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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의 내막] ‘진보 판사’ 최유정은 어떻게 ‘괴물’이 됐나

온라인 중앙일보 2016.07.03 00:05
한때 진보 성향 판사 모임 ‘우리법연구회’ 활동한 데다 감수성도 깊어… 1000억원대 투자사기범 법률 대리하면서 걷잡을 수 없는 탐욕의 수렁에 빠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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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장판사 출신 최유정 변호사(작은 사진)와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사진)의 고소 사건으로 시작된 법조비리가 법원과 검찰, 경찰 등 사법당국 전방위로 확산된다. 이면에 도사리고 있던 일확천금의 유혹에 빠진 법조인들의 탐욕이 낱낱이 까발려지고 있다.

“내가 가진 것은 보이지 않고 남이 가진 것만 보이는 결핍감으로 인해 그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깊은 심연(深淵)을 지니고 살던 내게 ‘바그다드 카페’의 독일 여인이 남들에게 베푸는 모습은 큰 충격이었습니다. (…) 그제야 내가 부자인 것을 처음으로 깨달았습니다.”

'법복의 명예’ 벗어던지고 돈의 맛에 취했다

2006년 판사 최유정(46·사법연수원 27기)이 대법원에서 출간되는 <법원사람들>이라는 소식지에 남긴 ‘바그다드 카페와 콜링 유’라는 글에 소개한 소년범 재판의 경험이다. 이 글에서 최 판사는 일찍 여읜 아버지와 생계에 지친 어머니, 그래서 친척집을 전전했던 어린 시절을 고백한 뒤 어느 날 접한 영화 <바그다드 카페>가 깨닫게 해준 가난하지만 베푸는 삶의 소중함을 이야기했다. 여기에 그 깨달음을 법정에 선 소년범들과 나눴던 경험을 덧붙였다.

“세상에는 한 번 걸어보는 것이, 한 번 보는 것이, 한 번 말하는 것이, 한 번 듣는 것이 소원인 사람들이 많다. 하나님이 네게 자랑할 만한 부모님이나 많은 돈을 주시지는 않았지만, 네가 이렇게 말썽을 부려도 지켜봐주시는 보호자와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건강한 몸을 주셨다. 돈보다 훨씬 더 귀한 것을 네가 가졌다는 것을 잊지 말아라. 너는 부자다.”

돈이 전부가 아니라던 진보 성향의 판사 최유정은 어떻게 ‘수임료의 여왕’이 됐을까? 법원 내 진보성향 판사 모임 ‘우리법연구회’에서 활동하기도 했던 최 판사는 2014년 2월 전주지법 군산지원 부장판사를 끝으로 16년간 입었던 법복을 벗었다. 이 무렵 동료 판사였던 몇몇은 “최 판사가 혼잣말처럼 ‘돈이 필요하다. 좀 벌어야겠다’고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고 기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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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변호사와 홍만표 변호사의 불법행위를 가능하게 한 건 전관예우 관행이었다. 이 관행을 바꾸지 않으면 제2, 제3의 법조비리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6월 9일 서울변호사회관에서 열린 공개 좌담회에서 패널들은 전관예우 관행 개선을 촉구했다.

마음의 부자였다던 그녀, “돈이 필요하다”
돈이 필요해진 건 파국으로 치달은 혼인관계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최 변호사는 서울중앙지법 판사로 임용되던 해인 1998년 서울대 원로교수의 자제인 모 대학 교수 A씨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처음엔 A교수의 집안에서도 서울대 나온 판사 며느리를 반겼지만 평탄한 결혼관계가 오래 지속되진 못했다. 최 변호사의 한 지인은 “시댁과의 관계에서 오래전부터 어려움을 겪었고, 수원지법 근무 시절(2005~2006년)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면서 사위와 장모의 관계도 틀어졌던 것으로 안다”며 “이후 최 변호사는 서울로 임지가 바뀐 뒤 수원에 남겨두고 온 어머니 걱정을 많이 하곤 했다”고 전했다.

최 변호사가 법무법인 광장에 둥지를 튼 직후 안식년을 맞은 A교수는 두 아이만 데리고 미국으로 떠났고, 그 사이 최 변호사는 법무법인 광장을 뛰쳐나와 서울 서초동 법원 앞에 ‘최유정 법률사무소’를 차렸다. 신흥 로펌의 대표 자리를 놓고 이야기가 오가기도 했지만 여의치 않았다고 한다.

