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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M] 음향 전문가들에게 듣는 사운드작업의 세계 ③ 배우의 목소리를 입히는 다이얼로그 수퍼바이저

중앙일보 2016.06.26 00:05
방영 중인 TV 드라마 ‘또! 오해영’(tvN)의 음향감독 박도경(에릭)은 그야말로 ‘소리의 마법사’다. 동해와 서해의 파도 소리를 구별하고 낮소리와 밤소리, 햇빛 드는 소리까지 만들어 낸다. 또한 “빛 들어오는 소리가 빠졌잖아” “단순 골절과 복합 골절 소리도 구별 못해?”처럼 소리와 관련된 흥미로운 에피소드는 사운드 관련 직종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계기가 됐다. 그래서 magazine M이 준비했다. TV 드라마 속 도경처럼 야외에서 소리를 따고(사운드스케이프), 직접 소리를 만들고(폴리아티스트), 배우들의 대사를 총괄하는(다이얼로그 수퍼바이저) 음향 전문가들이 말하는 ‘소리’ 작업의 세계는 어떨까. 이들이 전하는 소리의 매력과 가치, 영화 속 음향의 역할과 비전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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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인 수퍼바이저. [사진 라희찬(STUDIO 706)]

③ 배우의 목소리를 입히는 다이얼로그 수퍼바이저
배경음으로 쓸 자연의 소리도 채집하고, 장면을 더 실감 나게 해 줄 소리를 만드는 일도 끝났다면, 이제 무슨 일이 남아 있을까. 바로 배우들의 ‘대사’를 입히는 일이다. 예를 들어, 어느 사극영화에서 바닷가를 향해 말을 타고 달려오는 장군이 등장하는 장면이 있다 치자. 파도 치는 소리도 말발굽 소리도 모두 선명한데, 정작 장군이 무슨 말을 하는지 도통 들리지 않는다면 난감할 터. 촬영할 때 현장에서 녹음한 걸 그대로 쓰면 되지 않느냐고? “그렇지 않다”는 게 그 답이다.

영화 음향 스튜디오 ‘라이브톤’의 김병인(34) 다이얼로그 수퍼바이저는 “동시 녹음한 대사의 60% 정도만 실제 영화에 쓰인다. 그나마 멜로처럼 조용한 장르에서나 가능한 일”이라 설명한다. 블록버스터 같은 장르에서는 대사 대부분을 후시 녹음한다는 뜻이다. 다이얼로그 수퍼바이저는 대사와 관련한 모든 사운드를 총괄하는 자리. 촬영 현장에서 동시 녹음한 대사 중 쓸 만한 것을 추린 후, 감독·배우와 함께 후시 녹음을 진행한다.

