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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달은 꼭 ‘잠수’타는 바이올린 천재의 무대

중앙선데이 2016.06.26 00:24 485호 30면 지면보기
1990년대 세계 클래식 음악계를 평정했던 20대 남성 바이올린 트로이카가 있었다. 러시아의 막심 벤게로프와 바딤 레핀, 그리고 미국의 길 샤함이 바로 그들이다. 1970년대 초반 태어난 이들은 공통점이 많았다. 어린 시절부터 신동으로 인정받았으며, 곱슬머리이고, 모두 유대인으로서 음악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탄탄한 배경을 뒤에 깔고 음악 인생을 출발했다.



페레스트로이카 이전 시대, 클래식 신동은 양쪽 체제의 문화적 우월함을 선전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도구였다. 어린 시절을 이스라엘에서 보낸 길 샤함은 열 살 때 예루살렘 심포니 및 이스라엘 필하모닉과 협연하며 두각을 나타냈다.


길 샤함& 세종 솔로이스츠 내한공연, 7월 2일 예술의전당

하지만 구소련의 벤게로프와 레핀이 어린 나이에 직업적인 음악 세계에 입문해 온갖 평지풍파를 경험한 것과 달리, 길 샤함은 비교적 평범한 유년기를 보냈다. 1982년 부모님을 따라 뉴욕에 정착한 그는 인문계 학교에 진학했다. 주말에 줄리아드 음악원에서 강효와 도로시 딜레이에게 받은 바이올린 수업이 그가 어린 시절 누린 음악 교육의 전부였다. 치맛바람이 매섭게 날리던 줄리아드였지만, 학자였던 길 샤함의 부모는 아들의 미래를 통째로 음악에 걸고 싶지는 않았다.



길 샤함의 인생을 바꾼 것은 한 통의 전화였다. 1989년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평소와 다름없이 영어 수업을 듣고 있었다. 교무직원이 교무실에 걸려온 전화를 받아보라며 수업 중이던 그를 호출했다. 런던에서 걸려온 국제전화 속의 목소리는 발병한 이착 펄만을 대신해 런던 심포니와 협연할 생각이 있는지 물었다. 열일곱 살의 길 샤함에게 선택의 순간이 찾아왔다. 이대로 전화를 끊고 돌아가 영어 수업을 마저 들을 것인가, 아니면 당장 조퇴하고 바이올린을 들고 공항으로 달려갈 것인가. 다음날 그는 런던 공항에 나타났고 그날 저녁 지휘자 마이클 틸슨 토마스와 협연했다. 그리고 그는 두 번 다시 평범한 고교생으로 되돌아가지 못했다. 전 세계를 떠돌아다니며 1년에 200회가 넘는 공연을 소화해야 하는 앞날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강효교수



하지만 길 샤함은 연주자로서의 사명감이라든가 화려한 스포트라이트에 매몰되지 않았다. 평범한 유년기를 보낸 그는 일상의 행복이 얼마나 소중한지 잘 알고 있었다. 바이올리니스트인 아델 앤서니와 결혼식을 올리며 그는 아내에게 1년 중 석 달은 무대를 떠나 가정에만 충실하기로 약속했다. 그 약속을 지키고 있는 이들은 지금까지도 1년에 3개월씩 잠수를 타는 커플 음악가로 유명하다. “행복하지 않으면 음악을 할 이유가 없다.” 이들 부부의 좌우명이다.



이런 샤함도 결코 포기하지 않는 무대가 있다. 그들의 20년 지기 오랜 벗, 세종 솔로이스츠와의 협연 무대다. 세종 솔로이스츠는 1994년 줄리아드의 강효 교수가 그의 제자들을 주축으로 결성한 실내악단이다. ‘세종’이라는, 다분히 한국적인 타이틀과 달리 창단 당시 한국 국적을 포함한 8개국 출신의 젊은 연주가들로 구성되었고, 이런 다국적인 정체성은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하다. 카네기 홀과 케네디센터를 포함해 지금까지 전 세계 1백 곳이 넘는 도시에서 400회 이상의 연주회를 가진 이 악단은 한국적인 것과 세계적인 것의 경계를 넘나들며 최고의 앙상블을 인정받아 왔다.



20대 시절, 1997년 아스펜 뮤직 페스티벌에서 비발디 ‘사계’를 처음 협연하며 시작된 길 샤함과 세종 솔로이스츠의 유대관계는 불혹의 나이가 지난 지금도 여전히 끈끈하다. 아내 아델 앤소니는 세종 솔로이스츠의 창단 멤버이자 초대악장이다. 비발디 ‘사계’로 시작된 이들의 우정은 강석희의 ‘사계’와 더불어 다시 한 번 개화한다. 지난 2006년 평창 동계올림픽 홍보를 위해 특별히 위촉된 이 작품은 세종 솔로이스츠와 길 샤함의 협연으로 유럽 각지에서 소개되어 청중들의 환호를 받았다. “세종 솔로이스츠와 연주하는 것은 NBA팀과 농구를 하는 것과 같다”며 동지의식을 자랑하는 길 샤함은 “그들의 눈빛만 봐도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 수 있다”고 장담한다. 그들의 환상의 팀워크를 오는 7월 2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확인할 수 있다. ●



 



 



글 노승림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음악 칼럼니스트 anna.s.roh@gmail.com, 사진 세종 솔로이스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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