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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개헌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 4개

중앙일보 2016.06.22 00:34 종합 31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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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진
논설위원

개헌은 ‘이혼+재혼’과 같다. 가보지 않은 길을 가는 것이다. 그런 선택을 할 때 중요한 건 새 길이 훨씬 나을 거라는 확신이다. 그런 확신 없이 개헌하는 건 국가의 미래가 매우 위험하다. 국가는 실험실의 생쥐가 아니다.

1987년 직선제 개헌을 할 때 대다수 한국인은 그것이 훨씬 좋은 길이라고 확신했다. ‘미래 확신 지수’가 80%를 넘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물론 5년 단임제엔 문제가 많다. 하지만 그렇다고 개헌만 하면 모든 게 해결되나. 지금 여러 대안이 거론되고 있다. 그런데 그런 개헌안들은 미래 확신 지수가 얼마나 되나. 80이 넘는 게 있나. 아니면 50인가 60인가. 그 정도로 개헌이 가능할까.

4년 중임제는 좋은 점이 많다. 우선 대선과 총선을 4년마다 같이 치르면 낭비와 혼란을 줄이게 된다. 그리고 임기가 최장 8년으로 늘면 국정이 더 안정될 수 있다. 대통령의 레임덕(lame duck)이 뒤로 미뤄지는 것이다. 4년 중임은 정권을 자극하기도 한다. 재선되려면 부지런히 성적을 올려야 한다.

그러나 꽃밭만큼 지뢰밭도 많다. 대통령은 초기부터 4년 후 재선을 노릴 것이다. 원래 개혁이나 국책사업은 대부분 적잖은 유권자의 저항을 받는다. 지금 공항 건설을 놓고 벌어지는 혼란을 보라. 재선을 걱정하는 대통령이 이런 풍토에서 논란 많은 선택을 할 수 있을까. 독일의 슈뢰더는 정권 내줄 걸 각오하고 개혁을 밀어붙였다. 그런 지도자가 한국에 있을까.

내각제는 더욱 취약하다. 이는 사회가 안정돼야 성공한다. 안보에 여야가 없고, 연정(聯政)이 자연스러우며, 웬만한 일엔 정권이 흔들리지 않는 그런 단단한 사회여야 한다. 내각제 영국에선 보수당과 노동당이 번갈아 집권한다. 그렇다고 안보나 사회개혁의 근간이 바뀌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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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다르다. 사태만 터지면 여러 세력의 야심이 엉켜 사회가 요동친다. 광우병이 그랬고 세월호가 그랬다. 국민이 뽑은 정권인데도 반대 세력은 뿌리부터 정권을 흔들었다. 만약 내각제라면 어떻게 됐을까. 당장 “국회 해산하고 내각 다시 뽑자”고 하지 않았을까.

내각제에서는 과반수 정당이 없으면 2~3개 정당이 연정을 한다. 이 연합의 접착력이 강해야 나라가 안정된다. 그런데 한국에선 접착보다 분열이 더 쉽다. 요란했던 DJP(김대중+김종필)연합도 3년을 가지 못했다.

지금 내각제라면 박근혜+안철수 또는 문재인+안철수 정권이 생길 것이다. 이런 연대가 과연 얼마나 갈까. 내각제의 위험은 정권이 너무 자주 바뀔 수 있다는 거다. 일본은 아베 전까지 91년 이후 22년간 총리가 무려 14명이나 됐다. 그런 권력의 혼란 속에서 ‘잃어버린 20년’이 흘러갔다.

이원집정제는 더 위험하다. 국민이 뽑는 대통령이 외교·안보를 맡고 국회가 선출하는 총리가 내정(內政)을 담당한다. 두 권력이 균형과 화합을 이뤄야 이 제도는 안전하다. 그런데 한국에서 이게 가능할까. 대통령은 박근혜인데 총리는 비박계라고 하자. 정권이 제대로 굴러갈까.

여야가 섞이면 더 복잡해진다. 대통령 박근혜, 총리는 문재인이라고 하자. 북한·안보·경제에 대한 생각이 두 사람은 하늘과 땅만큼이나 다르다. 그런 두 세력이 타협할 수 있을까. 이런 정권에서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를 다룬다고 치자. 외교·국방을 책임진 대통령이 배치를 결정한다. 총리 문재인과 더불어민주당이 가만 있을까. 천안함이 침몰했다고 하자. 대통령은 어뢰를 찾아내 북한 소행이라고 한다. 그런데 총리는 인정할 수 없다고 한다. 나라는 어디로 가나. 백두산인가 아니면 동해 바다인가.

4년중임·내각제·이원집정제 모두 불안과 위험을 안고 있다. 미래 확신 지수가 50을 넘기 힘들다. 그런데도 개헌을 서둘러야 하나. 사회가 성숙할 때까지, 그래서 확신 지수가 충분히 높아질 때까지 5년 단임제를 잘 운용하면 안 되는 걸까. 현명한 대통령을 뽑고 사회가 도와주면 안 되나. 제도란 사람에 따라 달라지는 것 아닌가.

마지막 질문이 남아 있다. 여러 면에서 김정은 정권은 벼랑 끝으로 치닫고 있다. 조만간 북한에서 급변이 터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급변이 생기면 남한은 새로운 북한 정권을 지원해 통일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

통일 교섭 단계에 들어서면 남북은 통일헌법을 논의해야 할 것이다. 서독도 90년 동독을 흡수 통일하면서 헌법을 고쳤다. 그렇다면 남한도 기다려야 하지 않을까. 지금 개헌할 게 아니라 얼마 후 아예 통일헌법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물론 헌법은 절대적인 게 아니다. 필요하면 바꿀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전에 4개의 의문이 풀렸으면 좋겠다. 확신 없이 새 길을 떠날 수는 없다.

김 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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