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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운드화 준비통화 지위 상실할 수도"…S&P의 경고, 통화전쟁의 개막

중앙일보 2016.06.28 18:09
신용등급 위기가 영국을 강타했다.

국제 신용평가사인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가 영국의 신용등급을 최고 단계인 ‘AAA’에서 ‘AA’로 두 계단 낮췄다. 영국계 신용평가사인 피치는 ‘AA+’에서 ‘AA’로 한 단계 내렸다.

S&P와 피치는 향후 전망을 ‘부정적’으로 유지했다. 앞서 무디스는 영국의 신용등급을 ‘Aa1’으로 유지하면서도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바꿨다. 세계 3대 신용평가사 모두 여차하면 신용등급을 추가로 떨어뜨릴 준비를 마친 셈이다.

국가 신용등급은 글로벌 금융시스템의 핵심 고리다. 신용등급 강등은 해당 국가에 대한 투자 리스크가 커졌다는 낙인이다. 정부와 기업의 자본조달 비용을 높여 새로운 위기를 잉태한다. 단발성 악재가 아니라는 얘기다.

영국의 신용등급 강등은 예상된 순서다. 영국은 유럽연합(EU) 체제의 수혜자였다. EU라는 거대한 자유무역지대 안에 있으면서, 또 그곳의 금융수도 역할을 하면서 번영을 누렸다. EU와의 결별은 그런 혜택의 상실을 의미한다. S&P는 “브렉시트로 영국의 외부 자금조달이 어려워지고, 금융부문의 동력이 약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성장률 둔화는 불가피하다.

S&P는 올해부터 2019년까지 연평균 성장률 전망치를 2.1%에서 1.1%로 반 토막냈다.

S&P 발표에서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영국 파운드화가 ‘준비통화(reserved currency)’로서 지위를 상실할 수 있다는 경고다. 준비통화는 세계 각국이 대외지급을 위해 보유하는 통화다. 기축통화라고도 한다. 파운드화의 이런 위상은 영국이 2차대전 이후 방대한 식민지를 잃고도 세계 최강대국 중 하나로 버틸 수 있었던 원천이었다. 런던이 유럽의 금융중심지가 된 것도 파운드화 역할이 절대적이었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현재 각국 중앙은행이 보유한 준비통화 중 파운드화 비율은 4.9%였다. S&P는 이 비율이 3%로 이하로 떨어지면 더 이상 준비통화로 분류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물론 하루아침에 벌어질 일은 아니다. 그러나 지금처럼 파운드화 폭락이 계속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준비통화의 기본 요건은 통화가치의 안정성이다. 값어치가 줄기차게 떨어지면 각국 중앙은행들이 파운드화를 보유할 동기와 의욕이 증발할 수밖에 없다. 중앙은행들의 외면은 파운드화 가치를 수직 추락시킬 수 있다.

파운드화의 준비통화 지위 상실은 영국만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각국 중앙은행의 준비통
화 포트폴리오가 달라진다. 달러나 일본 엔화 등에 대한 수요가 늘 수밖에 없다. 이미 조짐이 뚜렷하다. 엔화 가치는 브렉시트 이후 3거래일 만에 3.8% 절상해 달러당 100엔선 붕괴가 눈앞으로 다가왔다(28일 현재 102.06엔).

지금 상황에선 다른 준비통화 강세는 자연스런 현상이다. 그러나 해당국가가 감수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엔화 흐름을 약세로 돌리려고 시장 개입을 공언한 일본의 아베 정부가 그런 경우다. 미국 역시 금리를 올리기 더 어렵게 된다. 금리 인상은 달러화 강세를 자극한다. 다른 나라라고 가만히 있으란 법이 없다. 부지불식간에 자국 통화가치를 필사적으로 낮추는 통화전쟁의 방아쇠가 당겨지게 된다. 글로벌 통화시장이 대 격랑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뉴욕=이상렬 특파원 is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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