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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약한 금융, 낡은 교육 시스템 바꿔라” 15년 전 충고 여전히 못 지키는 한국

중앙선데이 2016.07.03 01:24 486호 7면 지면보기

일러스트 박용석 parkys@joongang.co.kr



‘변화란 단지 삶에서 필요한 것일 뿐 아니라 삶 그 자체라 할 수 있다.(Change is not merely necessary to life - it is life.)’


타계한 앨빈 토플러가 남긴 교훈

지난달 27일(현지시간) 영면(永眠)에 든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의 부고(訃告)를 알린 토플러 재단(Toffler Associates) 홈페이지의 첫 화면 문구다. 흑갈색 어두운 배경 속의 토플러는 턱을 괴고 앉아 세상 사람들에게 침묵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변화’는 그가 세상에 남긴 13권의 저서를 관통하는 주제다. 그의 첫 저작이자 대표작 『미래의 충격』(1970)은 미래의 기술·사회적 변화가 그 속도를 가속화해 개인이나 집단의 적응이 한층 어려워진다는 것을 얘기했다. 최근까지 세계 50여 개국에서 1500만 부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다. 『제3의 물결』(1980)은 미래 첨단기술 사회 속 변화의 방향성을 강조했다. 또한 마지막 저서 『부의 미래』(2006) 역시 미래의 부(富)가 어떻게 변화하고 인간의 삶에 영향을 미칠지 분석한 책이다.



토플러 재단에 따르면 그는 지난달 27일 새벽 미국 로스앤젤레스 서부 부촌인 벨에어의 자택에서 잠을 자던 중 세상을 떠났다. 1928년 10월 4일생이니 만 88세를 3개월여 남겨뒀다. 토플러는 올 들어 기력이 많이 쇠해져 재단과도 일주일에 두 차례 콘퍼런스콜을 하는 게 전부였다.

앨빈 토플러는 아내 하이디 토플러와 함께 평생 13권의 책을 썼다. 그중 『미래의 충격(Future Shock)』(1970)과 『제3의 물결(The Third Wave)』(1980), 『권력이동 (Powershift)』(1990)이 토플러를 세상에 알린 대표적 저작으로 꼽힌다.



토플러는 예언하지 않았다토플러는 흔히 제3의 물결로 상징되는 ‘미래 정보화 사회를 정확히 예측한’ 미래학자로 불린다. 실제로 그가 70, 80년대 저술을 통해 예견한 미래는 현실로 등장해 파도처럼 현대사회를 휩쓸었다. 그의 저서가 힘을 갖는 이유 중 하나다. 그는 곳곳의 현장 취재와 인터뷰들을 통해 사회 흐름 속 큰 변화를 읽어내고 통찰력 있는 글로 풀어냈다. 대표작 『미래의 충격』에 대해 그는 “책을 펴내기까지 5년 동안 수많은 대학·연구소·실험소·정부기관 등을 찾아다니면서 여러 가지 논문과 과학 분야 보고서를 읽고 수백 명의 전문가와 인터뷰를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작 그 자신은 족집게 미래학자를 거부했다. “점성술사·미래학자(futurist) 등 세상 그 어느 누구도 미래에 관해 알지 못하며, 또 알 수도 없다.”(『제3의 물결』) “진지한 미래학자는 예언을 하지 않는다. 예측이 얼마나 복잡한 것인지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은 미래에 관한 절대적인 지식을 내세우지 않는 법이다.”(『미래의 충격』)



심지어 『제3의 물결』에서 그는 최신 트렌드와 변화의 방향을 제시하면서도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지, 또는 제3의 물결 사회에서 무엇이 가장 훌륭한 기능을 발휘할 것인지 아무도 상세히 모른다”고 말했다. 그가 책 속에 “~될 것이다”고 단정적으로 쓴 예언적 표현에 대해서도 서문을 통해 “필자가 ‘앞으로 이러저러한 사태가 일어나게 될 것이다’고 말하더라도 여기에는 불확실성이 있음을 적절히 감안해 줄 것을 기대한다’고 부탁하기도 했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미래연구센터의 박성원 박사는 “그가 자신의 책에서 밝힌 것들은 단일한 미래 예측이라기보다 미래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의미의 미래운동이라고 봐야 한다”고 분석했다.



