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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명 중 남성이 20명…부산지하철 여성배려칸, 아쉬운 출발

중앙일보 2016.06.24 01:37 종합 22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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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첫 운행을 시작한 부산도시철도의 여성배려칸. 곳곳에 남성이 앉아 있다. [사진 송봉근 기자]


22일 오전 7시50분 부산 중구 남포동역에서 승차한 도시철도1호선의 ‘여성배려칸’(5호 객차)이다. 하지만 남녀 승객이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고, 독서를 하는 등 여느 객차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승객 50여 명 중 20여 명이 남성이었다. 전동차 안에 ‘여성배려칸’이라는 글자가 적힌 분홍색 스티커가 곳곳에 붙어져 있었지만 남성 승객은 별 신경을 쓰지 않는 듯했다.

도시철도 1호선 타보니
분홍색 스티커 안내문 붙어있지만
바쁜 출근길, 모르고 탄 남성 많아


이날은 부산교통공사가 출·퇴근 시간에 여성 승객을 배려하기 위해 도시철도 1호선 5번째 객차를 여성배려칸으로 운영한 첫날이었다. 오전 7~9시, 오후 6~8시까지 운영된다. 역 성차별 논란을 예상해 강제가 아닌 시민 자율로 운영된다.

앞서 서울 지하철에는 2007년과 2011년에 여성전용칸을 도입하려다 반대 여론에 부딪혀 무산됐다. 2013년 여성전용칸을 운영하려던 대구에서도 같은 이유로 시행되지 못했다. 9월 21일까지 3개월간 시범 운영한 뒤 폐지·확대 여부를 결정한다.

여성 김모(44·회사원)씨는 “시도는 좋지만 보다시피 남성 승객이 많이 타고 있지 않느냐”며 “저도 스티커가 붙여진 것을 보고서야 알았다”며 홍보 부족을 지적했다. 김명신(18·고 2)양은 “홍보가 부족한데다 남성이 많이 타고 있어 여성배려칸임을 체감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같은 날 오전 8시10분 범일동 역에서 탄 전동차도 마찬가지였다. 여성배려칸에는 10여 명의 남성이 타고 있었다. 남성들 표정은 ‘나 몰라라’ 하는 표정이었다. 장모(35)씨는 “시간에 쫓겨 여성배려칸인 줄 모르고 탔는데 알고나니 괜히 부담스럽다”고 머쓱해 했다.

전동차의 질서문란을 막기 위해 배치된 도시철도 보안관이 남성 승객에게 다른 곳으로 옮겨줄 것을 요구하자 승강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한 50대 남성은 도시철도 보안관의 요구에도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승객 정모(28)씨는 “자율에 권유라고는 하지만 사실상 반강제나 다름없어 기분이 나빴다”고 했다.

지하철의 질서유지를 보조하는 사회복무요원 A씨는 “주로 40~50대 남성이 똑같은 돈 내고 지하철 타는데 왜 차별하느냐고 따져 애를 먹었다”고 토로했다.

여성배려칸 운영에 남성들의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부산교통공사 홈페이지 게시판에 “여성칸 반대한다” “남성전용칸도 만들어 달라” 같은 글이 하루에 수십 개씩 올라오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여성배려칸 운영에 공감하는 시민들의 의견도 올라오고 있다. 여성배려칸이 제대로 운영되기 위해 남성들의 자발적 협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날 한 승객은 “여성배려칸에 탄 걸 깨닫고 다른 곳으로 옮겼다”며 “남성의 협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여성배려칸을 도입하려면 무엇보다 남성들의 협조를 얻기 위한 설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렇지 않으면 반발만 심해져 여성 보호가 아니라 여성 혐오만 부추기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부산교통공사 관계자는 “남성들이 타기는 했지만, 시행 첫날인 점을 감안하면 예상보다 많은 남성이 협조해 준 것 같다”며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부산교통공사는 앞으로 여성배려칸 홍보를 강화할 계획이다.

글=강승우 기자 kang.seungwoo@joongang.co.kr
사진=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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