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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이재정 학예관 “조선활자 82만자 정리, 이제 세종·정조 앞에 고개 들 수 있어”

중앙일보 2016.06.22 01:05 종합 22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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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국립중앙박물관서 개막한 ‘활자의 나라, 조선’ 특별전을 보고 있는 관객들. 조선 500년 기록문화의 밑바탕이 됐던 금속활자를 한곳에 모았다. [뉴시스]


21일 오전 서울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 1층. 8×1.5m 크기 진열장에 금속활자 5만여 자가 가지런하게 놓여 있다. 이날 개막한 특별전 ‘활자의 나라, 조선’(9월 11일까지) 현장이다. 이재정(53) 학예관이 혀를 내둘렸다. “정말 죽을 맛이었습니다. 활자 하나하나를 부수·형태·시기별로 정리했습니다. 생고생이 따로 없었죠. 이제야 ‘활자 지옥’에서 잠시 벗어난 것 같아요.”

주요 활자 5만여 자 추려 특별전
“절제미 두드러진 조선시대 예술
활자에 모든 에너지 쏟아낸 듯”


‘활자의 나라’ 조선의 전모가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 지하 수장고에 있는 조선시대 활자는 총 82만여 자. 그 중 금속활자는 50만여 자에 이른다. 대부분 17~20세기 조선 왕실과 관청에서 사용했던 것이다. 양과 질 모두 세계 최대·최고 수준이다. 고려시대에 개화한 금속활자를 활짝 꽃피운 조선시대였지만 그 전체 모습이 공개되기는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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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정 학예관


조선시대 활자의 알파와 오메가를 되살린 주인공은 이재정 학예관이다. 지난 2000년 박물관에 들어온 이후 지금까지 활자를 붙들고 살았다. 2006년에는 그전까지 사라진 것으로 알려졌던 15세기 한글 금속활자 30여 개를 처음 찾아내는 성과도 올렸다. 이후 계속된 조사와 연구, 그는 금속활자 종주국 한국의 명성을 ‘말’이 아닌 ‘실체’로 드러내는 작업에 몰두해왔다.

“원래 전공은 중국사입니다. 박물관에서 일하게 되면서 우리 활자의 조형미에 푹 빠졌습니다. 운명처럼 됐죠. 한글 금속활자 발견 이후 숙제로 남았던 한자 활자를 총정리하게 돼 기쁩니다. ‘활자지옥’에서 ‘활자연옥’으로 올라왔다고나 할까요. 전생이 식자공이었는지도 모르겠네요.”(웃음)

조선시대 활자는 국가의 근간이었다. 책과 인쇄를 통해 유교 통치이념을 퍼뜨렸다. 1403년(태종 3) 조선 최초의 금속활자인 계미자(癸未字)를 시작으로 대략 금속활자 30여 회, 목활자 30여 회 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 세종 때의 갑인자(甲寅字), 정조 때의 ‘정리자(整理字)’ 등을 발전시켜왔다. 활자가 나라의 권력이요, 보배로 불렸던 이유다.

“이제 세종·정조 임금 앞에 고개를 들 수 있겠어요. 조선의 활자를 거의 모두 알게 된 만큼 실록·의궤·법전 등 조선의 뛰어난 기록문화도 재연할 수 있게 됐고요. 활자 주조·활판기법 등에 대한 후속 연구가 필요하겠지만요.”

그는 조선의 독창적 활자분류법도 새로 밝혀냈다. 중국이나 한자사전에서 볼 수 없는 방식이다. 일례로 조선시대 식자공들은 한자 부수(현재 214개)를 100여 개로 간추리고, 의미보다 형태를 중심으로 활자를 구별했다. 신체·동물과 연결된 글자를 따로 묶기도 했다. 총 1만여 자에 이르는 한자를 찾아내는 효율성을 높인 것이다. “조선시대 예술은 고려에 비해 화려하지 않았습니다. 절제미가 두드러졌죠. 제 생각이긴 하지만 국가의 모든 에너지를 활자에 쏟은 것 같습니다.”

박정호 문화전문기자 jhlogo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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