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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 인사이트] 힐러리와 트럼프…중국은 누구에게 표를 던질까

중앙일보 2016.06.22 00:49 종합 26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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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상철 논설위원

미국 대선은 세계적 관심사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국제 정치에 엄청난 파장을 낳는다. 우리도 촉각을 곤두세운다.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는 주한미군 철수를 운운할 정도다. 중국도 비상한 관심을 쏟는다. 겉으론 미 대선이 미국의 국내 정치일 뿐이라 말하지만 어떤 후보가 당선돼야 중국에 유리한지 따지지 않을 수 없다. 미 대선 후보들이 가장 많이 언급하는 나라가 중국 아닌가. 중국은 누구의 당선을 바라나. 또 그 이유는 무엇인가.

‘어떻게 하면 미 정치인들이 중국을 존중하게 할 수 있나.’ 지난해 7월 차오신성(喬新生) 중국 중난(中南)재경정법대학 교수가 홍콩 언론에 기고한 글이다. 며칠 전 있었던 힐러리 클린턴 미 민주당 대선 후보의 ‘중국 때리기’에 발끈해 쓴 것이다.

당파 불문 미 대선 후보 공통점은
갖가지 비난 동원해 중국 때리기
‘미 일자리와 기밀 훔친다’ 주장서
‘티베트 중국 영토 불인정’도 나와


힐러리는 “중국이 미국의 기밀을 도둑질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는 힐러리가 유세 중 처음으로 중국을 비판한 것이었다. 이에 미 대선 후보들의 본격적인 레이스 시작과 함께 중국 때리기 또한 그 막을 올렸다는 해석이 나왔다.

미 대선 레이스는 중국 때리기와 함께 간다. 2012년 대선 때 버락 오바마 민주당 후보와 밋 롬니 공화당 후보는 경제와 외교, 내정 등 모든 방면에서의 주장이 달랐다. 그러나 한목소리를 낸 분야가 있다. 중국 공격에서다.

롬니는 중국이 사기 행각을 벌이고 있다고 비난했고 오바마는 중국을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이번 미 대선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대선 무대가 마치 중국 때리기의 경연장 같다. 누가 더 중국에 공격적인가를 입증하려는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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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대선 후보들이 거론하는 중국의 문제는 무언가. 힐러리는 중국이 미국 상업 및 정부 기밀에 대해 무차별적인 해킹을 하고 있다고 비난한다. 또 남중국해에서는 군사시설을 건립해 미국의 우방인 필리핀을 위협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공화당 후보가 된 트럼프의 중국 성토는 중국이 미국 노동자의 일자리를 빼앗아 간다는 데 집중돼 있다. 중국이 환율을 조작하고 있다는 말도 빼놓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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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선에서 탈락한 후보들의 중국 비판은 수위가 더 높았다. 힐러리를 끝까지 괴롭힌 버니 샌더스 민주당 후보는 티베트를 중국 영토의 일부분으로 인정할 수 없다며 라싸(拉薩)에 별도의 외교기구를 둬야 한다는 입장이다. 또 2001년 이래 미국 공장 6만 개가 문을 닫으며 수백만 명이 일자리를 잃었는데 중국과의 무역 확대가 한 원인이 됐다고 말했다.

공화당 후보로 나섰던 테드 크루즈는 워싱턴의 중국대사관 앞 거리 이름을 중국 반체제 인사의 이름을 따 류샤오보(劉曉波)광장으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그러면 중국대사관 직원들이 주소를 쓸 때마다 류샤오보에게 ‘존경’을 표하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다.

미 대선 후보들은 왜 중국 때리기에 열을 올리나. 우스갯소리로 ‘중국에 투표권이 없어 마음 놓고 때릴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전혀 틀린 말 같지는 않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이유가 있다. “미 정치인이 중국을 공격하는 건 자신이 외교 업무에 아주 밝은 정치인이며 미국의 국가 이익을 지키는 데 추호의 물러섬도 없다는 것을 유권자들에게 과시하기 위한 아주 치밀하게 계산된 행위”라는 게 차오의 해석이다. 중국을 때리면 때릴수록 득표엔 유리하다는 이야기다.

이에 대한 이제까지의 중국 반응은 무반응에 가깝다. 보고도 못 본 척, 들어도 못 들은 척해 왔다. 지난 2월 말 중국 외교부 정례 기자회견에서 “만일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면 그간 그가 해 왔던 발언에 대해 중국은 우려하는가”라는 질문이 나왔다.

그러자 화춘잉(華春瑩) 대변인은 “미국 대선을 흥미롭게 보고 있다. 그러나 이는 미국의 내정으로 그런 질문엔 답을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미국 정치인들이 무슨 말을 하든 중국은 왈가왈부하지 않겠다는 게 중국 당국의 일관된 입장이란 것이다.

여기엔 중국 나름대로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헨리 키신저가 한 말이 있다. “미 대선 과정에서의 중국 때리기는 새로운 카드가 아니다. 그 누구든 일단 대통령이 되고 나면 현실적으로 미·중 양국이 협력해야 한다는 결론을 얻게 된다”는 경험론적 인식이 작용한다.

