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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대비 유로화로 바꿔두자” 런던 시민들 환전소 몰려

중앙일보 2016.06.24 02:43 종합 3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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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를 묻는 브렉시트(Brexit) 국민투표를 마친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와 부인 서맨사 여사가 런던 다우닝가 근처의 한 투표소를 나서고 있다. [런던 AP=뉴시스]


영국의 운명을 가를 날이다. 런던을 포함한 잉글랜드 일대엔 밤사이 천둥과 번개로 요란했다. 6월로는 이례적인 폭우도 쏟아졌다. 런던의 일부 지하철 노선은 끊겼다.

“브렉시트 땐 파운드화 급락” 우려
전날 폭우 내렸는데도 투표 행렬
베팅업체선 잔류 승률 93%로 높여


23일의 이런 날씨가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국민투표를 하기 위해 투표소로 향하는 발길까진 막지 못했다. 오전 7시 투표소가 문을 열자마자 우산을 쓴 사람들이 줄지어 모여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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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한 유권자만 4649만9573명으로 영국 선거 사상 최다다. 투표 결과는 382개 개표소별로 발표되는데 24일 오전 4시(한국시간 낮 12시)부터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해 오전 7시면 승패가 가려질 것으로 보인다.

런던 중심부의 한 투표소에서 만난 존은 “(탈퇴에 따른) 불확실성은 언제나 끔찍한 일”이라며 “내 지인들처럼 나도 언젠가 유럽에서 살게 될 수도 있는데 (EU 잔류를 통해) 그럴 수 있는 길을 확실하게 하고 싶다”고 했다. 맬컴 샐러먼은 “마음이나 감정적으론 탈퇴”라며 “구체적인 사항을 따져 결국 잔류를 택했다”고 말했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60대 여성은 “1975년 영국의 유럽경제공동체(EEC·EU 전신)에 잔류할지 묻는 국민투표에선 잔류를 선택했다”며 “그러나 그 사이 너무나 달라졌다. 내가 동의했던 EU가 아니다”며 탈퇴를 지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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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소에서도 엇갈린 견해들이다. 실제 여론조사도 그랬다. 22일 발표된 네 개의 여론조사 중 두 곳은 잔류, 두 곳은 탈퇴 우위였다. 더타임스를 위한 유고브 조사에선 잔류가 51%로 탈퇴(49%)보다 2%포인트 앞섰다. 데일리메일·ITV를 위한 콤레스에선 잔류(48%)가 6%포인트 우위였다. 반면 오피니움에선 탈퇴(45%)가 1%포인트, TNS에선 탈퇴(43%)가 2%포인트 우위였다.

이 같은 우려에 22일 환전상 앞에는 긴 줄이 늘어서곤 했다. 회계사인 데이비드는 “8월 말 미국으로 여행을 갈 텐데 만일 탈퇴가 이기면 파운드화가 곤두박질칠 게 아니냐. 큰돈은 아니지만 수백 파운드를 날릴 수도 있어서 유로화로 환전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권에서도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긴장한 모습이었다.

다만 추이는 잔류 쪽에 좀 더 승산이 있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급상승세의 탈퇴 바람을 꺾고 잔류 쪽이 실지(失地)를 회복한 모양이어서다. 여론조사들을 합산하는 파이낸셜타임스(FT)의 ‘여론조사들의 여론조사’에서도 잔류가 47%로 탈퇴를 2%포인트 차로 앞섰다. FT는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팀은 조용히 승리를 자신한다. 그러나 굉장히 팽팽할 것이라고 예상한다”고 보도했다.

23일 석간신문인 이브닝스탠더드에 발표된 입소스모리 여론조사에서도 잔류(52%)가 탈퇴(48%)보다 우세했다. 같은 날 포퓰러스에선 10%포인트로 잔류가 앞선다고 발표했다. 또 오후 2시엔 베팅 업체인 패디파워가 잔류 쪽에 거는 돈이 몰려든다며 잔류의 승률을 93%로 높여 잡았다.

22일엔 말 그대로 총력전이 벌어졌다. 잔류 진영은 가용 가능한 자산을 모두 동원했다. 살아있는 전·현직 총리들이 모두 출동했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EU에서 떠나면 우리 경제가 나빠지고 EU에 머물면 강해진다”고 호소했다. 고든 브라운 전 총리는 "내가 아는 영국은 모욕으로 가득찼던 이번 토론 때 모습보다 더 훌륭해야 한다”고 말했다.

보수당 소속의 존 메이저 전 총리도 “우리가 떠나기로 하면 진짜 떠나는 것”이라며 “위대한 영국이 정말 작은 잉글랜드로 쪼그라들 수 있다. 스코틀랜드는 떠날 것이고, 투덜거리는 웨일스인과 북아일랜드만 있을 수 있다.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 사이엔 국경을 통제할 테고”라고 경고했다.

역시 잔류 쪽인 스코틀랜드국민당의 당수인 니컬라 스터전 스코틀랜드 총리는 “나는 독립국가를 믿지만 독립국가들이 함께 보다 큰 대의를 위해 일해야 한다는 것도 믿는다”고 했다.

탈퇴 운동을 이끄는 보리스 존슨 전 런던시장은 “민주주의는 문제 일으키는 놈들이 있다면 쫓아내야 작동한다”며 “탈퇴해야 민주주의와 이민 정책에서 우리의 통제권을 되찾아올 수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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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판 선거운동도 치열했다. 곳곳에서 잔류·탈퇴 운동원들이 뒤엉켰다. 런던의 워털루역 앞도 예외는 아니었다. 유럽의 판도를 정한 ‘워털루 전쟁’이 재연된 셈이다.

유럽인들의 ‘남아달라’는 애교 섞인 호소도 이어졌다. 독일의 대중지인 빌트는 “1966년 월드컵 결승에서 잉글랜드의 골을 골로 인정해주겠다”고 약속했다. 당시 영국이 독일을 4-2로 제치고 우승컵을 들었으나 잉글랜드의 세 번째 골을 두고 독일인들은 “골라인을 넘지 않았다”고 주장해왔다.

런던=고정애 특파원 ockh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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