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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한국전쟁-냉전시대 최초의 열전

중앙일보 2016.06.24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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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은 논란의 한복판에 놓여 있다. 6·25전쟁이냐 한국전쟁이냐는 명칭 논란에서부터 전쟁의 발발 책임, 민간인 학살 문제 등에 이르기까지 곳곳이 지뢰밭이다. 벌써 67년이나 됐다. 전쟁이 일어날 때도 이데올로기 전쟁의 성격이 강했지만 지금도 계속된다. 그런 이유로 인해 한국전쟁 관련 책은 언제 출간되었는지를 우선 살펴봐야 한다. 이 책의 원서는 2013년 독일에서 나왔다. 독일 출신의 저자 베른트 슈퇴버(55)는 포츠담대학 역사학과 교수다.

한국전쟁-냉전시대 최초의 열전
베른트 슈퇴버 지음, 황은미 옮김, 한성훈 해제, 여문책, 324쪽, 1만7000원

저자는 『냉전이란 무엇인가-극단의 시대 1945~1991』 『공산주의로부터의 해방-냉전기 미국의 해방정책 1947~1991』 등을 이 책에 앞서 펴냈다. 냉전시대 전문가인 저자는 한국전쟁 관련 공부를 10년 정도 하고 이 책을 냈다. 대략 2000년대 이후 한국전쟁에 관심을 가지고 책을 구상한 셈이다. 이 시점이 중요한 것은 냉전의 해체와 함께 소련과 중국 등 사회주의권의 비밀 문서들이 공개된 이후이기 때문이다.

새롭게 공개된 문서들은 한국 현대사와 관련 적어도 2가지 논란은 해소할 수 있게 했다. 하나는 전쟁을 누가 일으켰나 하는 것이다. 냉전 시대에는 서로 책임을 떠넘겼다. 북한과 동유럽은 남한이 먼저 전쟁을 일으켰다고 억지 주장을 폈다. 냉전 이후 공개된 문서들은 김일성이 1949년 3월 모스크바의 스탈린을 찾아가 무력 도발을 논의했으며, 중국의 마오쩌둥과 함께 3자가 긴밀히 공모하다가 1950년 1월 스탈린이 전쟁을 결정하는 과정을 드러내 보였다. 이 책은 그 점을 분명히 반영하고 있다.

또 하나는 남·북한 분단의 책임 문제를 이 책은 새롭게 보게 한다. 1970~80년대 나온 사회과학책에서 분단의 책임을 이승만의 정읍발언(1946년 6월)에 돌리곤 하는 것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 공개된 문서들은 1945년 8월 15일의 광복 직후부터 북한에서 소련과 김일성의 지휘 아래 사회주의 국가 수립 작업이 진행되었음을 보여 주었다.

이 책에서 이런 논란은 아예 문제가 되지도 않는다. 이 책은 제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협력 관계였던 미국과 소련이 전후 국제질서의 패권을 놓고 대립하고 갈등을 보이는 과정을 추적해 보여주는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소련이 진주한 북한과 미국이 진주한 남한에서 각기 두 강대국의 입맛에 맞는 국가 수립이 진행되는 과정을 추적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한국전쟁을 “냉전시대 최초의 열전”이라고 규정하면서 동시에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한반도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미국과 소련이 벌인 크고 작은 분쟁들을 함께 서술하고 있다. 한국전쟁에는 내전과 국제전의 성격이 모두 들어 있는데 이 책에서 부각되는 것은 국제전이다.

한가지 아쉬운 것은 남한에서 진행됐던 토지개혁의 긍정적 성과에 대한 연구가 냉전 해체 이후 새롭게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시각은 이 책에 전혀 반영이 안 되어 있는 점이다. 그럼에도 한국전쟁을 바라보는 저자의 전반적 관점을 기존의 전통주의, 수정주의 같은 냉전시대의 범주로 묶을 순 없을 것 같다.

분단국가였던 독일 출신의 냉전 전문가가 냉전의 각축장이었던 한반도 현대사를 다룬 냉전 해체 이후 첫 체계적인 연구서란 점에서 이 책은 일단 주목할 만하다. 특히 우리 사회가 냉전이 해체되고 새로운 문서들이 속속 공개되었음에도 계속 이데올로기 논란만 벌이다 놓친 ‘전쟁의 속살’들을 되돌아볼 수 있게 한다. 예컨대 주로 10대 후반부터 20대 초반의 청년이었던 미군 병사들이 전투를 치르며 겪은 공황심리, 군대 내 인종차별과 전쟁포로 문제 등 지금까지 제대로 조명되지 않은 ‘개인적 이슈’들도 새롭게 바라볼 수 있게 한다.

일본의 경제부흥과 군수산업 발달, 군사적 재무장이 한국전쟁의 영향으로 가능했다는 것은 우리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일본만 그런 것이 아니다. 세계가 많은 영향을 받았다. 특히 서독은 한국전쟁이 없었다면 그렇게 빨리 재무장을 하지 못했을 것이고, 경제도 그렇게 ‘전설적 도약’을 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저자는 진단한다.

소련이 지배하던 동유럽에서는 한국전쟁 발발 직후 북한을 지원해야한다는 캠페인이 시작되었다. 김일성을 찬양하고 미국과 서방을 비방하는 정치구호가 집회에서 울려퍼졌다. 당시 동독도 동유럽과 유사한 반응을 보였다. 이런 가운데 서독은 엄청난 전쟁의 두려움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이런 흐름을 타고 아데나워 수상은 서독 군대의 재건을 추진해 나갔다.

한국전쟁은 제2차 세계대전 패전 후 침체 된 서독 경제의 부활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 한국전쟁 직전에 서독의 공산품 생산은 무너진 상태였고 실업자는 약 200만 명이나 되었다. 한국전쟁 직후 서동 경제의 변화를 저자는 이렇게 표현했다. “이제 속담처럼 된 한국 붐은 서독에서 제한 없이 생산력을 가동하도록 했다. 미국이나 다른 서방국가들이 군수품에 대한 엄청난 수요를 더는 충당할 수 없게 되자 서독이 생산력을 가동해 필요한 군수품을 생산해냈다. 몇 년간 서독은 이러한 틈새를 군수품을 선두주자로 하여 잘 메워나갔고 서독 경제는 회전기계처럼 잘 돌아갔다.”(200쪽)

서독의 해외무역은 1952년에 두 배로 증가했다. 우리가 그동안 놓쳤던 세계사적 시야, 한국전쟁이 전세계에 미친 결과를 이 책은 새롭게 바라보게 한다.

배영대 문화선임기자 balanc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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