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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또 다른 어떤 ‘전관’

중앙일보 2016.06.22 00:35 종합 31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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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언
사회부문 차장

‘저는 부장검사를 끝으로 20여 년간의 공직생활을 마치고 변호사로 새롭게 출발합니다. 제 동기들이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장을 비롯해 대부분 부장으로 있는 지금이 적기라고 판단했습니다.’ 메시지 서두에 이렇게 적혀 있다. 사법연수원 동기들이 한국 최대 수사기관인 서울중앙지검의 주요 부장을 맡고 있는 지금이 ‘최적의 타이밍’이어서 검사직을 내놓고 변호사 사무실을 열기로 마음먹었다는 얘기다.

그 다음에는 경력이 나열돼 있다. ‘사법연수원 2X기, 서울중앙(금조 1부) 검사 등, 춘천(특수) 부부장 검사, 순천(특수)·인천·대구서부·서울동부 부장검사, 서울고검 검사(서울남부 소속).’ 특수부와 금조부(금융·조세 사건 전담 부서)에서 일했다는 것을 괄호까지 쓰며 친절하게 알려준다. 특수부는 변호사에게 ‘돈 되는’ 사건이 많은 곳이다. 현재 진행 중인 롯데그룹 수사와 ‘정운호 게이트’, 지난해의 포스코 수사가 모두 서울중앙지검 특수부 사건이다.

그 뒤에는 주소와 연락처가 있다. 서울 서초동 ‘법조타운’ 중심에 있는 한 건물에 번듯하게 사무실을 냈음을 보여준다. ‘동기’ 검사들이 부장으로 있다는 곳 바로 옆이다. 맨 마지막에는 개업식 날짜와 시간이 쓰여 있다.

47세 검찰 간부 출신 Z변호사가 지난 4월 초 주변 사람들에게 보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메시지 내용이다. 이는 한두 다리씩 건너 기자들에게도 전해졌다. ‘솔직한’ 심정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어 법조계에서 화제가 됐다. 메시지가 널리 전달·공유된 시점은 수상한 주식 거래로 떼돈을 번 진경준 검사장의 행동에 대한 비난 여론이 거셀 때였다.

Z변호사의 개업식(그는 메시지에 ‘개업소연’이라고 겸손하게 표현했다) 날은 15일이었는데, 최유정 변호사가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를 폭행 혐의로 경찰에 고소해 ‘전관’ 비리 사건의 방아쇠를 당긴 바로 그날이다.

Z변호사는 자신이 서울중앙지검 사건에 ‘약발’이 잘 먹히는 따끈따끈한 전관(前官)임을 주장하고 있지만 정작 그의 16년 검사 생활 중에서 이 검찰청에서 근무한 경력은 3년뿐이다. 결국 그가 동기 부장검사들이 ‘원만한 사건 해결’에 도움을 줄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거나, 의뢰인들이 그렇게 믿어주기 바란다고 짐작할 수 있다.

‘20년간 검사로 일하며 국가로부터 과분한 대접을 받았습니다. 이제 초보 변호사가 되어 진실과 정의의 편에서 열심히 공부하며 시민들을 돕고 싶습니다.’ 언젠가는 이런 아름다운 퇴직 메시지를 보고 싶다.

이 상 언
사회부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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