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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view &] 김영란법, 거품소비 걷어낼 계기 될 수도

중앙일보 2016.06.30 00:11 경제 8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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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영구
은행연합회 회장

지난 6월 초 한국은행이 1년 만에 기준금리를 1.5%에서 1.25%로 내렸지만 이로 인해 기업이 새로운 고용 창출에 기여할 신규 투자를 늘리게 되진 않을 듯하다. 전 세계적인 공급과잉과 총수요 부족으로 수출이 뒷걸음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금리인하로 투자처를 찾지 못한 부동자금이 부동산으로 발길을 돌려 오를 대로 오른 강남 재건축 시장에 투기 거품을 더 키울까 우려스럽다.

저성장과 청년 실업이 고착화 되어 가는 상황에서 우리나라 가계자산의 75% 이상을 부동산이 차지하고 있다. 강남 개발시대부터 쌓여온 부동산 거품의 영향이다. 이는 1990년대 초 일본 경제의 버블이 꺼지기 전 일본 가계자산 중 부동산 비중의 수치와 비슷하다. 실물 경제가 받쳐 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과잉 유동성으로 만들어진 일본 부동산 거품의 종착역은 거품 붕괴였다.

우리 사회의 거품 현상은 부동산에서만 나타나는 문제가 아니다. 한국의 5성급 호텔 식사 값은 우리보다 월등히 소득이 높은 미국·독일·일본보다 비싸다. 5성급 호텔 저녁 식사 세트 메뉴의 가격이 1인당 최저 15만원 선이다 보니 호텔 식당에선 외국인 투숙객을 찾아보기 힘들다. 한 끼를 때우는 점심값이나 골프비용조차 미국은 물론 일본보다 비싸다. 외국 유명 가수나 오케스트라의 내한 공연 티켓 값, 명절 선물로 인기 있는 굴비나 한우 갈비세트의 가격을 보면 입이 벌어진다. 웬만한 샐러리맨의 월급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다.

우리의 자동차 문화는 어떤가. 세계적인 명차인 독일의 BMW 5시리즈가 강남에서는 쏘나타만큼 흔하다 하여 ‘강남 쏘나타’로 불린다. 세계 최고의 스포츠카 제조사 포르셰의 카이엔은 ‘청담동 며느리의 SUV’라고 불린다.

얼마 전 독일 금융·교통의 중심지인 프랑크푸르트를 방문해 시내를 둘러보고 아우토반도 달려 볼 기회가 있었다. 시내와 고속도로에서 보니 달리는 차는 당연히 독일 차인 폴크스바겐·아우디·벤츠·BMW가 대부분이었지만 80% 이상이 한국에선 찾아보기 힘든 왜건형이었다. 실용적인 독일인들이 세단과 SUV의 중간형으로 연비가 좋고 차체가 짧아 주차가 쉬운 왜건형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놀라운 사실은 대형 고급 승용차인 벤츠 S클래스나 BMW 7시리즈와 포르셰 카이엔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1인당 국민소득이 우리의 2배 가까운 독일에서는 자국의 국산차인데도 거의 보이지 않는 대형 수입 승용차가 서울에는 흔하다. 외국인 투숙객은 사먹지 못할 정도로 비싼 호텔 음식값, 유흥업소의 터무니 없는 술값, 스포츠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비싼 골프 비용, 음악을 좋아하는 대중들이 쉽게 접하기 어려운 유명공연 티켓 값. 분명 건강하지 못한 우리 사회의 거품이다.

이는 사회의 구조적 문제다. 부동산 임대 등으로 땀 흘려 일하지 않아도 쉽게 돈을 버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아직도 과세 소득에 잡히지 않는 음성 소득이 많이 남아 있다. 갑을 관계 속에 지속하는 접대 문화도 그 원인일 것이다. 아파트라는 밀집된 주거공간에서 서로를 비교하며 만들어진 자기 과시와 모방 소비문화의 산물이기도 하다.

9월로 입법 예고된 김영란법 시행을 앞두고 논란이 뜨겁다. 제2의 성매매금지법이다, 연간 약 11조 이상의 경제손실이 예상된다며 반대 목소리가 높다.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앞두고 있지만 다소간의 조정은 있더라도 법 시행 자체는 변함이 없을 것 같다.

김영란법 시행으로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소비가 위축되고 화훼산업을 비롯한 농수축산업과 요식업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까다로운 부패방지법이 자리잡은 미국이나 독일을 보면 합리적인 가격 구조와 건강한 소비문화가 정착돼있다. 또 우리나라보다 소비가 활성화되어 있고 소비가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높다. 법 시행으로 예상되는 어느 정도의 소비 위축은 성숙한 사회로 가기 위해 치러야 하는 단기적 비용으로 감수해야 할 것이다. 김영란법 시행으로 우리 사회에 건강한 소비문화가 정착돼 장기적으로 경제에 보약이 되고 사회가 좀더 투명해지는 밑거름이 되기를 기대한다.

하 영 구
은행연합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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