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노트북을 열며] 어느 연극 제작자의 죽음

중앙일보 2016.06.22 00:38 종합 30면 지면보기
기사 이미지

최민우
문화스포츠부문 차장

뜻밖이었다. 지난달 말 극단 ‘적도’의 홍기유(46) 대표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을 듣고서 말이다. 딴 사람이라면 ‘이 바닥 워낙 힘드니깐…’이라며 솔직히 한 귀로 흘렸을지 모른다.

하지만 고인은 꽤 잘나가는 프로듀서였다. 한때 ‘연극열전’을 기획해 대학로에 새바람을 일으켰고, ‘웃음의 대학’ 등 히트작도 몇 개 갖고 있었다. 연극인이라면 다들 오태석(연출가)이나 윤석화(배우)만을 떠올릴 때 엄연히 제작자도 있으며 “연극만으로도 먹고살 수 있다”는 걸 입증해 오지 않았던가. 그런 그가 자살하다니, ‘도대체 왜?’라는 의문이 떠나질 않았다.

“죽기 나흘 전에도 같이 술 마셨어요. 평소처럼 껄껄댔는데 내 참….” 눈치 못 챈 지인들은 죄책감마저 든 듯싶었다. 손상원 정동극장장은 “힘들어도 티 낼 사람이 아니다. 자존심이 세다”고 했다. 겉으론 태연한 척했을지 몰라도 물려받은 땅을 대부분 저당잡히고, 빚마저 계속 쌓이면서 속으론 새까맣게 탄 모양이다. 남에게 아쉬운 소리 하지 않고 어떡하든 자기 돈으로 꾸려가던 그도 막판엔 “투자 좀 해 달라”고 몇 명에게 애원했다는 후문이다. 그마저 거절당하면서 무력감에 극단적 선택을 하지 않았겠느냐는 추측이다.

연극이 가난하다는 걸 누가 모르랴. 하지만 이 정도로 심각할까. 기획자 S는 “‘옥탑방 고양이’ 같은 롱런 레퍼토리를 내놓지 못하면 무조건 쪽박”이라고 일갈했다. 제작자 H는 “어쩌다 하나 터져봤자 1, 2억 번다. 나머지는 다 적자니 결국 작품을 할수록 빚이 늘어난다”고 했다. “아니 쇼 비즈니스 하면서 빚 없는 사람이 어디 있냐고. 누군 100억원 채무 있어도 잘만 버티던데. 아니면 나 몰라라 하면서 파산을 하든지. 홍기유는 너무 깔끔해.” 애도인지 한탄인지 모를 소리를 하는 이도 있었다.

대학로 제작자가 헉헉대는 것과 달리 연극계의 전반적 풍경은 의외로 평온하다. 아니 상차림만 보면 더 풍성하다. 국·공립단체가 연극을 자체 제작하기 때문이다. 명동예술극장(국립극단)을 필두로 남산예술센터가 뒤를 잇더니 최근엔 예술의전당과 세종문화회관(서울시극단)까지 적극적이다.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이들 공공기관이 일일이 수익성까지 따지진 않을 터. 상대적으로 넉넉한 예산 덕에 좋은 연출가와 배우도 모이게 마련이다. 넓은 의미의 연극 지원이다. 그런데 그 지원이 오히려 민간 제작자를 옥죄고 있으니 ‘지원의 역설’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공공에 비해 규모·자본력이 떨어진 민간 극단은 자연히 박리다매 전략을 취하게 된다. 대학로에 1만원 이하 저가 연극이 범람하는 이유다. 공공은 고급으로 가는데, 민간은 덤핑으로 내몰리는 형국이다.

하여 홍기유의 죽음은 연극의 양극화가 잉태한 불행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또한 대중성과 작품성을 두루 갖춘, 웰메이드 상업 연극의 종언을 목도하는 것 같아 씁쓸할 뿐이다.

최 민 우
문화스포츠부문 차장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