후시 녹음의 기본은 영화 전체에서 각 배우의 목소리 톤을 고르게 맞추는 일이다. 같은 사람의 목소리인데 장면마다 톤이 다르면 관객이 몰입하기 힘들기 때문. 물론 화면 속 배우의 입 모양과 대사가 나오는 순간을 정확히 일치시키는 일도 중요하다. “싱크가 조금만 어긋나도 몰입이 확 깨진다. 그래서 말할 때마다 늘 거울을 보면서 입이 움직이는 모양을 관찰할 정도로 노력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또 하나 중요한 건, 대사가 잘 들리도록 하는 일이다. 대사가 정확하게 들리는지 체크하기 위해 그는 시나리오를 읽지 않고 후시 녹음을 진행한다. “철저히 일반 관객의 입장에서 듣기 위해서”다. 김병인 수퍼바이저가 꼽은, 후시 녹음을 가장 잘하는 배우는 송강호. ‘설국열차’(2013, 봉준호 감독) 등을 비롯해 열 개 작품 가까이 함께했다. 그는 “송강호는 기계 같을 정도로 완벽하다. 심지어 촬영장에서 이미 ‘여기는 후시 녹음해야 할 부분’이라며 체크해 오기도 한다”며 혀를 내둘렀다. 스케일이 큰 블록버스터일수록 후시 녹음할 작업량은 늘어나고 어려움도 커진다. ‘명량’(2014, 김한민 감독)이 대표적인 경우다. 그는 “‘명량’에서는 배우들이 전투를 위해 배에 올라탄 순간부터 모두 후시 녹음이었다(웃음). 거대한 배를 움직이는 특수 효과 장비와 강풍기 소리 등이 워낙 컸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특정한 대사 없이 많은 사람이 모여 웅성거리는 소리는 어떻게 만들까. 김 수퍼바이저는 “그런 소리를 ‘왈라’라고 한다”며 “현장에서 미리 녹음할 때도 있지만, 보통은 단역 배우 30여 명을 스튜디오에 모아 직접 녹음을 한다”고 설명했다. 자연스럽게 웅성거리는 소리를 담기 위해 그는 어딜 가든 습관적으로 작은 녹음기를 들고 다닌다. “기술적으로는 완벽을 기하되, 연출적인 판단은 내리지 않는 것이 원칙”이라는 김 수퍼바이저는 얼마 전 연상호 감독의 ‘부산행’(7월 20일 개봉) 후반 작업을 마쳤다. 물론, 숨 돌릴 틈도 없이 김지운 감독의 ‘밀정’(9월 개봉 예정)에 투입됐지만 말이다.
‘또! 오해영’ 속 후시 녹음
까칠한 도경은 후시 녹음을 하러 온 배우(임하룡)에게 "대사가 잘 안 들린다”며 계속 "다시 하라”고 지시한다. 배우가 일부러 술 먹는 캐릭터에 맞춰 연기한 것이라 화내자 도경이 하는 말. “정작 관객이 못 알아들으면 그게 무슨 소용인데요?”

김병인 수퍼바이저 Q&A

-2010년 ‘무적자’(송해성 감독)로 시작해 40여 편에 달하는 작품에 참여했다. 이 일을 시작한 계기가 뭔가.

“고등학생 때부터 이 분야에 관심이 많아 대학에서도 영화를 전공했다. 라이브톤에서 인턴 생활을 하다 미국 SAE와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본격적으로 영화 음향을 공부했다. 라이브톤에 정식 입사한 건 2010년이다.”

-그중에서도 다이얼로그 파트를 전문으로 하는 이유라면.
“음향의 다른 파트도 매력적이지만, 대사 파트는 감독·배우들과 협업한다는 점이 재미있었다. 혼자 작업하는 것보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한다.” -협업을 잘하는 것이 중요한 자질 같다. “핵심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봉준호 감독님이 ‘영화 연기의 마지막은 후시 녹음’이라 말하기도 했다. 그만큼 중요하다. 각 연출자의 스타일이 다르고 수많은 배우가 함께하기 때문에, 그들 사이에서 의견을 조율하며 신뢰를 쌓는 일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또! 오해영’ 속 박도경처럼 배우한테 화를 내지는 않는다(웃음).”

-소리에 민감할 것 같다.
“사람들과 이야기 나눌 때도 그 공간의 모든 소리를 다 듣는 편이다. 아마 이 분야에 있는 사람은 전부 그럴 것 같다.”

-이 일을 꿈꾸는 이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영화를 정말 좋아해야 한다. 전문적인 교육 기관에서 공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영화를 좋아하지 않으면 절대 오래 할 수 없다. 관객이 많이 들고 안 들고를 떠나, 정말 어려운 작업을 해냈을 때 오는 카타르시스가 엄청나다. 영화를 좋아하지 않으면 느끼지 못할 감정이다.”

-앞으로의 목표는.
“‘한국영화는 대사가 안 들린다’는 말이 안 나오게 하고 싶다(웃음). 내 분야에서 예술을 해 보고 싶다는 게 목표 아닐까.”
▶관련 기사
① 소리로 풍경을 듣는 사운드스케이프
② 소리를 만들어 내는 폴리아티스트

임주리 기자 ohma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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