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슈인사이드] 몰카 범죄자 vs 언론 파헤친 영웅?…'백인 헌팅남' 데이비드 본드의 진실

중앙일보 2016.06.29 15:39

나는 한국 언론이 외국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고 있다. 그들을 속이는 것은 쉬웠다. 한국 언론은 사실 확인을 하지 않는다”

기사 이미지

데이비드 본드가 실제로 한국을 방문했을 당시 한국 여성들과 찍은 영상. [사진 유튜브 캡처]

지난 4월 한국은 ‘백인 헌팅남’ 데이비드 본드에 대한 뉴스로 떠들썩했다. 그가 "한국에 입국하겠다"는 경고를 해서였다. 일부 언론사는 그의 '일거수 일투족'이라며 그가 페이스북 등으로 전하는 메시지를 실시간으로 보도했다.

당시 매체들은 ‘데이비드 본드라는 백인 남성이 아시아 여성과 데이트하는 과정, 성관계하는 장면까지 몰카로 촬영해 판매하며 돈을 벌고 있고, 곧 한국에 올 것이니 여성들이 주의해야 한다'고 보도했다. 

이후 본드에겐 ‘망나니’ ‘백인 쓰레기’ 등의 수식어가 따랐다. 분노한 네티즌들은 ‘그를 입국 금지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입국 금지 서명 운동도 벌였다. 일부 매체는 “본드가 출몰한다는 제보가 있으나 신고가 들어오기 전엔 처벌할 법적 근거가 마땅치 않다”는 경찰 관계자의 말을 전하기도 했다. 

“본드가 오고있다”, “지금 홍대에 있다고 한다”는 기사가 났지만 그가 실제로 한국에서 무슨 일을 벌였는지는 알 수 없었다. 몇 주 후 온라인을 달궜던 ‘백인 헌팅남’ 데이비드 본드는 잊혀져 갔다.

지난 6월 초 데이비드 본드가 언론에 다시 등장했다. 자신이 해외 매체 '라이스 데일리'에 기고한 해명 글을 통해서다. 국내 몇몇 언론도 그의 소식을 알렸다. 그는 지난 5월 9일(현지시간) 라이스 데일리에 “나는 성관계 영상을 촬영한 적이 없다. 내 웹사이트는 여행 가이드 사이트일 뿐, 음란물을 공유하는 곳이 아니다”며 “사실 나는 올해 한국을 방문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럴 듯한 사진과 영상으로 언론 매체들을 속여 내 웹사이트의 조회 수를 올리려 한 것 뿐이었다”는 해명이었다.

이에 일부 언론은 '본드가 여론이 악화하자 위기를 넘기려고 거짓 해명을 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실제 이 해명 글을 실은 라이스 데일리는 '본드의 글은 자신의 의견과 관점을 표현한 것 뿐이며 언론사의 입장이 반영된 것은 아니다”라는 단서를 달아놓기도 했다. 

데이비드 본드. 그에 대한 진실은 무엇일까? 여성들과 성관계를 갖고 이를 영상으로 찍어 파는 '몰카 범죄자'일까? 한국 여성들이 정말 두려워하고 조심해야 하는 존재일까? 사실에 조금이라도 접근해보기 위해 중앙일보 디지털 이슈팀은 페이스북 메신저로 그와 대화를 나눴다. 그 내용을 전하기에 앞서 그가 어떤 활동을 해왔는지를 먼저 설명하겠다.
 
 

| 그가 ‘트롤링’을 시작한 이유

데이비드 본드는 '헛소리'를 통해 스스로 유명세를 만든 인물로 보인다. 그는 "지난 2년간 ‘트롤링(Trolling·헛소리로 관심을 끄는 행위)’으로 수백만의 트래픽을 올렸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그가 트롤링을 시작한 계기는 2014년 한 홍콩언론 보도로 곤욕을 치르고 난 뒤부터라고 한다. 당시 그는 아시아를 여행하며 찍은 영상을 유튜브에 공유해 인기를 얻고 있었다. 

그러던 중 그가 홍콩에서 촬영한 영상이 현지 매체에 보도되며 논란이 일었다. 문제의 영상에는 본드와 그의 친구가 중국인 남성의 여자 친구를 유혹해 빼앗는 듯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많은 이들이 이 영상을 보고 분노했다. 본드는 비난의 표적이 됐다. 해당 영상은 두 달만에 350만 건의 조회 수를 기록했고 그는 ‘공공의 적’이 됐다.

