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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크’를 누를 때 생각나는 것들

중앙선데이 2016.06.26 00:12 485호 34면 지면보기
페친



국어 오픈 사전 페이스북 친구 Facebook Friend의 줄임말


이윤정의 공감 대백과 사전

그여자의 사전 부러움과 질투의 마르지 않는 원천. 그러나 그 부러움과 질투를 꾹꾹 누르고 라이크를 누르며 내 안의 대인배 기질을 닦게 해주는 사람들. 그것의 숫자는 당신의 유명함의 정도와 비례하지만, 그렇다고 반드시 당신이 마음을 툭 터놓을 베스트 프렌드가 나보다 많을 것이라고는 믿고 싶지 않은 것. 나보다 더 나를 잘 알지도 모르는 사람들. 때로는 얄밉고 내 불행의 기원인 듯 싶어 확 다 끊어버릴까 싶기도 한 것. 하지만 특히 혈중 알콜 농도가 면허 정지 수준 이상이 되는 날이면 내 비어있는 마음 속을 다 내보이며 날 좋아해달라고 매달리게 되는 외로움의 안식처.



 



여행을 자주 가는 페친은 나를 힘빠지게 한다. 세상은 넓고 여행은 끝나지 않는다. 오대양 육대주를 다 밟아야만 끝날 것 같은 페친들의 그림같은 여행사진을 보면 대한민국이 금수강산이란 말은 해외 여행을 갈 수 없는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한 말 뿐이 아닌가 싶다. 출장을 갔으면 일을 할 것이지 왜 온 나라의 금수강산들을 다 돌아보고 온단 말이냐. 아니면 그 회사는 그렇게 휴가를 가도 잘리지 않는단 말이냐.



맛있는 음식 사진을 매일같이 올리는 페친은 나를 살찌게 한다. 하루를 힘겹게 마치고 잠들기 전 침대에 누워 페북을 여는 순간 투플러스 1등급으로 마블링이 예술적으로 아로새겨진 고기가 숯불에 미디엄 레어로 익고 있는 사진을 올린 페친. ‘역시 불금엔 좀 구워줘야…’ 한단다. 흠, ‘투뿔’ ‘마블링’ 그런 거 다 기름 덩어리라서 하나도 몸에 좋을 게 없다고 위로해보지만, 이미 입안엔 침이 가득 고였다.



불행히도 해외 여행은 항상 해외 맛집 투어를 겸하기 마련이다. 여행과 맛집탐방 포스팅을 연이어 본 날은 도를 닦는 마음으로 라이크 하나 던진 뒤 폭풍처럼 몰려드는 배고픔을 참지 못하고 한밤중에 벌떡 일어나 냉장고 문을 연다. 말라비틀어진 베이컨 조각이라도 결국 프라이팬에 올린다.



귀여운 아이 사진을 올리는 페친들은 일찍 결혼해서 일찍 애를 낳은 나를 후회하게 한다. 우리 아이도 고만할 땐 촉망받는 영재였고 귀여움이 폭발하는 왕자님이었다구. 아니 이건 아이가 다 커버려 자랑할 거리가 더 이상 없을 때 뒤늦게 페이스북을 만든 마크 저커버그의 잘못이다.



책을 많이 읽고 독후감을 부지런히 올리는 페친은 나를 주눅들게 만든다. 더 주눅드는 건 책을 자주 쓰는 페친들이다. 그 뿐인가. 창업에 성공한 뒤 나날이 번창하는 페친, 박사를 딴 뒤 교수님이 된 페친, 하루 걸러 유명 강연을 하는 페친, 포스팅 하나만 올리면 수백 개의 좋아요가 달리는 페친….



자랑은 페북의 존재 이유이며 부러움과 질투는 페친의 존재 의무다. 나는 문득 부러움과 질투의 경계는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 본다. 아마도 내가 접근 가능한 영역 안에 있느냐의 여부인 것 같다. 도저히 내가 따라잡을 수 없는 능력, 예를 들어 그림 그리기나 요리를 잘하는 페친들에게는 순순히 무릎을 꿇고 존경의 염을 담아 순도 높은 부러움의 라이크를 날릴 수 있다.



그러나 나도 잘 할 수 있는데, 나도 잘 했어야 하는 부문인데 싶은 쪽에서 두각을 발휘하는 페친들에게는 질투가 끓어오르기 시작한다.



어느날 자리에 모인 친구들에게 은근 슬쩍 페친의 ‘뒷담화’를 제안했다. “사실 페북에서 할 수 없는 유일한 게 이거 아니겠냐”며. ?매일 프로필 사진 바꾸는 페친, 징징대는 페친, 혼자 온갖 정의감에 불타는 것도 모자라 다른 사람마저 왜 정의롭지 않냐고 분개하는 페친, 점잖다 싶었는데 알고 보니 각종 혐오로 똘똘 뭉친 페친, 페친 신청은 해놓고 라이크 하나 댓글 하나도 안누르는 알다가도 모를 페친? 등 저마다 밉상 페친의 보따리를 풀어놓았다.



정말로 그 페친들을 미워하냐고? 절대 그럴 수 없다. 나의 뜬금없는 자랑과 여행 및 먹방 사진에 라이크를 눌러주는 모든 페친을 사실 사랑한다. 그것이 나를 움직이게 하고 떠나게 하고 먹게 하는 원동력이며 나는 그들에게 받는 라이크를 자부심의 훈장 쯤으로 여기는 소심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물론 페친에도 등급 차이는 있다. 고기 먹고 올린 사진에 라이크를 눌러주는 페친 보다는 고기를 같이 먹을 수 있는 친구가, 그보다는 힘이 빠져 있을 때 불러내서 고기를 사주며 푸념을 들어주는 친구가 베스트 프렌드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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