A교수가 돌아왔을 땐 가정사가 더 꼬여 있었다고 한다. 지난해 6~7월 두 사람 사이에선 이혼 논의가 오갔지만 최 변호사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합의한 서류를 법원에 접수하지 않았다고 한다. 최 변호사를 잘 아는 한 변호사는 “신체적으로 지병이 깊었던 홀어머니의 노후를 넉넉하게 보장해드리려 고민하던 차에 이혼 후 양육비 부담의 필요성까지 생기면서 돈이 절박해졌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대로 이렇게까지 된 건 돈에 취했다고밖에 달리 이해할 길이 없다”며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최 변호사가 돈맛을 제대로 본 건 지난해 5월께 전형적인 폰지 사기꾼 송창수(40) 전 이숨투자자문(이하 이숨) 대표를 만나면서다. 최 변호사는 도주한 브로커 이동찬(44)에게서 송씨를 소개받았다. 지난 5월 구속기소된 최 변호사의 혐의에는 이씨와 함께 송씨가 사기로 피해자들에게 빨아들인 돈 중 50억원 이상을 1년여에 걸쳐 받았다는 점도 포함돼 있다.

옛 판결문들을 보면 송씨가 처음 진로를 ‘사기’로 정한 건 20대 때인 2001~2002년 무렵이다. 사기를 치다 수사기관에 적발되면 다시 새로운 법인을 만들어 끌어들인 새 피해자들의 돈으로 앞선 피해자에게 합의금을 지급해 벌금형이나 집행유예 정도로 빠져 나오기를 반복하는 회전문 사기를 익혔다. 그러나 갈수록 사기 규모가 커지면서 이 방식도 위기에 빠졌다.

2013년 초 송씨는 ‘인베스트 컴퍼니’라는 회사를 차리고 채용공고를 냈다. 채용공고를 보고 찾아오는 이들에게 취업하려면 자사에 구좌당 500만원씩 4구좌, 2000만원을 회사의 선물거래에 투자를 해야 한다고 유인했다. 돈이 없다고 하면 저축은행 대출을 알선해줬다. 이렇게 6개월간 717명에게 끌어 모은 돈이 106억여 원. 결국 경찰에 적발돼 2013년 10월 사기혐의로 구속기소됐다. 이번에도 송씨는 “피해자들과 합의하겠다”고 재판부를 설득해 2014년 2월 보석허가를 받아 지난해 8월 1심 선고 때까지 풀려난 채로 더 큰 사기를 준비했다. 그게 3000여 명에게 1380억원대 피해를 입힌 이숨 사기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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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정 변호사를 범죄의 늪으로 끌어들인 장본인인 브로커 이동찬은 2003~2004년에 성행했던 금지금(골드바) 탈세 조직에 가담하면서 범죄 세계에 입문했다.

폰지 사기꾼 송창수의 회전문 사기와 최유정
피해 변제가 어느 정도 이뤄졌음에도 지난해 8월 인베스트 사건 1심에서 징역 4년의 실형이 선고되면서 보석이 취소돼 다시 구속 수감되자 송씨의 마음은 바빠졌다. 새로 벌인 이숨 사기 피해자들이 서둘러 피해자 단체를 구성해 은닉 자산을 찾아 나섰고, 이숨 사건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시작되면서 집행유예 석방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이때 송씨를 파고든 게 브로커 이씨였다. 지난해 5월 이씨는 송씨에게 최 변호사를 소개하면서 “사귀는 여자인데 판사”라고 했다고 한다. 인베스트 사건 항소심이 최 변호사와 동향(전주)인 C부장판사에게 배당되자 이씨와 최 변호사는 송씨에게 변호사 개업 사실을 알리고 발빠르게 움직였다.

최 변호사는 송씨에게 석방을 장담했다고 한다. 실제로 C 부장판사는 인베스트 사건 항소가 제기된 지 한 달 보름 만인 지난해 10월 7일 송씨에게 “피해가 실질적으로 회복됐다”며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해 석방했다. 이어진 이숨 사기 피해자들이 재판부에 “송씨가 석방되면 자신들의 피해회복은 요원하다”며 탄원도 넣었지만 C부장판사는 고려하지 않았다. 이 집행유예 판결로 최 변호사에 대한 송씨의 신뢰는 두터워졌고, 송씨는 서울구치소에 함께 수감돼 있던 정운호(51)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에게 최 변호사를 “능력 있는 사람”이라고 소개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인베스트 사건에서 받은 집행유예 선고는 송씨에게 절반의 성공이었다. 선고 당일 법정에서 대기 중이던 서울 중앙지검 형사4부 수사관들에 의해 송씨는 다시 이숨 사건의 피의자로 체포됐다.