양시위(楊希雨) 중국 국제문제연구원 부원장 또한 “일단 집안일을 맡게 되면 땔감과 쌀, 소금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듯이 미국의 새 지도자는 중국과 교류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바로 이런 인식이 리커창(李克强) 중국 총리가 지난 3월 미 대선 관련 질문을 받았을 때 “누가 대통령이 되든 중·미 관계는 발전의 대세를 걸을 것”이라는 자신감을 피력하게 한 배경이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건 없다. 굴기에 따른 중국의 자신감 증대, 인터넷 발달로 미 대선 뉴스를 실시간으로 접하게 되면서 미 대선 후보의 중국 때리기에 대한 중국인의 반응이 과거와 달리 적극적으로 변하고 있다. 차오신성은 “중국이 욕을 먹어도 가만있다 보니 미 유권자들이 정말로 중국을 나쁜 나라로 인식하게 된다”며 이젠 강력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두 가지 방법을 제시한다. 하나는 미 대선 후보 캠프에 직접적인 경고를 보내 그들의 ‘막말’을 막자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미국 내 화인(華人) 세력을 압력단체로 적극 활용하자고 그는 목소리를 높인다.

이와 함께 최근 중국 사회에 미 대선과 관련해 눈에 띄는 변화가 생겼다. 중국 네티즌들이 자신들이 지지하는 미 대선 후보의 팬클럽 결성에 나선 것이다. 이는 미 대선 후보에 대한 중국의 호오(好惡)를 가늠할 수 있는 풍향계와도 같다. 바로 누구의 당선을 바라는지, 왜 그런지에 대한 이유를 엿볼 수 있다. 힐러리와 트럼프를 바라보는 중국의 속내는 과연 어떤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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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힐러리를 보자. 미안하지만 중국에서 힐러리 팬클럽은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그에 대한 중국의 우려는 이제까지의 힐러리 행보에서 잘 드러난다. 퍼스트 레이디이던 1995년 힐러리는 유엔 회의 석상에서 베이징(北京)의 인권문제를 거론했고 15년 후 국무장관 시절엔 중국의 인터넷 자유와 인권문제를 도마에 올렸다.

또 중국을 견제하는 전략인 미국의 ‘아시아 회귀’ 정책을 주도한 인물이기도 하다. 남중국해에서 항행의 자유를 주장해 중국을 자극했고 몽골 방문 시에는 “정치 자유를 실현하지 않는 국가의 경제 자유는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며 중국을 꼬집었다.

물론 힐러리가 국정 경험이 풍부해 미·중 관계에 큰 상처를 내지 않을 것이란 반론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중국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人民日報) 해외판이 힐러리가 국무장관에서 떠날 때 반기는 글을 게재한 데서 짐작할 수 있듯 그에 대한 중국의 불편한 심기를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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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트럼프에 대한 중국 내 인기는 높다. ‘촨푸(川普)’나 ‘촹포(床破)’ 등 다양한 애칭을 갖고 있으며 현재 ‘촨푸 팬클럽’ 등 다양한 트럼프 지지 팬클럽이 활발하게 움직인다. 촨푸 팬클럽 개설자 딩추스(丁秋實)는 “남들이 속에만 담아둔 말을 시원하게 토해 내는 트럼프의 기백이 마음에 든다”고 말한다.

부동산 재벌로 거래에 익숙한 트럼프의 실용주의가 중국과 궁합이 맞는다는 이야기 또한 많다. 사실 중국은 줄곧 민주당보다는 공화당 후보를 좋아해 왔다. 원칙과 이념을 이야기하는 민주당보다 유연하고 실용적인 공화당에 호감이 간다는 것이다. 마오쩌둥(毛澤東) 또한 72년 방중한 리처드 닉슨 미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우파가 집권하는 게 나를 더 기쁘게 합니다”라고 말했을 정도다.

그리고 트럼프가 말끝마다 중국을 거론하지만 사실 경제문제 외엔 중국을 비난하는 게 없다는 점이 그의 중국 내 인기 비결 중 하나다. 진찬룽(金燦榮) 중국인민대학 국제관계학원 부원장은 “중국인은 미 대선을 강 건너 불구경하는 유희의 마음을 가지고 대하는데 그러다 보니 오락성을 많이 갖춘 트럼프를 주목하게 된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이리 치나 저리 치나 트럼프의 인기가 높은 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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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중국 비즈니스 성공하려면…'SOFT CHINA'로 승부를
② 파업으로 몸살 앓는 중국…공산당 권력마저 위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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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냉정하게 생각해 볼 건 트럼프가 당선되면 그의 고립주의 외교와 좌충우돌 정책으로 인해 미국이 쇠퇴의 길을 걷게 될 텐데 이는 중국의 부상에 전혀 나쁘지 않다는 풀이가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해 미국 시사지 ‘외교정책(FP)’은 지난달 ‘트럼프에 대한 투표는 중국에 대한 투표(A Vote for Trump Is a Vote for China)’란 제목의 글을 실었다. 트럼프의 고립주의가 미국의 아·태 지역 이탈을 촉진해 결과적으로 중국의 성장 공간을 제공해 줄 것이란 이유에서다.

이는 우리에게 묵직한 과제 하나를 던진다. 현재 미국 내 트럼프 돌풍이 시사하는 건 그가 대통령이 되든 안 되든 미국 사회가 보호무역주의와 고립주의 영향을 상당 부분 받게 될 것이란 점이다. 트럼프가 당선되면 더 크게, 낙선해도 적지 않은 여파가 닥칠 전망이다. 미국의 변화를 점검하고 이에 맞춰 대책을 준비하는 건 우리의 몫일 것이다.

유상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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