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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희의 시시각각] 피해자를 비난하는 입들

중앙일보 2016.06.22 00:37 종합 30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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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희
논설위원

‘악의 평범성’. 평범한 사람도 일상성에 파묻혀 생각을 멈추면 악행을 저지른다는 말이다. 해나 아렌트가 평범한 시민이 나치스에 부역해 가책 없이 유대인 학살에 가담한 현상을 설명한 말로 널리 알려졌다. 인간 세상은 우리의 꿈처럼 선의로 가득 찬 게 아니라는 건 누구나 안다. 생각 없이 가다가는 도처에 아가리를 벌린 크고 작은 악의 구렁텅이로 풍덩 빠지게 되는 위험한 곳이라는 것도. 세상이 그러니 너무 흔한 일상의 악에 일일이 대응하는 건 신경질적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지나치면 누군가는 말려야 한다.

지금이 그때인 것 같다. 악의 평범성이 지나치게 확산되는 때. 지난 주말 오랜만에 만난 후배들은 박유천의 성폭행 고소 사건 뒷얘기에 열을 올렸다. 경찰에서 수사 중인 사건이므로 진위 여부는 조금 기다려보면 될 텐데 세간에서 자가 증식하는 여론은 사악하다고 했다. 후배들은 이 사건을 통해 ‘피해자 비난(blame of victim)’ 심리의 바닥을 보게 됐다며 우리 사회 심성의 황폐함이 놀랍고 무섭다고 했다.

이 사건을 둘러싼 기사·댓글·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검색해 봤다. 여론은 피해자에 대한 비난과 멸시로 달렸다. 이런 사건엔 반드시 따르는 피해자 옹호와 보호론은 파묻혔다. 대중은 고소한 여성들을 ‘고소녀’ ‘업소녀’라 불렀다.

일부 언론들도 ‘고소인’이라는 중립적 명칭 대신 ‘고소녀’로 쓴다. 찌라시 내용들은 보는 것조차 부끄럽고 일부 종편까지 가세해 그녀들의 목적이 돈이라는 의심을 슬쩍슬쩍 흘렸다. “유흥업소 여성을 성폭행한 것도 죄냐”고 당당하게 외치는 자들도 있다. 그녀들에 대한 비난은 거리낌 없고 거칠고, 재미 삼아 킬킬거리는 언어들엔 인간이 인간에게 해선 안 되는 인권유린이 넘쳤다.

피해자 비난은 다른 범죄에서도 나타난다. 피해자의 부주의가 범죄 유발에 일조했다는 의식은 늘 존재한다. 천재지변도 “내가 잘못해 벌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게 사람인지라 피해자 잘못을 먼저 되돌아보는 건 어쩌면 인간적이고 일상적인 일일 수 있다. 그래도 일반 범죄에선 범죄자의 나쁨에 더 무게를 둔다. 그러나 유독 성폭력 사건에선 비난의 양상이 거꾸로 가는 경우가 많다. 범죄학에서도 피해자 비난과 옹호가 가장 날카롭게 대립하는 분야로 성범죄를 꼽는다.

뿌리 깊은 성차별 의식과 강간 통념(rape myth) 때문이다. 이번 사건을 둘러싼 비난의 말들도 보면 결국 강간 통념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강간은 피해 여성들이 성 충동을 유발해 일어난다’는 통념. 이는 ‘나쁜 여자가 강간을 당하고, 강간범은 잠시 본능을 이기지 못한 실수를 범했다’는 강간 정당화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 또 피해 여성의 신상을 털고, 사진을 유포하는 게 마치 나쁜 여자를 벌하는 정의로운 행동인 것처럼 착각하게 만들기도 한다.

성폭행 피해자들은 이 통념 때문에 외부의 비난이 아니라도 스스로 자책감에 빠지는 등 2차 피해로 더 치명상을 입는다. 여성계가 성폭행을 가장 사악한 범죄로 보는 건 그래서다. 법적으로도 상대방의 동의 없이 이루어지는 모든 성행위는 성폭력 범죄다. 동의 없는 부부 강간도 처벌받을 수 있다. 유흥업소 여성에 대한 성폭행도 당연히 범죄다. 피해자의 사회적 신분 때문에 범죄를 희화화하고 인권유린의 언어로 공격해선 안 된다.

박유천이 나빴는지 그녀들이 나빴는지 항간의 추측대로 조폭이 개입했는지는 경찰이 밝힐 거다. 지금 걱정스러운 건 그게 아니라 내 평범한 이웃들이 상상력과 카더라 통신에 부화뇌동해 킬킬거리며 일상의 악행을 저지르는 현상이다. 다시 해나 아렌트의 말을 빌리면 평범한 사람이 일상의 악에 빠지지 않으려면 타인에게 공감하고 옳고 그름과 미추에 대해 생각하고 말할 능력을 잃지 않아야 한다. 인간이라면 타인의 고통을 조롱하는 게 아니라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 나쁜 사람을 욕하는 걸로 좋은 사람이 되진 않는다. 하나 확실한 건 나쁜 말을 내뱉는 사람은 나쁜 사람이라는 거다.

양선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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