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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생태문화 지킬 ‘해녀보호법’이 필요하다

중앙일보 2016.06.22 00:41 종합 29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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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경
경인여대 환경문화교육과 교수

남성이 서열 짓기(ranking)를 하는 데 비해 여성은 연결 짓기(linking)를 한다. 따라서 평화와 배려, 생태적 균형을 위해서는 여성적인 연결 가치가 필요하다.

제주도 해녀들의 삶은 생태문화 그 자체다. 그런데 저승 돈 벌어 이승 자식 가르친다는 제주 해녀의 생태학이 무너지고 있다. 인류 역사에서 전쟁을 통한 타 부족의 복속과 재산의 쟁취가 수렵채취나 경작보다 효과적이라는 힘의 논리가 득세하기 전까지 대부분 삶의 바탕은 모계중심사회였다.

내륙에서 전쟁의 역사가 계속되어 끝없는 확장과 대립이 연속되던 때에도 섬은 독립된 공간으로 전쟁의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했다. 섬은 확장보다는 지킴, 탈취보다는 분배적 관리를 통한 면대면(面對面) 사회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그런 사회문화의 중심에 여성이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여성문화는 가부장처럼 소유나 가권의 세습이 사회 소통과 유지의 핵심이 되지 않았기에 자연스러운 모계사회를 이룰 수 있었다. 우리나라 제주도의 전통이 모계 중심에 있었던 것은 이를 대변하는 것이다.

이런 전통은 오늘날까지 여성이 삶을 주도하는 문화를 형성했고 그 문화의 중심에 해녀가 있다. 그러므로 오늘날 해녀의 존재는 단순한 직업으로서 해녀가 아니고 귀중한 생태문화요, 섬 문화의 전통적 정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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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녀들은 말한다. 그들이 편리한 구명장비를 모르거나 산소통을 멜 줄 몰라 매번 거친 숨비소리 토해가며 맨몸으로 물질하는 것이 아니다. 장비를 사용하는 순간부터 그들은 삶의 질서를 잃게 된다. 바다가 그들의 삶을 받쳐주지 못하고 황폐해지는 것이다.

맨몸 물질을 할 때는 대량 채취를 못하는 대신 나머지 어족 자원이 원금으로 보전된다. 해녀들은 매번 바다가 주는 이자만 얻어가면서 계속 삶을 이어갈 수 있다. 하지만 해녀가 아니라 다이버가 되면 이런 이어짐은 붕괴되고 바다는 더 이상 이들에게 원금을 간직한 은행이 돼 줄 수 없다. 이들에게 맨몸 물질은 삶의 방식이고 이 방식을 지켜야 하는 것은 그들 사회에서 불문율이다. 해녀뿐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이러한 생태적 생존 방식은 이미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그런데 제주에서 우려가 현실이 되고 있다. 다이버들이 해녀 생태 문화공간을 잠식하고 있다. 해녀의 불문율이 경제 논리로 침해되고 있는 것이다. 해녀 입장에서는 삶이 무너지고 그들 사회의 하늘이 무너질 일이다. 이번 일은 사실 해녀 사회에 해남이 등장하고, 해녀(남)학교를 통한 조직적인 해녀 양성이 마치 취업 문제를 해결하는 좋은 방식인 것처럼 선전될 때부터 예고됐던 일이다.

해녀를 문화가 아니라 단순히 하나의 직업군으로 인식한 데 따른 필연적 결과다. 다이빙 장비를 갖춘 해남은 힘을 바탕으로 최대의 수확을 추구할 뿐 관리와 돌봄을 통한 분배의 미학을 허락하지 않는다. 섬진강 재첩잡이도 해마다 도를 넘어서는 것 같아 안타깝기 그지없다. 재첩잡이가 이 지역 농한기 일손을 활용하는 데서 벗어나 배를 동원해 글겅이로 완전히 강바닥을 긁어 올리고 있다. 채취 가능 지역과 범위가 점점 줄고 있다.

이번 기회에 생태문화를 존속·보전할 수 있는 법률 지원이 필요함을 강조하고자 한다. 지금 우리나라에는 해녀뿐 아니라 곳곳에 생태문화와 그 공간들이 남아 있으나 명맥만 유지하고 있거나 사라지고 있다. 남서 해안 곳곳에 있는 죽방렴, 고창의 서해 바다 연결 통로인 풍천(생태학에서는 기수역이라 한다)에 있는 장어잡이 돌무지 등이 대표적이다.

농사를 시작하면서 병충해 방지를 위해 밭두둑 잡초를 태우기는 하지만, 그 벌레들의 종자가 완전히 멸하지는 말아 달라고 빌었던 진도 풍년기원 천제(天祭)도 생태문화의 진수를 보여주는 좋은 보전 대상인 동시에 환경교육 대상이다.

맹자는 성긴 그물로 때에 맞추어 고기를 잡으면 그 고기를 다 잡을 수 없어 항상 남음이 있고, 도끼를 들고 산에 벌목하는 것도 때에 맞추면 그 나무를 다 쓰지 못한다고 했다. 환경을 이용하되 남용하지 않는 지혜를 강조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어떤가. 부안 어시장에선 해가 바뀔수록 지역 명물인 백합조개 크기가 작아지고 있다. 이제는 아예 북한이나 중국 것 아니면 구경도 힘들다. 대도시 어시장엔 무슨 치어가 그리도 많은지 놀라울 지경이다. 손가락 크기의 조기부터 새끼 가오리까지 버젓이 상품으로 거래된다. 미국·일본 같은 선진국은 낚시하려면 허가를 받아야 하고 일정 크기에 못 미치는 고기를 잡으면 막대한 벌금을 내야 한다. 생태문화에 대한 우리의 인식과 법규는 너무도 빈약하고 허술하다.

지금 ‘생태문화보전법’(가칭)을 만들어야 할 때다. 어족 자원 보호를 위해 기존에 만들었던 법들도 시행을 분명히 하든지 아니면 더 점검해 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해녀들의 삶이 무너지는 소리가 지금 끊임없이 메아리쳐 온다. 해녀는 직업이 아니라 문화다. 정부는, 또 20대 국회는 언제까지 좌시할 것인가?

김 태 경
경인여대 환경문화교육과 교수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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