이에 본드는 인터뷰를 하고 해명을 했지만 허사였다. 홍콩 언론은 백인 남성의 성생활에만 관심을 가졌다. 본드는 해명보다는 언론이 그에게 씌운 오명(Infamous)을 이용하기로 다짐한다.

| “돈 벌게 해줘서 고마워요, 한국”
본드는 한 매체에 “홍콩 여자들과 찍은 다른 비디오도 있다"고 연락했다. 한 시간 뒤 그의 인터뷰는 기사화됐고 다시 논란이 일었다. 이후 그는 웹사이트를 만들어 회원을 모았다. 17달러를 내면 자신이 찍은 영상을 볼 수 있게 했다. 언론은 이 미끼를 물었다. 

그는 수위를 더 높였다. 현지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해 “본드가 그의 웹사이트에 성관계 영상을 공개하고 있다”고 제보하게 했다. 예상대로 추측성 기사들과 괴소문들이 쏟아졌다. 본드는 미국으로 돌아간 후에도 ‘트롤링’을 계속했다. 여자 친구에게 일본 여고생 교복을 입히고 사진을 찍은 뒤 “지금 일본에서 여고생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는 말을 언론에 흘렸다.

그렇게 트레픽을 올린 뒤 다음 목표를 한국으로 잡았다. 자신의 유튜브에 꽤 많은 한국인 방문자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다. 평소 해왔던 것처럼 한국을 방문할 것이라는 소문을 퍼뜨리고 예고 영상을 만들었다. 웹페이지에도 한국 여행 메뉴를 넣고 한국행 비행기 티켓을 합성해서 올렸다. 하루 만에 예고 영상은 조회수 3만을 찍었고 이틀 뒤 한국 언론은 “백인 헌팅남이 한국에 온다. 몰카를 조심하라”는 기사를 쏟아냈다. 덕분에 그의 웹사이트 방문자는 일주일 만에 200만을 넘겼다.

한국 방문 소식에 동영상 수요가 높아지자 그는 동영상 조회 가격을 17달러에서 197달러로 올렸다. 그는 “폭발적으로 증가한 트래픽 덕분에 매출이 40%나 올랐다. 2년치 집세를 벌 수 있었다”며 “고마워요, 한국”이라고 전했다. 

그는 "내 웹사이트에는 어떤 섹스 영상도 없다. 단지 베트남에서 45분간 오토바이를 타거나 여자 친구와 일본 사원을 돌아보는 모습이 전부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그의 웹사이트에 회원 가입을 할 때 볼 수 있는 문구는 '제 여행 비디오를 더 보고 싶으신 분은 돈을 지불하세요'라고만 적혀 있다. 웹사이트 안에 음란물이 있는지를 안내하는 문구는 없었다.

본드는 “한국을 마지막으로 이제 나는 잠시 아시아 매체들을 놀려먹는 것을 그만두려 한다. 나는 당분간 잠도 푹 자고, 여자친구와 놀고, 길거리에서 사진을 찍으며 인생을 즐기고 싶다. 하지만 필요하다면 다시 ‘트롤링’을 할 것이다"라며 글을 마쳤다.

앞서 밝힌 것처럼 중앙일보 디지털 이슈팀은 본드와 페이스북 메신저로 대화를 나눴다. 그는 흔쾌히 인터뷰에 응했다. '본인임을 확인해 달라'고 하자 자신의 사진을 보내왔다. '기사에 사용해도 좋다'는 말과 함께. 

다음은 그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기사 이미지

2014년 본드가 한국을 방문했을 당시 찍은 사진. [사진 데이비드 본드 제공]

당신 본명을 알려줄 수 있나?
내 본명은 스티븐이다. 성은 굳이 알려줄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데이비드 본드는 닉네임이다.
나이는 몇 살인가?
올해 28세다.
한국에 왔던 것이 사실인가?
그 때(2016년) 공개한건 가짜 예고영상이다. 난 2014년, 2015년 두 번 한국을 방문했다.
2014년이 첫 방문인가. 그 때 얼마나 머물렀나?
3~4주 정도 머물렀다. 난 보통 오래 머무른다. 일본에서 3개월, 태국에선 5개월 있었다.
당시 만났던 한국 여자들은 어땠나?
좋았지만 낯을 가렸다…음. 잘 모르겠다.
한국 여자들의 영상도 찍었나?
난 항상 영상을 찍는다. 그리고 여자들에겐 그것을 알린다. 절대로 몰카는 찍지 않는다.
 
여행의 목적이 뭔가?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것들을 배우고, 세계 각지의 볼거리를 즐기는 것이다.
 
아시아 여자들에 대한 영상을 많이 찍었는데, 그들에게 특별한 매력이 있는지?
난 아시아 여자들을 좋아한다. 그들에게 특별한 매력이 있는 건 아니지만, 외모가 마음에 든다. 낯을 가려서 사귀기 어렵지만, 괜찮다.
 
