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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살균제 조사 법적 근거 없었다”는 산업부 … 그 근거 없는 주장

중앙일보 2016.06.24 00:01 경제 2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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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석
경제부문 기자

정부는 가습기 살균제 사건 책임론에서 비껴나 있다. 직접적 ‘가해자’가 있는 사건이기도 하지만, 스스로도 무관함을 입증하려 애쓴다. 유해 화학물질 관리 책임이 있는 환경부나 공산품 안전관리 주체인 산업통상자원부 모두 그렇다. 윤성규 환경부 장관이 “책임을 통감한다”고 말했지만 그 이유는 ‘관리 소홀’이 아닌 ‘입법 미비’였다.

자율안전확인 대상이라는 항변
KC인증 준 2007년엔 조사 가능
입법 미비 핑계로 모르쇠 전략
피해자와 가족들 또 한번 울려


산업부는 침묵 전략을 쓴다. 산업부가 이 사건에 대해 공식적으로 언급한 건 단 한번뿐이다. 지난 5월 산업부는 한 언론보도에 해명자료를 내고 ‘당시 품질경영 및 공산품안전관리법(이하 품공법)은 바닥·욕조·타일 등을 세척할 때 쓰는 세정제만을 관리대상으로 하고 있었고, 살균제는 안전관리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를 관리할 법적 근거가 없었다’고 했다.

23일 열린 20대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첫 업무보고에서도 산업부는 같은 입장을 고수했다. 자신들의 소관 업무가 아니었으며, 법적 근거도 없었다는 설명이다. ‘하고 싶었지만 법에 근거가 없어 못했다’는 뉘앙스로 읽힌다.

그러나 엄밀히 따지자면 산업부는 할 수 있었는데 하지 않았다. 산업부가 아니라 한글을 아는 누구라도 제품만 보면 가습기를 닦는 세정제가 아니라 가습기 내부 살균제라는 사실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제품 로고에 버젓이 가습기 ‘살균’이라고 돼 있고, 사용방법엔 ‘가습기 물을 교체할 때 물통에 직접 넣어 주십시오’라고 적어놓았다. 그런데 KC인증까지 준 산업부는 몰랐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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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1일 서울 여의도 옥시 본사 앞에서 피해자 가족들이 항의 집회를 하고 있다. [중앙포토]


산업부의 설명대로 일반 세정제는 ‘자율안전확인’ 대상이다. 인증을 받기 위해 제조업자가 스스로 신고서를 내면 된다. 여기에도 인체에 유해하다는 경고가 충분히 기재돼 있다. ‘어린이 손에 닿지 않는 곳에 보관할 것’, ‘눈에 들어가거나 마셨을 경우 즉시 의사에게 문의할 것’ 등이다. 심지어 한 제품의 안전검사 합격증에는 ‘유해물질 함유 화학제품’이라는 표시까지 있다.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법적 근거’ 역시 KC인증을 줬던 2007년엔 있었다. 2010년 법 개정으로 없어졌지만 당시 품공법 제28조는 “산업자원부장관은 안전인증대상 외에 시중에 유통되는 공산품 중에서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된다고 판단되는 경우 그 위해성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안전성 조사를 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1호가 바로 ‘어린이·노약자·장애인 등의 생명에 위해를 가할 우려가 있는 경우’다. 이 규정에 따라 산업부는 가발용 접착제, 우산·양산, 비옷·슬리퍼·장화 등 자율안전확인 제품에 대해 직권으로 안전성 조사를 실시한 적이 있다. 가습기 살균제 역시 얼마든지 그럴 수 있었다는 의미다.

우 의원은 “항목과 품목이 많다는 이유로 대다수의 제품을 자율안전확인 대상으로 분류한 탓”이라며 “국민의 생명과 신체를 보호해야 할 정부가 책임 회피로 일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스멀스멀 국민의 폐를 공격하기 시작한 게 15년, 한두 명씩 피해자가 쌓이기 시작한 게 10년, 사건이 수면위로 드러난 게 5년이다. 그러나 사건은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죄를 지은 사람을 어떻게 처벌할지, 보상은 어떻게 할지, 이 심대한 사안에 대한 책임은 누가 질지 아무것도 정해진 게 없다. 시간은 흐르고, 고통은 켜켜이 쌓여가는데 정부의 ‘모르쇠’ 전략이 피해자와 가족의 멍든 가슴을 또 한 번 짓누르고 있다.

 장원석 경제부문 기자 jang.won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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