가! 하지만 집을 찾아다니는 현실은 녹녹치 않았다. 성미산 마을은 마음이 맞는 사람들이 강하게 결속한 공동체형태로 자리잡았고, 낯선 외부인이 새로 발붙이기는 쉽지 않아 보였다. 현실적으로 성미산 쪽도 집값이 많이 올랐다는 문제점도 있었다.

한참을 고민하다 내린 결론은 예산을 좀 더 올려잡는 거였다. 성미산 마을이 처음 생길 때 처럼 몇몇이 돈을 모아서 집을 얻거나 사면 선택의 폭이 넓어질 수 있었다. 물론 부족한 예산을 마련하기 위해는 특단의 방법이 필요했다. 나이 서른 넘어 부모님께 손을 벌리긴 힘들고, 재미라는 모토에 맞게 생활하려면 ‘셰어하우스’를 하자는 결론에 도달했다. 인천 송도에서 서울로 출퇴근 하는 대학 동창을 끌어들일 심산이었다.

예산을 높이니 부동산의 태도도 달라졌다. 물론 수수료가 올라가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더 친절하고 자세히 집의 장단점을 설명해 줬다. 5~6곳 옥상이 있는 집을 보고 나니 한 집이 맘에 들었다. 4층 건물에 4층 전체와 옥상의 창고를 쓸 수 있는 집이었다. 전용 주차도 할 수 있었다. 이전에 살고 있던 어르신도 만났는데 소탈함이 맘에 들었다. 건물은 다른 지역에서 학원을 하는 사람이 새로 매매를 했는데, 구매자금이 모자라서 전세로 나온거라고 했다. 리모델링하고 고쳐쓰는 것도 문제가 없다고 했다. 방 3개에 넓은 거실. 옥상의 옥탑과 상추가 자라는 옥상가든(?)까지.

동네를 돌아보니 더 마음에 들었다. 작지만 분위기 있는 식당이 촘촘히 들어서 있었고, 주민들은 강아지를 산책시키고 있었다. 지하철도 멀지 않았다. 맘이 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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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엽 기자 jung.wonyeob@joongang.co.kr
그래픽=김하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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