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단독] 경찰이 전자발찌 관리 강조한 날…30대, 살인 뒤 도심 활보

중앙일보 2016.06.20 01:33 종합 12면 지면보기
기사 이미지

17일 서울의 한 CCTV에 포착된 용의자 김씨.

19일 검거된 ‘개포동 살인사건’ 용의자 김모(36)씨는 두 건의 특수강도강간죄를 저질러 10년간 복역하고 지난해 출소했다. 출소 직전 2025년까지 전자발찌를 부착하라는 명령을 법원에서 받았다.

발찌 찬 채 세차례 피해자 집 방문
“돈 요구했지만 안 줘서 살해” 진술
경찰, 범행 확인하고도 12시간 쉬쉬
관리부실 비판 우려해 은폐 의혹

김씨는 서울 강남 개포동 아파트에 침입해 60대 여성을 살해했다. 하지만 전자발찌를 훼손한 뒤 대전으로 이동해 또 다른 범행을 저지르다 체포될 때까지도 경찰은 살인 혐의 자체를 인지하지 못했다. 이에 따라 전자발찌 착용 범죄자에 대한 관리 체계에 허점이 드러났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서울 서초경찰서 등에 따르면 용의자 김씨는 17일 오후 9시37분쯤 서울 서초동 외교센터 빌딩 인근에서 착용 중이던 전자발찌를 훼손했다. 김씨는 이에 앞서 서울 개포동 H아파트의 고모(60·여)씨 집을 14일부터 16일까지 세 차례 방문했다. 경찰은 김씨가 16일 오후 1시45분에 고씨의 아파트로 들어가 오후 6시12분쯤 나오는 모습이 담긴 폐쇄회로TV(CCTV) 영상을 확보했다. 이를 근거로 김씨가 16일 오후 고씨를 살해한 뒤 다음 날 전자발찌를 끊고 대전으로 달아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김씨는 대전에서도 또 다른 범행을 벌였다. 렌터카를 빌려 한 여성의 가방을 날치기하려다 18일 오후 10시쯤 경찰에 체포됐다. 대전 지역 경찰은 김씨가 전자발찌를 훼손하고 달아난 사실을 확인하고 서울 서초서에 이를 통보했다.

서초서 형사들은 19일 오후 1시쯤 H아파트를 찾았다. 고씨가 고등어 택배를 며칠 동안 찾아가지 않는 점을 이상하게 여긴 아파트 관리실 직원이 경찰에 신고한 뒤에야 확인차 나선 것이다. 이때까지도 경찰은 김씨가 살인한 사실은 모르고 있었다. 관리실 직원은 “출동한 경찰관에게 며칠 전 법무부 직원이 찾아와 김씨가 전자발찌를 착용한 상태에서 우리 아파트를 방문했다는 걸 알려줬다”고 말했다.
 
기사 이미지

경찰에 따르면 살해된 고씨의 몸에 외상은 없었다. 주변에서 흉기도 발견되지 않았다. 경찰 관계자는 “현재로선 질식사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고 말했다. 경찰에 따르면 김씨는 "고씨와 성관계를 가진 뒤 돈을 요구했으나 주지 않아 일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고씨와 김씨는 평소 아는 사이로 조사됐다. 2008년 성범죄 전과자에 대한 전자발찌 착용 제도가 시행된 이후 착용 대상자가 살인을 저지른 건 세 번째다.

전자발찌를 훼손할 경우 법무부 위치추적중앙관제센터에 경고음이 울리고 신원과 위치가 경찰에 통보된다. 경찰은 이를 토대로 추적 및 검거에 나선다. 이번에 경찰은 김씨가 고씨를 살해한 다음 날인 17일 전자발찌를 훼손하고 도주했지만 검거하지 못했다. 김씨가 18일 대전에서 날치기 사건으로 체포되지 않았다면 고씨 살인 사건은 오리무중에 빠질 수도 있었다.

경찰이 살인 사건을 확인하고 범인을 검거했는데도 이례적으로 만 12시간가량 해당 사실을 공개하지 않은 점에 대해서도 관리 부실 비판을 우려해 쉬쉬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경찰 관계자는 “전자발찌를 끊고 도주한 피의자를 24시간 후 대전에서 검거했고, 살인 사실은 그 뒤에 알게 됐다” 고 말했다.

한편 법무부는 김씨가 전자발찌를 끊고 달아나기 이틀 전인 15일 ‘전국 보호관찰소 특정범죄자 관리 과장 회의’에서 “전자발찌 부착 대상자들을 실시간으로 감독하고 경찰과 공조해 곧장 현장에 출동하는 등 관리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이상원 서울경찰청장도 김씨가 도주한 17일 일선 수사·형사과장을 소집해 “여성대상 범죄를 저질러 전자발찌를 착용하는 우범자에 대해선 관리 등급을 최상위 등급으로 격상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윤정민·송승환 기자 yunjm@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