아시아 여자들을 사귀는 노하우가 따로 있는지?
모든 나라의 문화는 다르다. 데이트 문화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나는 웹사이트를 통해 각 나라별로 여자를 사귀는 방법에 대한 가이드를 따로 소개하고 있다. 한국 여자를 사귀는 가이드도 만들지 모른다.
한국 언론을 속여 막대한 이익을 올렸다는 것이 사실인가?
그렇다. 나는 한국 언론이 외국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고 있다. 그들을 속이는 것은 쉬웠다. 한국 언론은 사실확인을 하지 않았다.
그럼 당신은 뉴스에 보도된 것처럼 나쁜 짓은 전혀 하지 않았다는 건가?
그렇다. 다 거짓말이었다. 난 올해 한국에 간 적도 없다.
직업은 뭔가?
직업은 없다. 웹사이트를 통해 돈을 번다. 영상을 찍고, 웹사이트를 잘 유지하는 데 모든 노력을 쏟고 있다.
웹사이트 방문자 수가 얼마나 되나?
정확히는 모른다. 지난 2년간 700명 정도가 가입했다.
700명이 17달러를 지불했으면 꽤 많이 벌었을 것 같은데.
일부는 그보다 더 많이 냈다. 한국 매체들이 나에 대해 보도할때는 67달러에서 197달러까지 받았다. 지금은 다시 이용료를 낮췄다.
아시아 매체들을 속인 것으로 인해 공격받거나 협박받지는 않았나?
많은 사람들이 욕을 했고, 악플을 남겼다. 하지만 별 신경 안쓴다. 사람들은 2주면 다 잊는다.
한국 매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
딱히 없다. 하지만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당시 왜 그렇게 흥분했었냐는 것이다.
사람들의 반응을 말하는 건가?
사람들은 백인남성이 동양인 여성들에게 말을 걸었다는 것에 화를 낸다. 한국 매체들은 아무 증거도 없이 내가 성관계 영상을 갖고 있다고 몰아갔다. 하지만 유튜브에는 정말로 성관계 영상을 공유하는 이들도 있다. 왜 그런 사람들은 보도하지 않나?
한국을 다시 방문할 계획이 있는지?
그렇다. 하지만 언제가 될지는 모른다. 한국 여자들은 외국인을 너무 두려워한다.
기사 이미지

최근 태국 여성과 함께 노는 영상을 공개한 데이비드 본드. [사진 유튜브 캡처]

| '픽업 아티스트'에 가까운 그의 실체
본드의 이야기는 영화에나 나올 법한 사기극처럼 보인다. 그는 “나를 욕하던 사람들 중 일부는 진실을 알고 내 팬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사실 여부를 한 번도 확인해 보지 않는 일부 언론에 일침을 날렸다. 하지만 본드가 매체들을 멋지게 속였다는 사실만으로 그를 영웅적인 인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본드는 실제로 여성들을 유혹해 데이트하는 영상을 찍어 올리고 돈을 받고 있다. 유튜브와 자신의 웹사이트를 통해 아시아 여성들을 '헌팅'하는 영상을 공개하고 있으며, 페이스북에서는 '여자 꼬시는 법'에 대한 강의를 펼치거나 조언을 한다. 그는 '직업이 없다'고 했지만, 그의 행태를 보면 ‘픽업 아티스트’에 가깝다.

'픽업 아티스트'라는 용어이자 직업(?)은 2000년대 초 자신을 ‘신남성주의자’라며 성폭행 합법화를 주장한 루쉬 V와 '현대판 카사노바'로 이름을 날렸던 닐 스트라우스 등 해외 유명 픽업 아티스트들이 소개되면서 알려지기 시작했다.
 
▶관련 기사
① 2시간 동안 160번의 흥분을···특이한 증후군
② 소라넷 흥망성쇠 17년··· 폐쇄 뒤 100만 회원은?


이후 자신을 픽업 아티스트로 지칭하며 높은 수업료를 챙기는 이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일부는 몰카를 유포하거나 성폭행을 저지르는 등 범죄도 서슴지 않았다. 실제로 지난해 9월에는 자신을 픽업 아티스트라 주장하는 차모(22)씨가 처음 만난 여고생을 성폭행해 입건됐고 2013년 대구 여대생 살인사건의 범인도 자신을 픽업 아티스트라고 주장했다.

본드가 실제로 여성들을 속이고 성범죄를 저지르는 악질 픽업 아티스트인지는 지금으로선 확인할 방법이 없다. 어쩌면 정말로 그가 주장하는 것처럼 여행 중 재미를 위해 영상으로 기록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는 “언제가 될 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을 다시 방문할 것”이라고 말했다.

배재성 기자, 한동엽 인턴기자 hongdoya@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