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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재혼 권유하자 “근혜 때문에…” 말끝 흐린 박정희

중앙일보 2016.06.22 01:35 종합 18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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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박정희 대통령(왼쪽)이 김재순 당시 공화당 원내총무와 악수하고 있다. 김재순 전 국회의장은 3선 개헌을 반대하는 입장이었으나 박 대통령의 간곡한 부탁으로 지지로 돌아섰다고 밝혔다. [사진 기파랑]


“근혜 때문에….”

1969년 3선 개헌 즈음 술자리서
박 “한 번만 더 할 거야, 도와줘
또 하면 내가 성(姓)을 갈 것”


1975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일본 정계의 막후 실력자 세지마 류조(瀨島龍三)의 재혼 권유를 거절하며 딸인 박근혜 대통령을 이유로 들었다는 사실이 공개됐다. 21일 출간된 김재순 전 국회의장의 회고록 『어느 노 정객과의 시간 여행』(기파랑)을 통해서다.

지난 5월 93세를 일기로 별세한 김 전 의장은 언론인 출신인 안병훈 기파랑 대표와 지난해 11월부터 10여 차례 만나 자신의 삶을 풀어놨다. 책은 이를 정리한 대담 형식으로 나왔다.

회고록에 따르면 김 전 의장은 75년 신병 치료차 일본에 있었다. 병문안을 온 세지마가 “박 전 대통령에게 ‘반드시 재혼을 하시라’ 당부해 달라”고 했다. 김 전 의장이 귀국 직후 청와대에 들어가 세지마의 말을 전했더니 박 전 대통령이 “근혜 때문에…”라며 말끝을 흐렸다는 것이다.

69년 3선 개헌 당시 김 전 의장이 박 전 대통령에게 직접 설득당해 개헌 반대에서 개헌 지지로 입장을 급선회한 뒷이야기도 드러났다. 박 전 대통령이 김 전 의장의 집으로 전화를 걸어 “도미가 좋은 것이 들어왔는데 술이나 한잔 하자”고 했고 그날 술자리에서 “나 이번 한 번만 더 할 거야, 다음엔 종필이에게 넘겨줄 거야, 도와줘”라며 설득했다. 또 “정말 한 번밖에 더 안 하시겠습니까”라고 묻는 김 전 의장에게 대통령은 “또 하면 성(姓)을 갈겠다”고 장담했다고 한다.

7선 국회의원을 지낸 김 전 의장의 긴 정치 역정은 다양한 비화를 남겼다. 회고록은 그의 대표적 어록인 ‘토사구팽(兎死狗烹)’에 얽힌 이야기도 자세히 다뤘다. “92년 YS가 대통령 입후보를 해서 제일 먼저 찾아왔던 게 접니다. 찾아와서 자기를 좀 도와달라, 자기하고 같이 연설 좀 다녀달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그래, 자네 대통령 되는 데 내가 일비(一臂) 지원하지’하고 흔쾌히 대답하고 충심으로 도왔습니다. 그런데도 대통령이 되자 저와 박준규씨를 제일 먼저 친 거 아닙니까.”(330~331쪽)

그는 YS의 태도가 바뀐 순간을 대선 승리 이후 신라호텔에서 1박2일 함께 숙식하며 취임사·조각 등에 대해 논의했던 때로 기억했다. “국가지도자는 박정희 대통령처럼 현장을 자주 찾아야 된다”고 거침없이 조언했던 것을 ‘팽’당한 이유의 하나로 꼽았다.

노태우 전 대통령과의 인연도 공개됐다. 김 전 의장은 5공 시절 내내 정치활동을 전혀 하지 않았다. 정통성이 없다고 생각해서였다. ‘개헌 논의를 88 서울 올림픽까지 동결한다’는 내용의 87년 4·13 호헌 조치 이후 김 전 의장은 한 신문에 “무엇이 무섭고 무엇이 두려워 체육관 선거를 또 하려 하는가”란 글을 기고했다.

그 글을 본 노태우 당시 민정당 대표가 만남을 청해왔다. 여의도 63빌딩에서 만난 김 전 의장은 “당신은 군인이니 군인다워야 한다. 이제 국민에게 당신의 목숨을 믿고 맡기라”고 조언했다. 그날 서로 가슴을 치고 끌어안기도 했을 만큼 분위기가 좋았다. 그러고 얼마 후 6·29 선언이 나왔고 그는 노 전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적시타를 쳤다. 마음속으로 존경한다”고 했다. 이후 그는 정계에 복귀해 노태우 정부 시절 국회의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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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 잡지 ‘샘터’를 창간해 반세기 가까이 이어간 문화인으로서 김 전 의장이 남긴 이야기도 여럿이다. ‘샘터’ 창간 당시 한국일보 장기영 사주가 “아니, 김 의원 돈 많소? 잡지는 돈 없으면 안 됩니다. 우리 ‘주간한국’ 보십시오. 전부 벗겨야 합니다. 요새 벗지 않으면 안 봅니다”고 했다.

이에 그는 “벗기는 건 왕초(장기영 사주의 별명)가 벗기시고 나는 입히렵니다”고 대답했다. 또 초대 편집장으로 김지하 시인이 물망에 올랐는데 “하필 폐병에 걸려 편집장으로 영입하지 못했다”는 얘기도 털어놨다. 그가 해인사로 매달 ‘샘터’를 부쳤더니 성철 스님이 열반에 들기 전까지 꼬박꼬박 책값을 보내왔다는 일화도 공개했다.

이지영 기자 jy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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