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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장편문학상 수상자 이지 “작가로 첫발, 작품 바스라질 정도로 고치고 또 고쳐”

중앙일보 2016.06.24 01:25 종합 25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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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제 7회 중앙장편문학상에서 200대 1의 경쟁을 뚫고 수상작으로 선정된 『담배를 든 루스』가 출간됐다. 등단 1년 만에 장편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이지씨는 “다채롭게 읽히면 좋겠다”고 했다. [사진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내가 스스로 대학생임을 실감하는 순간은 역설적이게도 아르바이트를 할 때다. 아직까지 아르바이트는 으레 대학생들의 전유물로 인정해주니까. 하지만 아르바이트로 학비를 벌어 공부를 한들 졸업 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그래서 나는 스펙을 쌓는 데 별 관심이 없다. 하루하루 스스로의 감정 상태에 신경 쓰며 아르바이트에 매달릴 뿐이다. 어쩐지 이번 생에서는 어떤 줄에 선다 해도 다른 줄이 먼저 줄어드는 걸 보게 될 것 같은 느낌이다….”

‘어차피 다들 낭비하며 살잖아요’
술손님 말벗 알바하는 여대생
요즘 청년세대 고단한 삶 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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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에 흩어진 조각 정보들을 모아 주인공의 내면을 재구성해 놓고 나니 암울하기 그지 없다. 되풀이하기 진부할 정도지만, 그만큼 요즘 청년 세대의 삶의 조건이 척박하다는 얘기다. 최근 출간된, 지난해 제7회 중앙장편문학상 수상작 『담배를 든 루스』(웅진지식하우스·사진)의 세계다.

수상작가 이지(41)씨는 하지만 천연덕스러운 표정으로 다른 그림을 내놓는다. 소설이 결코 칙칙하지만은 않다는 얘기다. 오히려 경쾌하게 느껴지는 대목이 많다.

가령 이런 대목. 여대생인 ‘나’는 늙수구레한 남성 술손님들의 말벗 역할을 하는 아르바이트도 한다. ‘날씨연구소’라는 모호한 이름의 요식업소에서다. 추근대는 영화감독이 ‘이런 데서 일하는 거 시간낭비 아니냐’고 비꼬자 “어차피 다들 낭비하며 사는 거잖아요. 돈이든 시간이든”이라고 답한다. ‘나중에 뭐가 되고 싶으냐’는 질문에는 “그런 거 없어요. 그냥 먹고 살면 돼요”라며 받아친다.

지난해 11월 수상작 발표 이후 반년 여. 이씨는 “전북 변산의 작가 레지던스, 경북 청송의 객주문학관을 옮겨 다니며 소설을 고쳐 썼다”고 했다. 청송에서 만난 소설가 권지예씨가 “작품 바스라지겠다. 뭐 읽을 게 남아 있느냐”고 물을 정도로 ‘독하게’ 쓰고 또 썼단다.

“첫 소설책이어서 명작을 남겨야 한다는 부담은 없지만 이지라는 작가의 첫 발이 이렇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는 게 스스로 엄격했던 이유다. “작가도 잘 모르는 얘기를 멋있게 쓸 수도 있겠지만 그건 나 자신이 수긍하기 힘들었다. 내가 소설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점, 내가 발 딛고 있는 영역에서 진심을 다해야 다른 사람의 마음도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점이란 소설 주인공 나는 물론 날씨연구소에서 함께 일하는 순수 언니, 다다 등 변두리로 내몰린 청년 군상들의 삶과 관계된 대목들이다.

그는 “비슷한 나이 또래보다 나이 차가 적어도 15년 이상 나는 20대 초반의 친구들과 쉽게 친해진다”고 했다. “그래서 그들과 얘기를 나누다 보면 고단했던 내 20대 때보다도 훨씬 살기 힘들어졌다는 걸 실감한다”고 했다. 과거에는 그래도 막연히 잘 될 거라는 기대감이라도 있었는데 요즘 청년들에게서는 그것조차 찾아볼 수 없다는 얘기다.

소설에서 의미심장한 대목은 나를 포함한 청년들 삶의 문제가 인간 누구나 얽매일 수 밖에 없는 매일매일의 감정 처리 문제와 연결돼 보다 보편적인 데를 건드린다는 점이다. 소설 주인공은 “나도 마찬가지지만 날씨연구소 고객 대부분이 (감정의)양극성 장애를 앓거나 결정 장애, 혹은 회색분자”라고 독백한다.

똑같은 일상이 반복되는 생존 정글 같은 삶의 현장에서 가장 치명적인 손실은 감정의 평정, 심리적인 안정감을 잃는 일이다. 그래서 “(그런 심리 안정에 영향을 미치는)날씨야말로 세상의 전부” “기후만큼 인간에게 많은 영향을 미친 게 없다”는 주장이 힘을 얻는다.

아이슬랜드 록밴드 시규어 로스, 영국의 싱어송라이터 에드 시런, 세계적인 사진가 유르겐 텔러 등 개성적인 대중 예술가들이 적지 않게 등장하는 점도 흥미를 더한다. 이씨의 문화적 취향을 드러내는 표지들이다.

책 제목부터 그렇다. ‘담배를 든 루스’는 영국 미술가 줄리언 오피의 팝아트 작품 ‘Ruth Smoking’을 한국어로 옮긴 것이다. 디테일을 삭제해 하나의 도안처럼 단순화시킨 담배 피우는 여성 그림은 매끄러우면서 얄팍한 소설 속 인물들, 어쩌면 우리 자신을 연상시킨다.

글=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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