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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시한 ‘성인식’ 잊어주세요…박지윤의 홀로서기

중앙일보 2016.06.22 01:06 종합 22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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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20년차 박지윤은 “10대부터 사회생활을 시작해 남들보다 일찍 산 것 같다”며 웃었다. 그가 요즘 바라는 기적이 있다면 해외 무대에 서보는 것이다. [사진 박지윤 크리에이티브]


가수 박지윤(34)은 작사·작곡·프로듀싱한 싱글 앨범 ‘오’를 7일 발매하면서 홍보자료를 직접 썼다. 서울 강남의 인터뷰 장소로 혼자 차를 몰고 왔으며, ‘박지윤 크리에이티브’라는 메일명으로 직접 자료를 보냈다.

데뷔 20년…싱글앨범 ‘오’ 내놔
작사·작곡·프로듀싱, 홍보도 해
화려함보다 내 음악 하고 싶어


올해로 가수 데뷔 20년 차인 박지윤은 홍대 인디씬의 뮤지션처럼 독립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최근 그는 2013년부터 3년간 몸담았던, 가수 윤종신이 대표 프로듀서로 있는 미스틱엔터테인먼트에서 나왔다.

박지윤은 “소속사에 들어가 다시 화려하게 무대에서 춤추는 모습으로 돌아와 좋아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나 자신이 힘들었다”고 털어놓았다. 노래 ‘성인식’의 가수 박지윤과 싱어송라이터 박지윤 사이에는 넓은 간극이 존재하는 듯했다. 박지윤은 20대부터 자신의 정체성을 놓고 혹독한 사춘기를 겪었다.

“JYP엔터테인먼트에 2000년부터 4년간 있었어요. 1997년 가수로 데뷔해 이미 3집까지 낸 상태였어요. 그런데 ‘성인식’이 워낙 히트를 쳐서 그 인상만 남았죠. JYP에서 좋지 않게 나온 후 힘들고 허무했어요. 부모님에게 바른 교육 받으며 학창시절을 보냈는데 ‘성인식’ 이후 성적인 이미지가 박혀 루머까지 생겼어요. 가수가 그리 가벼운 직업인가 고민 많았습니다.”

박지윤은 94년 해태제과 CF로 연예계에 입문했다. 엄마 손 붙잡고 구경간 촬영 현장에서 덜컥 캐스팅됐다. 어릴 적부터 뚜렷했던 이목구비는 그를 자연스럽게 연예계로 이끌었다. 하지만 모두가 인기만을 바라보며 사는 연예계에 그는 적응하기 힘들었다고 했다.

박지윤은 “나를 드러내고 뽐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방송인이 돼야 한다고 생각했고, 난 그런 성격이 아니라 괴로워만 했다”고 말했다. JYP에서 독립하는 ‘성인식’을 치른 후 그는 수년간 쉬며 정체성을 찾기 시작했다고 한다.

“나와 인기를 동일시하지 말자고 생각했어요. 인기는 물거품 같은 건데 그게 가라앉으면 제가 무너지게 되잖아요. 인기가 아닌, 해야할 일을 찾기 시작했어요. 사진도 찍고, 음악도 만들기 시작했어요.”

한참을 쉬다 2009년 낸 7집 ‘꽃, 다시 첫 번째’에는 최초로 앨범 표지에 본인 사진을 넣지 않았다. 9집을 향한 여정의 신호탄으로 두 곡 먼저 담아 발표한 싱글 앨범 ‘오’도 마찬가지다. 본인이 직접 찍은 물가 이미지를 앨범 표지로 썼다.

그는 “‘화려하게 생긴 한때 잘나갔던 여자가수’라는 이미지 때문에 제가 하고 있는 생각과 음악을 얼마나 진지하게 봐줄지 모르겠지만, 힘들더라도 꾹꾹 그 길을 가는 게 내 몫인 것 같다”고 말했다.

가수 박지윤뿐 아니라 생활인 박지윤도 독립적으로 산 지 오래다. ‘엄마가 사라지면 바보’가 되던 삶을 하나씩 바꿔가는 중이다. 동사무소·은행도 직접 다닌다. 창구 직원이 그를 알아보고 황당해하기도 한다지만 그는 “연예인 같지 않은 삶에 대한 두려움보다 내 자아가 강하다는 걸 알게 됐다”고 전했다.

혼자 선 길에 그가 붙든 음악은 아날로그적이다. 전자음을 걷어내고, 어쿠스틱한 음으로 되돌렸다. 노래 ‘기적’은 피아니스트 조윤성, 베이시스트 성민제의 협주와 박지윤의 목소리가 어우러진 삼중주다. 클래식처럼 시간이 훌쩍 지난 뒤에 들어도 좋은 음악을 하고 싶다는 바람이다. 30대 박지윤의 고민은 성공보다, 행복에 방점을 두고 있다.

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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