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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가는 디자인의 조건, 일상에 감성 더하는 것

중앙선데이 2016.07.03 00:33 486호 24면 지면보기
펜디, 구찌, 조르지오 아르마니, 프라다. 이들 럭셔리 패션 브랜드의 특징은 오랜 기간 고집해온 철저한 장인정신에 있다. 붉은 색 자동차로 대표되는 세계 최고의 스포츠카 페라리, 유머 가득한 생활 소품을 디자인하는 알레산드로 멘디니, 컬러 팔레트를 집안으로 옮겨놓은 듯한 가구 브랜드 모로소. 이들의 특징은 경쾌한 원색의 컬러와 유머러스한 감각에 있다. 모두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디자인 브랜드들이다. 종합하면 우리가 아는 이탈리아 디자인은 장인정신, 컬러감각, 유머러스한 콘셉트로 정의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게 전부일까?



이탈리아 디자인계 대부인 카를로 포르콜리니(69) 교수에 따르면 이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이탈리아 디자인 대학 IED(Istituto Europeo di Design)의 고문 겸 연구소장으로 재직중인 포르콜리니 교수는 1969년 밀라노 브레라 미술 아카데미를 졸업한 후 램프·가구·주얼리 디자이너로 활동하며 79년 이탈리아 디자인을 대표하는 가구회사 알리아스(Alias)를 창립했다. 이후에도 아마르·아르테미데·카씨나·데파도바·루체플란 등과 협업하며 디자인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전설적인 제품들을 디자인했다.


이탈리아 디자인계의 대부 카를로 포르콜리니

그가 지난 6월 8일 내한해 IED와 MOU를 맺은 국민대 테크노디자인 전문대학원에서 ‘50년 이탈리아 디자인 변천사’라는 주제로 특강을 했다. 지난 50년간 산업디자인·패션·그래픽 분야에서 위대한 디자이너들을 탄생시키며 이탈리아 경제혁명을 이끌어온 ‘디자인’이라는 거대한 주제를 10년 단위로 묶어 이탈리아 디자인이 내포하고 있는 6개의 특징을 설명하는 내용이었다. 10일 중앙SUNDAY S매거진이 그를 직접 만나 강의에서 미처 못 다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아킬레·피에르 자코모 카스틸리오니 형제가 디자인한 플로스의 아르코 램프(1962)

포르콜리니 교수가 꼽은 이탈리아 아이코닉 디자인1 카시나의 윙크 롱 체어. 토시유키 키타 디자인(1980) 2 르 코르뷔제와 그의 동료들이 디자인한 카시나의 LC4 셰이즈 롱 체어. 1928년 첫 디자인됐고 1965년에 다시 제작을 시작했다. 3 카를로 포르콜리니 교수가 창립한 가구 회사 알리아스에서 출시한 스파게티 체어(1979) 4 카스틸리오니가 디자인한 자노타의 메차드로 체어(1957)

5 카를로 몰리노가 디자인한 자노타의 레알레 테이블(1946)

6 포르투나토 데페로가 디자인한 캄파리 소다 병(1932)

7 르 코르뷔제와 동료들이 함께 디자인한 카시나의 LC2 소파. 1928년 디자인을 2015년에 다시 복원해 출시했다.



10년 단위로 주제를 묶고 모든 시작에서 당대의 문화현상을 언급했다. “디자인은 우리 삶과 밀접하다. 당대의 정치·경제·문화 현상이 삶 속에 파고들었다면 디자인 역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석유 파동이 일어났던 1970년대엔 자동차 디자인이 대거 바뀔 수밖에 없었다. 육중했던 자동차들은 기름을 덜 먹고 바람의 저항을 덜 받도록 본네트가 납작하게 디자인됐다. TV시리즈 ‘X파일’이 인기를 끌었던 90년대엔 실험정신이 강했기 때문에 휴대폰·다마고치·두가티 몬스터 등 혁신적인 소재와 기능을 가진 제품들이 등장했다. 패션 디자이너 미우치아 프라다가 낙하산 천을 이용해 블랙백을 만든 것도 이때다. 스티브 잡스가 세상을 뒤흔든 2000년대엔 인간 중심적이면서도 미래적인 디자인이 각광받았고 LED전등이 개발되면서 램프디자인에 큰 변혁이 시작됐다. 그 시대의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파악하는 게 디자인의 첫 걸음이다.”



