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톡톡! 글로컬] 광주의 아픔 헤아리지 못한 국가보훈처

중앙일보 2016.06.22 01:13 종합 21면 지면보기
기사 이미지

김호
사회부문 기자

1980년 5월의 총탄 흔적이 선명히 남아있는 광주광역시 동구 옛 전남도청. 5·18의 최후 항쟁지인 이곳은 광주의 상징과도 같은 곳이다. 이 일대에서 계엄군의 총탄에 맞은 시민들이 목숨을 잃었다. 매년 5월 17일이면 이곳에서 희생된 영령의 넋을 기리기 위한 전야제도 열린다.

국가보훈처가 옛 전남도청 앞에서 오는 25일 군(軍)이 참여하는 퍼레이드를 계획한 사실이 드러났다. “5·18과는 무관한, 6·25전쟁 66주년 기념 행사”라는 게 보훈처의 이유다. 그러면서도 보훈처는 비난 여론을 의식해 지난 20일 결국 행사를 취소했다.

놀라운 사실은 보훈처가 군 퍼레이드 과정에서 제11공수특전여단의 참여를 준비해왔다는 점이다. 11공수는 5·18 당시 계엄군으로 투입돼 시민들에게 집단 발포를 했던 부대다. 옛 전남도청 앞에서 34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계엄군으로 온 또 다른 부대인 7공수와 함께 광주에 영원히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보훈처의 계획을 접한 5·18 단체들과 광주시민들이 크게 반발하는 이유다. 윤장현 광주시장은 보훈처의 계획에 대해 ‘광주시민들에게 집단적 트라우마를 촉발시키고 시민의 자부심을 손상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보훈처의 반응은 황당하다. ‘6·25 기념 행사일 뿐 5·18 관련 행사도 아닌데 뭐가 문제냐’는 태도를 보였다. ‘시민들의 아픔과 정서를 고려하지 못했다’며 일찌감치 행사 참여 계획을 전격 취소한 11공수나 육군 31사단의 행동과도 대비됐다. 광주시의 실무자 역시 군 퍼레이드 계획을 사전에 알고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아 사건을 키웠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번 계획을 놓고 5·18 기념식에 이어 또 다른 갈등을 유발하려는 보훈처의 의도로 보는 시각이 많다. 보훈처는 매년 5·18마다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거부하면서 논란을 초래했다. 같은 논란이 수년째 반복되고 있지만 적극적인 해결 노력도 없다.

보훈처는 논란이 불거지자 “광주시민들에게 상처가 될 것이라고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광주의 특수성을 이해하지 못한 기관이 해마다 5·18 기념식을 주관해온 셈이 된다.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은 보훈처 홈페이지에서 “명예로운 보훈에 소홀함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또 보훈처는 홈페이지에 ‘보훈은 국민통합에 기여하는 정신적·사회적 인프라’라고 소개하고 있다. 박 처장과 보훈처의 모습에서 통합을 떠올리는 국민이 과연 얼마나 될까.

김호 사회부문 기자 kimho@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