그가 83년 펴냈지만 한국에서는 2012년에야 뒤늦게 출간된 『누구를 위한 미래인가』는 토플러의 미래학에 대한 생각을 좀 더 상세히 드러내고 있다. 이 책의 주 내용은 출판사 편집자가 토플러와의 문답을 통해 그의 사상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본 것이다. 토플러는 이 책에서 “미래학자들의 일이란 뭔가를 예언하는 것이 아니다. 대부분의 시간을 현재를 연구하는 데 쓰고, 연구 결과를 토대로 의사결정권자들에게 선택 가능한 정책들을 제안하며, 보이지 않는 위험 요소와 다른 대안들과 발생 가능한 결과들을 지적해 준다”고 설명했다. 편집자가 “제3의 물결에서 당신이 그리는 미래는 본질적으로 고정되고 불변적인 것인가”라고 묻자, 토플러는 “내 글의 목적은 사람들에게 현실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고 책의 저자로서 내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방향으로의 사회 변화를 위한 길을 닦는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인류를 기다리는 단 하나의 미래라는 것은 없으며 오직 다양한 기능성이 존재할 뿐이라고 강조했다.



젊은 시절 공장 노동자로 취직토플러의 사상과 혜안은 그가 살아온 인생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1928년 뉴욕 브루클린에서 태어난 토플러는 뉴욕대에서 영어를 전공하던 중 나중에 부인이 된 하이디(당시 본명은 아델라이드 엘리자베스 패럴)를 만났다. 두 사람은 대학을 마치고 결혼한 뒤 50년 클리블랜드로 이주해 알루미늄 제조 공장에 취직했다. 토플러는 조립라인과 대량생산을 배우기 위해 용접공으로 5년 동안 일했다. 부인은 노조 직원으로 근무했다. 토플러는 후일 당시를 회상하며 “나에게 대학원 과정 같은 시절이었다”고 회상했다.



“나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언제나 글을 쓰고 싶어 했다. 학창 시절부터 사회문제와 정치 변화에 관심이 많았다. 이미 공장에서 일을 하기 전부터 그런 것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땐 집을 떠나 다른 세상에서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 싶었다. 결국 공장에서 일을 하는 것이 진짜 어른이 되는 길, 진짜 세상을 경험하는 길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또 언젠가는 노동계급으로서 삶에 대한 위대한 소설을 쓸 수 있을 거라는 꿈을 꾸고 있었다.”(『누구를 위한 미래인가』)



그는 노동조합 관련 잡지에 글을 기고하며 언론인으로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이후에는 여러 일간 신문사에서 일하며 백악관을 담당하기도 했으며, 경제잡지 포춘(Fortune)의 부편집장을 지내기도 했다. 61년에는 IBM의 요청으로 ‘컴퓨터와 사무자동화가 조직에 장기적으로 미치는 영향에 관한 백서’를 만들었다.

자료: ‘위기를 넘어서-21세기 한국의 비전’(2001)



토플러는 부인 하이디를 “아내를 넘어 최고의 동료, 파트너”라고 표현했다. 책을 구상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집필하는 사람은 자신이지만 자료 조사와 평론, 에디터 역할에 심지어 강연까지 대신하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다. 토플러는 자신의 모든 책은 ‘함께 사랑하며 살아온 삶의 합작품’이란 표현으로 부인과 함께 쓴 것임을 밝혔다.  “한국은 스스로 미래 개척해야”토플러는 유독 한국과 인연이 깊다. 그가 아내와 함께 만든 토플러 재단은 최근 한국 대학과 제휴해 한국 내에 대학원 석·박사 과정의 미래학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내년 3월 한성대 지식서비스&컨설팅대학원 안에서 시작하는 ‘토플러 스쿨’이 그것이다. 교과과정은 한성대 대학원 내부 강의와 미국 토플러 재단이 현지에서 방송하는 화상 강의 등으로 꾸려질 예정이다. 방학 때에는 학생들을 선발해 미국 토플러 재단에서 인턴 교육을 받게 한다는 계획도 세웠다. 토플러 재단과 한성대의 만남은 한성대가 그간 컨설팅대학원을 운영해 온 성과가 있는 데다 지식서비스&컨설팅대학원장을 맡고 있는 정진택(행정학) 교수와 재단의 개인적 인연 덕분이다. 토플러 재단이 대학과 협력해 미래 관련 정규 교육기관을 만드는 것은 한성대가 첫 사례다. 정진택 교수는 “토플러의 혜안을 가진 컨설턴트 양성이 대학원의 목표”라고 말했다.



