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위안부 문제, 양국 합의한 내용 착실한 이행이 중요

중앙선데이 2016.07.03 01:15 486호 12면 지면보기

김성룡 기자



지난 5월 24일 오후 일본 도쿄 중의원 의원회관. 한·일의원연맹의 카운터파트인 일·한의원연맹 소속 의원 40여 명이 유흥수(78) 주일본 한국대사를 초청해 고별 강연을 열었다. 강연 형식을 빌린 송별회였다. 유 대사는 솔직한 심경을 피력했다.


한·일 관계 물꼬 튼 유흥수 전 주일대사

“직업 외교관도 아닌 내가 다소 일본과 인연이 있다고 해서 나라의 부름을 받고 왔습니다. 외무성 사람도 알지 못하고 해서 나의 외교는 국회를 통해 이뤄졌습니다. 여러분이 내 외교 무대였고 대상이었지요. 음으로 양으로 도와줘 무사히 대사직을 마치고 떠나갑니다.”



유 전 대사는 강연 후 일본 전역의 니혼슈(일본 청주) 40여 병을 받았다. 누카가 후쿠시로(額賀福志郞) 연맹 회장이 사전에 참석 의원들에게 유 전 대사가 니혼슈를 좋아한다고 한 병씩 가져올 것을 부탁한 터였다. 이날 모임은 역대 최고령 대사이자 박근혜 정부 최고령 공직자인 유 전 대사의 대일 외교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행사였다. 그의 재임 1년10개월 동안 한·일 관계는 어둡고도 긴 터널을 빠져나왔다. 지난해 11월 한·일 정상회담이 3년 반 만에 이뤄졌고 연말엔 최대 현안인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타결됐다. 한·일 관계 개선의 디딤돌이 마련된 데는 유 전 대사 특유의 친화력과 헌신이 한몫했다.



귀국(7월 1일)을 앞두고 이삿짐을 꾸리던 지난달 22일 도쿄 한국대사관 집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사의 표명 4개월이 지나서야 귀국 날짜가 잡혀서인지 어느 때보다 홀가분한 표정이었다. 그는 “주일대사는 대통령과 임기(2018년 2월)를 같이하기 쉬운데 건강이 좋다고 욕심 내서 하고 싶을 때까지 하고 그만두면 후임자의 임기가 너무 짧아진다”며 “기왕에 그만둘 바에야 그것도 배려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재임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을 꼽는다면 무엇입니까.“지난해 6월 22일 서울과 도쿄에서 동시에 열린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 행사죠.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행사에 교차 참석하면서 한·일 관계의 흐름을 바꾸는 계기가 됐지요. 하지만 정상의 교차 참석이 쉽게 이뤄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당초 정부 간 교섭에서는 정상 간 일정 등은 의제로 하지 않는 것으로 일단 마무리됐습니다. 나중에 양국 정상이 참석하게 된 데는 나와 친한 사람들의 노력이 컸습니다. 예전부터 가깝게 지낸 동갑의 모리 요시로(森喜朗) 전 총리와 가와무라 다케오(河村建夫) 일·한의원연맹 간사장이 많은 애를 써주었습니다. 가와무라 간사장이 아베 총리를 만나고 나서 휴대전화로 연락을 해왔습니다. 그 때문에 정부가 하지 않기로 했던 것(정상 교차 참석)을 다시 살리게 됐지요.”



하지만 이 과정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행사 진행 문제를 협의하는데 또다시 걸림돌에 부닥쳤다. 도쿄에서 열린 기념행사에 아베 총리가 행사 도중에 참석해 10분간 축사만 하고 돌아가겠다는 입장을 전해왔다. 유 전 대사는 ‘그렇게 하면 우리 국민에게 좋지 않은 인상을 남겨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그래서 일본 측에 참석 시간을 늘려줄 것을 요청했지만 행사 당일 아침까지 10분 이상은 안 된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는 “총리 관저 쪽에 ‘그럴 바에는 차라리 오지 않는 게 낫다’고 전화를 했는데 30~40분 후 연락이 와서 우리 희망대로 됐다”고 했다. 아베 총리는 29분 동안 참석해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대독한 박 대통령 메시지까지 듣고 돌아갔다고 한다.



이날 이후 한·일 간 교류의 물꼬가 텄다. 11년 만에 한·일의원 친선 바둑대회가, 7년 만에 친선 축구대회가 이뤄졌다. 11월에는 서울에서 한·중·일 정상회의를 계기로 박 대통령과 아베 총리 간 첫 정상회담이 열렸다. 유 전 대사는 “이 회담에서 양 정상이 솔직한 대화를 나눠 서로 신뢰 관계가 생겼다”고 평가했다.



이렇게 해빙 무드는 조성됐지만 여전히 가토 다쓰야(加藤達也) 전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 기소 문제가 양국 관계의 발목을 잡는 아킬레스건이었다. 당시 가토 지국장은 세월호 참사 당일 박 대통령의 행적에 의혹을 제기해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상태였다.



-가토 지국장 문제는 드러내놓고 거론하기 어려운 ‘뜨거운 감자’였습니다.“산케이 문제는 재임 중 가장 골치 아픈 사안이었습니다. 이것이 차지하는 비중을 놓고 한·일 간에는 느낌의 괴리가 있었지요. 아베 총리는 산케이신문을 좋아했습니다. 개인적으로 만나는 사람들도 줄줄이 잘 처리해 달라고 요청해왔습니다. 일본에서 비중이 다르다는 것을 본국에 보고했습니다. 사안의 성격상 밑에서 얘기하기 어려운 내용입니다. 가토 전 지국장을 선처해 달라는 일본 입장을 법무부에 전달했고 11월에 무죄 판결이 났습니다. 이런 것을 바탕으로 12월 말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합의됐습니다.”



-협상안에 대해 반대하는 여론도 높습니다.“위안부 문제 합의는 양국 정상 간 결단의 산물로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최상의 합의입니다. 아베 총리가 ‘이렇게 바뀔 수 있느냐’고 할 정도로 변화를 보였고 오히려 집권 자민당 내에서 불만이 나올 정도였지요. 위안부 합의에는 ▶일본군의 관여와 일본의 책임 ▶아베 총리의 사죄와 반성의 마음 표명 ▶일본 정부 예산 10억 엔 출연이 들어가 있습니다. 아베 총리가 미국 의회 연설 등에서 역대 내각의 역사 인식을 계승한다고 했지만 사죄와 반성을 한다고 한 적은 없었습니다. 그런 만큼 위안부 문제는 양국 간 합의한 내용의 착실한 이행이 중요합니다. 출연 방법은 일시금 등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오는 10일 참의원 선거가 끝나면 10억 엔을 낼 것으로 생각합니다.”



-향후 추진 전망은 어떻게 보십니까.“일본에서는 우익의 불평이 있습니다. 우리 쪽에서도 국민의 인식이 합의돼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국내 정치적으로는 더 좋은 여건이 됐다고 봅니다. 야당이 제1당이 됐고 국회의장도 야당에서 나왔습니다. 야당이 책임을 갖고 이 문제를 보게 됐다고 생각합니다.”



유 전 대사에게 최고령 대사직을 마치는 소회를 물었다. 그는 “처음 발령받았을 때 나이도 많고 대사 경험도 없는 올드 보이라는 얘기를 들었는데, 되돌아보면 일하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지 않았느냐고 말하고 싶다”며 “이 나이에도 일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 나이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도쿄=오영환 특파원 hwasan@joongang.co.kr

선데이 배너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