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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지경의 Shall We drink] <23> 비엔나 카페 기행 ② 프로이트의 단골 카페

중앙일보 2016.07.07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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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스부르크 왕가의 극장으로 설립된 부르크 극장. 빈에는 이렇게 역사가 깃든 건물이 지천이다.


 “여기가 지그문트 프로이트 기념관 맞나요?”

벨을 눌렀다. 벨을 눌러야 문을 열어준다는 안내문에 적잖이 당황했지만, 시간을 거슬러 프로이트 박사의 환자가 된 듯한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베스크가세(Berggasse) 19번지, 정신분석학의 선구자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가 살던 집 앞이었다.

덜컹. 문이 열려도 보이는 건 어두침침한 계단뿐이었다. 2층에 오르자 그의 집이 모습을 드러냈다. 옛 모습을 고스란히 재현한 현관이 시선을 끌었다. 벽에는 그가 쓰던 모자와 지팡이가 걸려 있고, 그 아래엔 커다란 여행 가방이 놓여 있었다. 가방에는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이니셜 S.F가 또렷이 새겨져 있었다. 대기실에서 놓였던 가구, 진료실에서 쓰던 소파도 그대로 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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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그문트 프로이트가 살던 집을 기념관으로 만들었다.


프로이트는 서른이 되던 1891년 늦여름에 이곳으로 이사와 47년을 살았다. 유대인이었던 그가 나치를 피해 영국으로 망명하기 전까지 생의 절반을 여기서 보낸 셈이다. 낮에는 환자들을 진료하고, 밤에는 꿈에 대해 연구했다. 이곳은 그의 가족들의 보금자리이자 그의 일터이며 연구실이었다. 정신분석학은 진료실에서 상담 치료와 서재에서 연구 분석의 결과였다. 왜 꿈을 꿀까? 꿈은 소망을 표출하는가? 무의식의 바다인 꿈에 대한 질문을 끝없이 던지며 꿈의 해석을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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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의 진료 대기실에 놓였던 가구들.


음악을 사랑하는 이는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을 베토벤의 도시라 말하고, 미술을 사랑하는 이는 빈을 클림트의 도시라 여기지만, 심리학도들은 빈을 프로이트의 도시라 부른다. 그래서 하루쯤은 심리학자 프로이트의 시선으로 빈을 바라보기로 했다. 그가 살던 집과 강의하던 대학을 둘러보고, 그의 단골 카페에 앉아 시간 보내기. 그게 나의 일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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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크 극장 바로 옆에 있는 유서 깊은 카페, 란트만.


독일어권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이자, 프로이트의 모교이기도 한 빈 대학(Universitat Wien)은 도시 곳곳에 캠퍼스가 흩어져 있다. 그 가운데 두 개의 뾰족한 첨탑이 돋보이는 보티프 성당(Votivkirche) 옆 메인 빌딩으로 향했다. 보티프 성당을 설계한 건축가 하인리히 폰 퍼르스텔(Heinrich von Ferstel)이 설계한 르네상스 양식 건물이 웅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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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풍스러운 장식이 돋보이는 란트만의 내부.

프로이트의 단골 카페는 빈 대학에서 멀지 않은 부르크극장(Burgtheater) 옆의 ‘란트만(Landmann)’으로 1873년 문을 연 이래 손님이 끊이지 않는 노장 카페다. 극장 옆인데다 시청, 국회의사당과도 가까워 연극배우와 정치인이 즐겨 찾는다. 대통령이 매년 이 카페에서 신년 기자 간담회를 열 정도다. 빈 사람들 사이에선 반가운 손님이 오면 안내하는 카페로 통한다. 이유를 물으면, 빈을 통틀어 비너 멜랑쥐(Winer Melange·빈 전통 커피)의 맛이 란트만을 따라올 카페가 없다고 입을 모은다.  

프로이트의 단골 자리는 어디였을까 두리번거리다 마음에 드는 자리에 앉았다. 나비넥타이를 맨 종업원에게 비너 멜랑쥐와 아펠 스튜델(Apel Strudel)을 주문했다. 아펠 슈튜델은 반죽을 돌돌 말아 구운 패스추리로 안에 설탕에 졸인 사과를 넣은 달콤한 빵이다. 간식이라 하기엔 큰 크기 덕에 요깃거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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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최고의 맛으로 소문난 란트만의 비너 멜랑쥐와 아펠 스튜델.


비너 멜랑쥐의 보드라운 우유 거품이 입술에 닿는 느낌에 감탄하며 주위를 둘러봤다. 테이블 배치가 지그재그로 돼 있어 사람들을 관찰하기 좋았다. 여느 카페보다 양복을 말끔히 차려입은 신사들이 많이 보였다. 안경을 쓰고 자료를 진지하게 읽는 사람도 눈에 띄었다. 일거리를 카페에 가지고 나와 시간을 보내는 이들일 것이다.

오래 전 프로이트도 여기서 연구 자료와 사람들을 번갈아 보며 자신의 이론을 머릿속에 차곡차곡 정리했을 것이다. 그저 편지를 읽거나 머리를 식히기도 했을 터다. 문득, 그 시절의 프로이트는 가족이 있고, 몰두할 수 있는 일이 있어 행복 했겠다 싶었다. 그가 남긴 말처럼 말이다. ‘인간답게 사는 데에 필요한 것은 아주 간단하다. 사랑할 사람과 할 일, 이 두 가지뿐이다.’

나 역시 인간답게 여행하는 데 필요한 두 가지가 있어 행복했다. 입에 착 붙게 맛있는 커피와 그림엽서. 커피가 줄어드는 걸 아까워하며 그리운 이에게 엽서를 썼다. 오랜만에 쓰는 손 글씨가 어색하면서도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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