최 변호사가 인베스트 사건을 맡은 이후 그는 브로커 이 씨, 사기꾼 송씨와 가족처럼 지냈다. 송씨는 두 살 위인 최 변호사를 ‘누나’, ‘형수’라고 불렀고, 최 변호사는 전형적인 금융 다단계 사기인 이숨에 투자해 수천만 원을 벌기도 했다.

최 변호사는 하루가 멀다 하고 송씨를 접견했다. 인베스트 1심 선고 즈음 이씨는 자기 식구들과 함께 이숨 내부로 들어갔다. 지난해 8월 이씨는 특별검사를 위해 들이닥친 금융 감독원 직원들과 몸싸움을 벌였고, 금감원 직원들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과 임금 가압류 신청 등을 제기해 상당기간 검찰의 수사를 지연시키기도 했다. 관련한 사법절차는 모두 최 변호사가 대리했다.

최 변호사팀이 이숨 사건을 방어하는 동안 송씨는 이숨 1심이 진행 중이던 지난 1월 옥중에서 또 다른 유사수신업체 ‘블랙스톤인터내셔널’을 설립했다. 등기임원 3명 중 1명은 송 씨의 여자친구로 알려진 신모(29) 씨였다.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사무실을 연 이 회사는 등기상 업종은 ‘부동산 자산관리’였고, 사무실에서 중앙일보 기자와 마주친 직원들은 “세종시에 온천을 개발 중”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확인 결과 이 회사는 ‘퍼펙트스톰 글로벌’이라는 홈페이지를 통해 선물거래 현황 등을 중계방송하면서 투자금을 모집하는 유사수신 행위를 계획 중이었다. 각종 리쿠르팅 사이트에는 “증권 관련 인터넷 방송을 담당할 인재를 찾는다”는 모집공고를 올리기도 했다. 본지가 통화한 이 회사의 인사담당자는 “취업 시 선물 거래 전문가들을 돕게 되고, 그쪽(투자) 지식이 없어도 교육을 받고 선물 거래 내역을 보여 주는 방송을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옥중 업무지시는 최 변호사 외에도 복수의 접견 변호사들을 통해 수시로 이뤄졌던 것으로 확인됐다.

송씨의 ‘신사업’ 구상은 지난 4월 이숨 사기 사건에서 송 씨가 징역 13년형을 선고받고 모든 법적 자문을 했던 최 변호사까지 구속되면서 스텝이 꼬인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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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들의 체면을 구긴 ‘최유정 쇼크’는 홍만표 변호사로 불씨가 옮겨가고 있다. ‘유능한 선배검사’를 수사해야 하는 서울중앙지검(사진)은 고민에 빠져 있다.

브로커 이동찬의 화려한 과거, 기약 없는 도주
180㎝의 키에 약간 벗겨진 머리. 군살 없는 체형에 화려한 언변. 최 변호사를 파국으로 몰고 간 시작과 끝엔 브로커 이동찬(44)이 있었다. 이씨는 검찰 수사가 개시된 지 4, 5일 뒤 최 변호사 사무실 직원들에게 문서 파쇄 등 증거인멸을 지시한 뒤 사라졌다.

이숨 전 대표 송씨를 소개해 최 변호사가 일확천금에 눈을 뜨게 한 것도 이씨였고, 지난 4월 정 대표를 감금폭행치상 혐의로 고소해 정 대표와 최 변호사 측의 수임료 분쟁이 언론의 주목을 받게 만든 것도 이씨였다. 지난 4월 15일 최 변호사의 대리인으로 고소장을 접수하러 서울 강남서를 찾은 이 씨는 경찰관들에게 자신을 최 변호사의 ‘남편’이라고 소개해 ‘자칭 남편’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서울 강북구 수유동의 한 중산층 가정에서 자랐던 이씨는 초·중·고등학교를 한 동네에서 졸업한 뒤 지방 4년제 대학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한 것으로 파악된다. 졸업 후 잠시 대기업에 다녔다는 이씨는 2003~2004년 당시 성행했던 금지금(金地金·골드바) 탈세 조직과 손잡으면서 범죄세계에 ‘입문’했다.

