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관시 아닌 의법치국으로 중국 메가트렌드 주목해야

중앙선데이 2016.06.26 01:12 485호 12면 지면보기

최정동 기자



책을 펴면 ‘목차’ 뒤에 ‘머리말’이 나온다. 한데 머리말의 저자 자신에 대한 소개에서 주(註)가 달리는 경우는 처음 봤다. 저자는 자신의 이름 앞에 ‘영고삼 문협’이라고 적었다. 영고삼이 무슨 말인가. 책 뒷면의 주를 찾아보니 저자의 별호라고 한다. ‘영원한 고3’처럼 열심히 공부하다 죽을 각오라는 뜻에서 붙였다고 한다. 문협(文俠)은 그의 필명으로 검(劍) 대신 필(筆)을 쥔 협객처럼 살다 가겠다는 그의 인생관을 반영한 것이다.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다.


『중국의 슈퍼리치』 낸 강효백 교수

 



강효백(경희대 중국법학과·사진) 교수를 처음 만난 건 1990년대 후반이다. 당시 주중 대사관에 외교관으로 나와 있던 그를 특파원 신분으로 자주 만날 기회가 있었다. 잊혀지지 않는 추억이 있다. 하루는 그가 운전하는 승용차를 탔는데 그와 내가 함께 관심 있는 화제가 도마에 올랐다. 서로 침 튀기며 이야기하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아뿔싸 차가 똑바로 가지 않고 좌우로 부들부들 떨며 가는 게 아닌가. 높아진 그의 목소리만큼이나 그가 잡은 운전대 또한 떨리고 있었다.



저자는 동의하지 않을지 몰라도 나는 그에게서 곧잘 ‘광기(狂氣)’를 느낀다. 치열함이다. 자신의 관심사를 집요하고도 철저하게 파고든다. 베이징에서 남들은 주말이면 골프백 챙겨 필드로 향할 때 그는 홀로 역사의 현장을 찾아 답사를 떠나곤 했다. 그리고 밤에는 기록과 집필 등에 몰두했다. 그 결과가 『차이니즈 나이트』 『협객의 나라 중국』과 같은 우리에게 익숙한 십수 권의 책이다.



신간 『중국의 슈퍼리치』는 상위 1500명의 총재산이 우리나라 연간 국내총생산(GDP)의 1.5배에 달하는 중국 부자들에 관한 이야기다. 호박씨를 팔아 거상(巨商)의 반열에 오른 녠광주(年廣久), 36세에 과부가 된 뒤 말단 여공에서 출발해 세계 최대 에어컨 회사인 GREE의 총수가 된 둥밍주(董明珠), 무협지로 의협심을 키우며 상협(商俠)이 된 마윈(馬雲) 등 갑부 10명의 스토리를 그 자신의 인터뷰나 관찰에 의해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



12년의 외교관 생활을 떠나 학교 강단으로 자리를 옮긴 뒤 그의 거침없는 표현은 더욱더 불꽃을 튀기고 있는데, 특히 국내에 ‘대륙의 실수’란 말을 유행시킨 샤오미(小米)의 창업자 레이쥔(雷軍)에 대한 혹독한 평가는 꽤 눈길을 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해 9월 미국을 국빈 방문할 때, 또 한 달 후 영국을 찾을 때 중국의 정보기술(IT) 업계 총수 대부분이 동행했는데 유독 레이쥔만 빠졌다. 왜 그랬을까.



이에 대한 답을 저자는 2014년 12월 중국 기업 총수 송년포럼에서 한 둥밍주의 말에서 찾는다. “레이쥔은 다른 사람의 특허를 훔쳤어요. 도둑질한 기업을 위대한 기업이라 부를 수 있어요? 나 같으면 창피해 얼굴을 들고 다니지 못할 것 같은데.” 레이쥔이 일궈낸 건 짝퉁 기업이란 지적이다.



그래서 저자는 반면교사(反面敎師)가 아닌 정면교사(正面敎師)로서의 레이쥔은 29세에 죽었다고 선언한다. 레이쥔은 22세에 당시 중국 IT 업계 최고인 진산(金山)에 입사해 29세에 총재에 오르지만 37세에 거액을 챙겨 사직했다는 것이다.