토플러가 김대중 대통령과 인연이 깊은 것은 잘 알려진 얘기다. 그는 2001년 김대중 전 대통령 시절 ‘21세기 한국의 비전’ 보고서를 통해 경제정책 수립에 도움을 주기도 했다. 당시 한국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의 의뢰로 용역을 수행하고 방한(訪韓)해 ‘위기를 넘어서―21세기 한국의 비전’이라는 보고서를 전달했다. 110쪽 분량의 이 보고서에서 토플러는 “그간 미국·유럽·일본 등 선구자를 본보기로 삼아 짧은 시간 안에 산업화에 성공했지만 이제는 따를 만한 검증된 모형이 없다. 이제 한국의 미래는 한국이 스스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구체적 대안으로 “한국이 세계 경제의 사다리 상위층에 자리 잡으려면 정보기술(IT)·생명공학(BT) 등 지식기반 경제로 체질을 바꿔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교육 시스템의 혁신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또 지식기반 경제에서는 중소기업을 제3의 물결에 합류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토플러는 한국 경제의 대표적 약점으로 금융구조를 들었다. 그는 “한국의 금융구조는 취약했고 정부와 재벌의 간섭 때문에 독립적인 자본배분 기능을 수행하기 어려웠다. 금융 자체가 심각한 기술적 변화를 겪고 있는 오늘날 이런 관행으로는 경제가 움직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노동조합의 변화도 요구했다. 신경제하에서는 기업도 바뀌어야 하지만 노조도 변해야 한다. 산업화 시절 한국 노조가 근로자를 보호했던 것처럼 이제는 노조가 근로자들이 신경제에 적응하고 준비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얘기했다. 사용자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기물이나 인명에 대해 물리적으로 공격하는 것은 용납돼서는 안 된다고 했다. 강하고 현명하며 독립적인 노조는 한국을 보다 강하고 훌륭하게 변모시키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지만 이는 정부 및 재계와 함께 지식기반 경제를 향한 이행에 동참하는 경우에만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토플러는 한국의 교육도 바뀌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한국의 학교는 사라져가는 20세기 산업체제에 알맞도록 짜인 낡은 교육시스템을 고수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21세기 한국의 교육시스템은 어느 장소에서나 혁신적이고 독립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해 그런 환경에 적응하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학생들을 준비시킬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돌이켜 보면 15년 전 토플러가 지적했던 노조와 금융구조의 변화, 교육시스템의 개혁, 중소기업의 발전 등은 한국 사회가 미래의 물결을 잘 탈 수 있는 핵심 처방이었다. 그러나 한국은 아직도 토플러가 제시한 과제를 풀지 못하고 있다. 교육·금융·노조·중소기업 문제는 그동안 ‘개혁’을 외쳐왔지만 여전히 한국 사회의 한 단계 도약을 가로막는 걸림돌로 남아 있다.



이광형(미래학회 회장)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장은 “2001년 봄 KAIST에 BT와 IT를 융합한 학과를 새로 만들기 위해 설득하러 다녔는데 그때 주위에서 ‘미친놈’이란 소리를 많이 들었다”며 “당시 토플러가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언급한 ‘한국의 미래는 BT와 IT의 융합에 있다’는 말은 천군만마(千軍萬馬)의 도움이 됐다”고 회상했다.



 



 



최준호 기자, 남건우 인턴기자joo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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