2007년 검찰은 수출 공산품의 가격 경쟁력 확보를 위해 마련된 금지금 면세 제도를 악용해 부가가치세를 포탈해온 금 도매업자 등 102명을 구속기소했다. 기소된 금지금 업자들이 포탈한 세금은 2조원 안팎이었다. 이른바 ‘폭탄업체’를 설립해 외국의 수입업자와 금세공품 수출계약을 체결한 뒤, 이 구매확인서를 가지고 국내 도매업체로부터 금을 영세율로 사들여 이를 시세보다 싸게 국내에 유통시킨 뒤 부가세를 내지 않고 자폭(폭탄업체를 폐업시킴)하는 방식이다. 신삼길 전 삼화저축은행 회장 등도 이때 처음 ‘별’(범죄전과)을 달아 유명해졌다.

이씨가 손잡은 건 600억원 정도의 탈세 실적을 올린 ‘김OO 형제’였다. 김씨의 하수인 격이었던 이씨는 2005년 무렵 김씨 일당에게 배운 조세포탈 수법을 역시 영세율이 적용되는 알루미늄괴에 적용해 자기 사업에 나섰다. 2007년 김씨 일당이 수사선상에 오르자 이씨는 “검찰 수사팀에 인사를 해 해결해주겠다”며 8억원 정도를 받은 혐의(변호사법 위반)와 자신의 조세포탈 혐의로 이듬해부터 검찰에 쫓기는 신세가 됐다.

궁지에 몰린 이씨의 선택은 밀출국이었다. 2008년 10월 유유히 중국으로 출국했던 이씨는 2012년 태국에서 체포돼 강제 송환됐다. 이씨는 어떻게 출국금지를 뚫고 해외 도피에 성공했을까? 2012년 사문서 위조 등 혐의에 관한 판결문에는 범죄 영화 같은 이씨의 출국 스토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판결문에 따르면 이씨는 불법출국 알선책인 조선족 ‘영걸’을 통해 여권 위조를 의뢰했고, 이는 신분증 위조의 고수인 박모 씨에게 접수됐다. 중국 여권을 위조해 자신을 조선족 ‘허호철’로 가장한 것이다. 이 여권을 들고 이씨는 인천공항 출입국관리사무소에 밀입국자 자진출국 신고를 했다.

출입국관리소 직원에게 이씨는 “나는 중국 조선족으로 2005년 1월 초순경 중국 다롄항을 출발하여 부산항 인근에 2005년 3월경 밀입국한 후 남양주, 고양 등지에서 일당잡부로 일하면서 지내다가 친동생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밀입국을 자진신고하고 귀국하려 한다”고 거짓말했다. 이씨의 말을 그대로 믿은 출입국관리소는 출국명령을 내려 신고 당일 밤 8시40분 중국 선양행 비행기를 탔다.

불법체류자 강제출국 시스템을 활용한 이씨의 밀출국 경위는 당시 경찰의 안테나에 걸렸었다는 게 경찰 관계자의 전언이다. ‘이씨가 직원 전용 출입구를 통해 게이트로 이동했다’, ‘그 과정을 국정원 직원, 출입국관리소 직원이 에스코트했다’는 등의 첩보가 접수돼 한때 경찰은 관련자들을 내사하기도 했지만 사건화되지 않았다고 한다. 다만 내사 당시 확보된 자료들은 검·경의 감찰과정에 제공돼 관련자들을 조용히 정리하는 근거로 활용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씨는 나름 검찰·경찰·세관 등지에 탄탄한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었다. 이씨의 검찰 인맥의 뿌리는 부장검사까지 지낸 김모 변호사다. 이씨는 지방에서 상경해 어렵게 대학에 다니던 김 변호사가 입주과외로 학자금을 해결할 때 가르쳤던 제자였다고 한다. 한때 이씨와 호형호제하며 지냈던 김 변호사는 이씨가 금지금 업자들의 ‘해결사’를 자임하고 다닐 무렵 이씨에게서 수천만 원을 빌려다 쓰고 함께 룸싸롱에서 어울렸다는 사실이 대검 감찰본부에 적발돼 감찰조사를 받던 중 사직했다. 지금은 인천에서 작은 법무법인의 대표 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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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만표 스토리’는 이제 막 뚜껑이 열렸을 뿐이다. 국민의 눈은 검찰이 썩은 자기 살을 도려낼 수 있는지에 쏠리고 있다.

