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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뭐하려 했더라’ 기억력 뚝 떨어지면 의심을

중앙선데이 2016.07.03 00:57 486호 24면 지면보기

일러스트 강일구 ilgook@hanmail.net



TV를 볼 때 유명한 연예인의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다. 책을 보면 이전 페이지 내용이 생각나지 않는다. 해야 할 일이 있는데 다른 일을 하다보면 내가 뭘 하려고 했는지를 잊어버린다. 나이가 들면 기억이 잘 나지 않는 경험을 흔히 한다. 스스로 기억력이 떨어졌다고 느끼더라도 일상생활에 문제가 없고 인지기능검사에서 정상 범위의 기억력을 보인다면 질환은 아니다. 이를 '주관적 기억장애'라고 한다. 여기서 한 단계 심해지면 '경도인지장애(Mild Cognitive Impairment, MCI)'가 된다. 경도인지장애는 인지기능 중 기억력만 많이 떨어지고 다른 인지 기능은 비교적 잘 유지돼 일상생활에는 큰 장애가 없는 상태다. 구체적인 진단기준은 ▶환자나 보호자가 기억력 저하 호소 ▶동일 연령이나 교육 수준에 비해 기억력 저하 ▶전반적인 인지기능 유지 ▶일상생활 유지 ▶치매 진단기준과 불일치 등이다. 이 다섯 가지 기준에 해당된다면 경도인지장애라고 본다.


노화와 치매 사이, 경도인지장애

경도인지장애의 원인은 다양하다. 치매의 한 종류인 알츠하이머병이 가장 흔하고 뇌혈관 손상, 심한 우울증, 만성 스트레스, 레비소체치매, 갑상선기능 저하 등으로 생길 수 있다.



 

자료: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경도인지장애 환자는 해마다 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환자수는 2011년 3만5471명에서 2015년 12만4669명으로 4년새 3.5배 증가했다. 2015년 기준 여성이 8만5341명, 남성이 3만9328명으로 여성이 남성보다 2.2배 많았다. 연령별 환자수는 70대 이상(60.2%)이 가장 많았고, 60대(26.7%), 50대(12.1%) 순이다. 하지만 해외 자료에 따르면 경도인지장애 환자수가 치매 환자수의 약 2배에 달한다. 국내는 많은 환자들이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짐작된다.



65세 이상의 10~20%는 경도인지장애를 앓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중 15~20%는 1~2년이 지난 뒤 인지기능이 호전되기도 한다. 하지만 오랜 기간 동안 추적조사를 해보면 다시 인지 저하를 보인다. 초기에 호전됐다고 안심할 수 없는 이유다. 경도인지장애 환자의 10~15%는 1년 내 치매로 발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정상인의 1~2%에 비하면 상당히 높은 수치다. 특히 ▶나이가 많거나 교육수준이 낮은 경우 ▶아포지단백(ApoE ε4) 유전자가 있거나 기억력 점수가 유난히 낮은 경우 ▶MRI검사에서 기억력을 담당하는 뇌 부위인 해마의 위축이 있는 경우 등은 위험군에 해당한다.



정모(78·여)씨는 지난해부터 최근에 일어난 일이 잘 기억나지 않았다. 친구와의 약속을 잊어버리기도 하고 물건을 어디에 둔 지 몰라 한참 동안 찾는 일도 부지기수다. 중요한 일은 꼭 메모하는 습관을 들여 일상생활에 큰 어려움을 겪지는 않았다. 하지만 아버지가 80세부터 치매로 고생하다 돌아가셔서 정씨도 치매가 아닐까 걱정돼 신경과를 찾았다.기억력 검사 결과 비슷한 연령대와 교육수준을 가진 정상인의 평균보다 1 표준편차 아래로 나왔다. MRI 검사를 해보니 두정엽과 해마가 위축된 것으로 나타났다. 아밀로이드 PET검사 결과 뇌피질에 베타아밀로이드가 광범위하게 축적돼 있었다. 정씨는 알츠하이머병으로 인한 경도인지장애라는 진단을 받았다. 6개월 동안 콜린분해효소 억제제로 약물치료를 받은 정씨는 기억력이 점차 호전되면서 자신감을 되찾았다. 정씨는 약물치료와 운동요법·인지치료를 지속하면서 정기적으로 인지기능을 점검하고 있다.



경도인지장애가 모두 알츠하이머병으로 발전하지는 않는다. 다른 형태의 치매로 진행되기도 하고, 더 이상 인지기능이 떨어지지 않는 정상 상태를 유지하기도 한다. 하지만 의학적으로 경도인지장애는 알츠하이머병의 전 단계로 간주해 치료한다. 알츠하이머병의 정확한 원인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뇌에 이상 단백질인 베타아밀로이드가 축적되면서 뇌 기능을 떨어뜨리는 것이 주요 원인으로 알려져 있다. 초기에는 기억력 문제를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모든 인지기능을 상실하게 된다. 최근 연구결과에 따르면 경도인지장애 환자의 약 82%는 PET 검사에서 알츠하이머병 환자와 비슷하게 측두엽과 두정엽에서 포도당 대사율이 떨어지는 양상을 보였다. 바이오마커(생물학표지자) 연구에서는 뇌척수액의 아밀로이드단백·총타우단백·과인산화 타우단백을 측정해 알츠하이머병을 진단하기도 한다. 국내에는 지난해말 아밀로이드 PET검사가 도입되면서 뇌에 축적된 베타아밀로이드 단백을 확인할 수 있게 됐다.



알츠하이머병에 대한 분자생물학적 연구가 확산되면서 베타아밀로이드 단백을 제거하는 근본적인 치료법이 많이 시도되고 있다. 베타아밀로이드 단백에 대한 단일클론항체, 아밀로이드를 이용한 백신치료, 베타시크리타제 억제제 등의 약물치료를 주로 하는데 이미 치매가 진행됐을 때는 효과를 보이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치매 단계로 접어들면 베타아밀로이드 뿐만 아니라 에너지 고갈, 유해산소 발생, 면역 이상, 분자생물학적 변화 등이 동반돼 베타아밀로이드 단백만 제거해서는 병의 진행을 막지 못하는 것으로 추측된다. 따라서 최근에는 경도인지장애 단계에서 약물치료를 시작해 치매로 진행되지 않도록 억제하는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현재는 뇌영양제를 투여해 뇌 활동을 끌어올리거나 알츠하이머병으로 인한 경도인지장애에는 콜린분해효소 억제제를 사용하기도 한다.



다양한 인지치료도 치매 초기까지는 효과를 보인다. 치료법은 인지훈련, 보상인지훈련(기억전략 교육, 메모장·타이머 활용), 생활방식 중재, 정신요법(이완훈련·명상 등) 등이다. 한 가지만 하는 것보다 여러 가지를 같이 할 때 치료 결과가 좋은 편이다. 운동을 함께 하면 효과는 배가된다.



생활 속에서 인지기능 저하를 막으려면 하루 30분 이상 운동과 금연이 필수다. 나이가 많더라도 사회활동을 계속 하면 활력을 유지할 수 있다. 책읽기나 글쓰기, 공부 등으로 끊임없이 머리를 쓰는 것도 좋다. 술은 한 번에 한 잔 정도로 적당하게 즐기고 짜게 먹지 않는 습관도 중요하다. 저지방·불포화지방 식품 위주로, 생선·잡곡·야채·과일 등을 골고루 섭취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특히 고혈압과 당뇨병을 앓으면 혈관 손상 때문에 경도인지장애에 걸릴 위험도가 높은 편이다. 발병 초기부터 적극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양동원 객원 의학전문기자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신경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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