중국 갑부 10명의 성공 비결에 대한 분석도 흥미롭지만 정작 책의 핵심은 현대 중국이 어떻게 수많은 억만장자를 배출하고 있는지에 대한 저자의 탐구에 있다. 그는 “우리가 맨눈으로도 잘 보이는 중국을 아직도 붉은 선글라스를 쓰고 보려 하는 데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우리가 범하는 오류는 뭔가.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로서 사업에는 ‘관시(關係)’가 중요하고 ‘아직’ 우리보다 뒤졌다고 생각하는 데 있다는 것이다. 중국은 ‘자본주의 개발독재국’으로서 사업에는 ‘법제’가 중요하고 ‘이미’ 우리보다 앞섰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21세기 중국 사업에 있어서 중시해야 할 우선순위는 1위가 법제, 2위 국가 정책, 3위가 관시라고 그는 말한다. 한국에선 법 하면 판검사, 법원, 고소·고발을 떠올리지만 중국에선 제도, 법제 건설, 규칙, 입법 등을 거론한다. 한국에서의 법은 ‘재판’인데 중국에서의 법은 ‘제도’라는 이야기다.



중국 기업가의 성공 배경엔 그들의 눈물과 땀이 배어 있지만 더 중요한 건 중국의 법과 제도였다고 저자는 목소리를 높인다. 마윈이 중국의 온라인 비즈니스 시장을 선점하고 있던 세계적 기업 이베이를 꺾을 수 있었던 게 대표적 사례다.



마윈이 2003년 온라인 결제시스템 ‘알리페이’를 내놓았을 때 당시엔 아무런 법적 근거도 없는 ‘불법 사금융 시스템’에 불과했다. 그러나 중국 당국은 이를 단속하기는커녕 1년 후 ‘전자서명법’을 제정해 알리페이를 합법화했다.



중국은 갑부 2세 문제도 법과 제도로 다스린다. 완다(萬達)그룹 회장 왕젠린(王健林)은 아버지가 부자 소탕에 반평생을 바친 홍군(紅軍) 출신인데 정작 본인은 지난해 중국 최고의 갑부에 올랐다. 문제는 외아들 왕쓰충(王思聰). ‘총명하게 생각하라’는 이름과는 전혀 다른 졸부 행태로 구설에 오른다.



“난 친구를 만날 때 돈이 많든 적든 상관하지 않는다. 어쨌든 모두 나보다 돈이 없기 때문이다”는 망발을 중국판 트위터 웨이보(微博)에 띄우는가 하면 하룻밤 한자리에서 마신 약 3000만원어치 술값 영수증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리기도 했다. 이런 갑부 2세가 기업을 물려받으면 어떻게 될까.



이에 대한 대비책이라고나 할까. 중국 정부는 2009년 ‘기업국유자산법’을 만들었다. 이 법에 따르면 국유자본이 단 한 주라도 들어갈 경우 민영회사도 국가 출자 기업으로 간주돼 정부의 인사 개입권이 보장된다. 이로써 사실상 중국에서 순수한 의미의 민영회사는 사라지게 됐다. 자유롭게 뛰어놀게 하되 국가가 언제든 제동을 걸 수 있게 된 것이다.



저자는 중국식 수퍼 자본주의의 비밀이 이 같은 법제화에 있다고 말한다. 중국에서의 법은 현실을 반영해 주체적으로 제정 또는 창조되는 것이란 이야기다. 중국 역사상 245명의 황제 중 최고의 명군으로 당 태종이 꼽히는 이유는 그의 재위 시 확립된 당률(唐律)에 있었다. 시진핑과 리커창(李克强) 총리, 리위안차오(李源潮) 국가 부주석 등 현재 중국 최고 수뇌부가 법학도로 채워진 건 우연이 아니다. ‘관시’보다는 ‘의법치국(依法治國)’으로 나아가는 중국의 메가트렌드를 주목하라는 게 저자의 주문이다.



 



 



유상철 논설위원 겸 중국전문기자

선데이 배너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