연이은 보석 기각, 갑작스런 파국
김 변호사 외에도 이씨는 몇몇 검찰 수사관, 강남경찰서의 수사관들과 친밀하게 어울려 다녔다고 이씨를 아는 복수의 인사가 증언한다. 실제로 이씨가 금 밀수 및 금지금 조세포탈 분야의 거두인 김씨 형제에게 인정받은 데는 강남서 소속 여경 B씨의 공이 컸다.

이씨의 꾐에 넘어간 B씨는 이씨와 4년여 동안 동거하면서 ‘범죄정보관리시스템’을 이용해 김씨 형제 등 일당들에 관한 지명수배 여부를 164차례나 조회해 이씨에게 알려줬다. 이씨의 한 지인은 “이때도 B씨의 남편 행세를 하면서 강남서 경찰들과 두루두루 어울려 지내곤 했다”고 말했다. B씨는 이 같은 행위가 적발돼 2009년 8월 해임됐다. 과거 이씨를 수사했던 한 수사기관 관계자는 “위기 때마다 새로운 여자를 사귀어 이들을 자기 방어에 활용하는 게 이씨의 스타일”이라며 “B 여경 외에도 세관 여직원, 대기업 사원 등 여러 명의 ‘이동찬의 여인’이 수사과정에서 드러났었다”고 말했다.

검찰 관계자들과의 각별한 인연은 이번 도주 행태에서도 짐작되는 면이 있다. 검찰은 이씨가 전직 검찰 수사관 강모(49) 씨와 함께 도주 중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2009년까지 수사관으로 재직한 강씨는 이듬해 ‘스폰서 검사’ 수사에서 술접대를 받고 수사 기밀을 피의자에게 유출한 혐의(뇌물 수수·공무상비밀누설)로 구속됐던 인물이다. 이씨는 이숨 전 대표 송씨가 다시 구속되자 구치소 로비 업무 등을 맡길 요량으로 강씨를 이숨에 영입했다. 송씨는 이 과정에서 로비 자금 명목으로 5000만원 정도를 강씨에게 제공했다고 검찰에 진술했다고 한다.

검찰은 수 개월째 이씨의 행방을 찾고 있지만 실패했다. 과거 도주 경력에서 보여준 이씨 특유의 주도면밀함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보다 검찰을 곤혹스럽게 하는 건 이씨가 들고 있는 돈이다. 검찰은 이씨가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로부터 받은 돈 20억 중 6억원 이상을 현금화해 가져간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특히 최 변호사 측이 송씨로부터 받은 돈 50억원 중 상당부분도 이씨가 현금으로 들고 있을 개연성도 크다. 송씨 측의 한 인사는 “돈으로 얼마든지 협력자를 구할 수 있는 여건인 데다, 워낙 영리해 검찰이 잡기 쉽지 않을 것”이라며 “이미 해외로 출국했을 가능성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위태롭던 최 변호사는 돈 욕심을 주체하지 못해 결국 파국을 자초했다.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가 서울지방변호사회(회장 김한규)에 제출한 진정서 등에 따르면 최 변호사는 처음부터 ‘보석허가’를 조건으로 50억원을 요구했다. 애초 정 대표는 20억원을 수표 등으로 지급하고 30억원을 은행의 에스크로(escrow) 계좌에 맡겨놓았다. 약속한 조건 이행 시 돈을 인출할 권한을 넘겨받아 인출할 수 있도록 임시 보관해주는 금융 서비스다.

최 변호사는 보석 결정 전에 이 30억원을 받아내기 위해 재판부가 바뀔 때마다 재판부와의 친분을 과시하며 정 대표를 설득했다. 실제로 30억원을 받았다 돌려주기를 3차례. 지난 2월 말 최종적으로 보석 신청이 기각되자 정 대표는 불같이 화를 냈다는 게 정 대표 지인들의 이야기다.