이탈리아 디자인의 6가지 특징 중 ‘디자인과 경영자’라는 주제가 흥미로웠다. “디자인 아이디어를 떠올린 후 실제 제작이 완성되기까지 10년이 걸린 제품도 있다. 만든 후 몇 년 동안 시장에서 주목받지 못한 제품도 있다. 이런 제품들을 믿고 기다려주며 투자하는 기업 마인드가 시대의 아이콘을 만든다. 제품으로 ‘돈을 벌자’ 보다는 제품이 가진 가치를 우선 생각해 회사의 아이콘이 될 거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외국 디자이너들에게 개방적이다’라는 주제도 눈길을 끌었다. “세계적인 산업 디자이너인 필립 스탁이 어느 인터뷰에서 ‘나는 프랑스에서 태어난 프랑스인이지만 이탈리아 디자이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만큼 유럽 다른 나라들과 달리 이탈리아 기업들은 다른 나라 디자이너들과 협업을 활발하게 진행해왔다. 이것이 이탈리아 문화가 더 다양하고 활성화될 수 있었던 요인이다.”

8 포르콜리니 교수가 디자인한 아르테미데의 네스토어 램프(1986)

9 포크콜리니 교수가 디자인한 루체플란의 비르지 램프(2004)

10 에토레 소사스가 디자인한 칼톤 책꽂이(1981)



‘이탈리아 디자인’ 하면 경쾌한 색감과 유머러스한 감각부터 떠오른다. “디자이너 알레산드로 멘디니와 에토레 소사스의 특징일 뿐 이탈리아 디자인 전체의 특징이라고 말할 순 없다. 두 사람 덕분에 재밌는 디자인이 많이 등장했지만 전통적인 이탈리아 디자인은 그보다 더 큰 의미를 갖고 있다.”



그게 뭔가. “보통 ‘이탈리아 디자인=밀라노 디자인’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역사적으로 로마는 장식적이고 화려하고 큰 것을 추구해왔다. 근대 이후 디자인의 중심이 됐던 밀라노 스타일은 그 반대다. 균형감과 합리적인 구조를 가진 알맞은 사이즈의 생활용품들을 디자인해왔다. 그건 단순히 아름다운 디자인 제품을 만드는 것 이상의, 일상에 감각과 감성을 더하는 일이다. 그래서 몇 십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베스트셀러로 환영받는다. 왜냐하면 이탈리아의 평범한 가정에선 소파·침대를 바꾸는 일이 평생에 한두 번 있는 일이다. 말하자면 소비자가 사용하면서 낡고 거칠어지는 것까지도 고려해, 소비자의 삶의 일부분이 되는 ‘무언가’를 만드는 일이 바로 이탈리아 디자인의 진짜 정의다.”



겨자색 재킷에 남색 행커치프를 꽂고 나타난 포르콜리니 교수는 인터뷰 내내 파이프담배를 손에서 떼지 않았다. 알고 보니 그는 스무 살부터 파이프담배를 즐겨온 매니어였다. 한국 남자들이 소화하기 어려운 컬러의 옷들에 대해 물으니 “자연에는 정말 여러 가지 색이 숨어 있다. 그것을 몇 가지 색의 옷으로만 즐기기엔 너무 아쉽지 않냐”며 웃었다.



그동안 디자인했던 대표작을 물을 때는 재킷 안에서 연필을 꺼내 노트에 직접 그림을 그려가며 설명했다. “디지털 시대라고는 하지만 연필과 손으로 직접 그리는 아이디어 스케치만큼 사람의 감성을 잘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며 “70년대 전까지는 자동차 디자이너들이 다 손으로 디자인 했는데 그 때는 커브를 디자인하는 일이 아주 어려웠지만 컴퓨터를 이용해 그리는 지금보다 자동차 디자인이 훨씬 다양하고 아름다웠다”고 아쉬워했다. ●



 



 



글 서정민 기자 meantree@joongang.co.kr, 사진 전호성 객원기자, I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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