정 대표는 지난 3월 초, 최 변호사와의 수임계약을 해지한 뒤 한 달여가 지난 뒤인 4월 11일 핵심 측근인 박평순 부사장 등을 최 변호사 사무실에 보내 “받아간 20억원 중 10억원도 돌려달라”고 요구했다. 이에 격분한 최 변호사는 다음날 서울구치소로 달려갔고 정 대표에게 강하게 항의했다고 한다.
이제 남은 건 ‘홍만표 스토리’
한바탕 쏟아 붓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려는 최 변호사를 제지하려던 정 대표와 신체 접촉이 벌어진 게 ‘구치소 폭행사건’의 전말이다. 4월 15일 최 변호사의 고소장을 접수받은 강남서 관계자가 이 사실을 한 언론사에 흘리며 일은 커졌다. 강남서 수사관들은 직접 서울구치소에 수사접견을 나가 정 대표에게 최 변호사와 합의를 종용했다는 의혹도 남겼다.

이후 브로커 이씨는 기자들을 상대로 한 언론플레이를 주도하며 정 대표를 궁지로 몰아갔다. 정 대표를 최 변호사에게 소개한 이숨 전 대표 송씨마저 고소사건 발생 후 “고소고발이 그렇게 좋으냐. 제발 그만하라”고 이씨에게 부탁했지만 이미 일은 걷잡을 수 없게 된 뒤였다.

정 대표는 얼마 뒤 “10억 중에 5억만이라도 돌려주라, 그러면 그 5억도 기부하겠다”며 타협안을 제시했지만 최 변호사 측은 거절했다고 한다. 결국 이 돈 중 13억여 원은 검찰이 압수한 최 변호사의 대여금고 2곳에서 고스란히 발견됐다.

이 사태로 파국을 맞은 건 최 변호사와 브로커 이씨, 이숨 송 전 대표, 홍만표 변호사에서 그친 게 아니었다. 예상치 못한 유탄을 맞은 이들도 있다. 대표적인 게 지난 4월 항소심 선고를 받은 두 기업인이었다. 최 변호사는 정 대표 사건을 수임한 것을 발판으로 구속 수감돼 있는 D그룹 J 회장, S그룹 P회장 부자 사건 수임을 시도했다.

최변호사는 J회장을 구치소 내 인사의 소개로, P회장을 그가 다니는 교회 등을 직접 뛰어다니며 접촉했다. 실제로 이들 굴지의 기업인들은 최 변호사와 몇 차례씩 만나기도 했다. P회장 측에는 “믿음이 있는 기업인이 믿음이 있는 변호사를 선임해야 하지 않겠느냐”며 착수금 10억원을 요구했다는 게 S그룹 측의 말이다.

최 변호사가 이들의 사건 기록을 모두 넘겨받아 검토하고 전화변론에 나섰다는 이야기가 파다했지만 두 기업 측은 이구동성으로 “기록 검토를 맡긴 적은 있지만 수임단계에 이르지 않았다. 실제로 돈을 지급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두 기업과 변호인단 측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파다했던 소문은 판결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항소심에서 집행유예 선고를 기대했던 이들에게 서울고법은 지난 4월 모두 실형을 선고했다. 중앙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이 판국에 어떤 정신 나간 판사가 두 사람을 집유로 풀어줄 수 있었겠느냐”고 했다.

도주한 브로커 이씨의 검거 여부는 지난 5월 구속기소된 최 변호사 사건의 마지막 불씨로 남아 있다. 하지만 ‘최유정 쇼크’에서 튄 불씨가 옮겨 붙은 ‘홍만표 스토리’는 아직 반도 펼쳐지지 않았다. ‘홍만표 사태’는 경찰 수사단계에서 무혐의로 처리된 ‘1차 정운호 도박사건’의 수사단계 변호를 검사장 출신 홍 변호사가 맡았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시작됐다.

정 대표가 2012년을 전후한 시점에 마카오에서 수백억 원의 도박을 했다는 소문이 업계의 정설처럼 퍼져나갔지만 2013년부터 1년3개월여 동안 이 사건을 인지 수사한 서울지방경찰청 산하 국제범죄수사대는 사건을 2014년 7월 불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이후 2011~2012년 서울중앙지검이 무혐의 종결하거나 약식기소 처분했던 많은 사건을 홍 변호사가 선임계도 내지 않고 조종하려 했다는 의혹이 차례로 제기됐다. 검찰 수사를 지켜보는 국민의 눈은 ‘검찰이 제 썩은 생살을 도려낼 수 있느냐’는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

임장혁·윤정민·김나한 기자 im.janghy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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