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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훈의 미래의 밥상] 3D프린터로 뽑은 파스타로 로봇 셰프가 차리는 식탁, 식재료 미묘한 맛 살려낼까

중앙일보 2016.06.20 01:04 종합 21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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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이 진보하고 있다. 프린터에서 컬러 인쇄물을 출력해 내는 것도 신기했는데, 이제는 사물을 출력하는 경지에 다다랐다. 3D프린터 얘기다. 실제 발사되는 권총을 만들어내 우려되던 게 얼마 전인데 최근 유럽 에어버스사는 3D프린터로 무인 항공기를 출력해냈다. 원격 조작을 통해 실제 하늘을 날 수 있다고 한다.

3D프린터의 기술 수준이 이 정도로 정밀해졌으니 음식도 출력할 수 있을까. 답은 ‘그렇다’이다. 다만 가야 할 길은 멀다. 현재 수준은 초콜릿이나 설탕 등 원료를 녹이거나 고운 젤 상태로 만들어 재료로 사용하는 방식이다. 이 재료를 캡슐에 집어넣거나 혹은 필라멘트 형태로 한 번 더 가공한 뒤 3D프린터에 내장해 음식을 출력한다.

3D프린터의 가장 큰 장점은 독특한 디자인의 음식을 쉽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타요 버스’ 형태의 초콜릿을 출력할 수도 있고, 사람과 닮은 모양의 사탕도 제작할 수 있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가 직장에 있는 엄마에게 전화해 ‘사탕 하나만 출력해주세요’라고 하면, 엄마는 간단한 스마트폰 조작을 통해 3D 프린터를 원격 가동할 것이다. ‘그래. 이번엔 오렌지맛 송중기 얼굴 사탕을 출력해 줄게’라고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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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럼밀을 원료로 다양한 파스타 면을 출력하는 3D프린터.


네덜란드의 TNO 연구소와 세계 최대 파스타 기업인 바릴라(Barilla)는 지난해 세계 최초로 듀럼밀을 원료로 다양한 파스타 면을 출력하는 3D프린터를 개발했다. 사람 손이나 기존의 기계적 공정으로는 만들 수 없는 형태의 파스타 면을 뽑아낼 수 있다고 한다. 맛과 식감도 일반 파스타와 거의 같다. 그럼에도 기술의 전체 수준은 ‘편리함’과 ‘즐거움’ 정도에 머물러 있다.

현재 음식용 3D프린터 재료는 반드시 균질해야 하고, 반드시 젤 상태이거나 젤 상태로 녹을 수 있는 물성을 가진 원료라야 한다. 그러니 밥이나 김치, 된장국 출력은 불가능하다. 우리 밥상에 올라오는 다양한 식감들, 즉 쫄깃하고 아삭하고 탱글탱글하기도 한 느낌을 3D프린터가 구현해내는 것은 천지창조에 맞먹는 기술을 요구한다. 앞으로 980년 후에나 가능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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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보틱 키친(Robotic Kitchen)’


최근 영국의 한 기업은 ‘로보틱 키친(Robotic Kitchen)’이라는 제품을 개발했다. 두 개의 로봇 손이 장착된 자동 요리 주방 세트다. 유명 셰프들의 레시피와 그 레시피를 조리하는 손 동작을 정교하게 모방해 로봇으로 구현한다. 재료만 사다 놓으면 두 개의 로봇 손이 유명 셰프의 손 움직임을 그대로 흉내 내 음식을 똑같이 정교하게 만들어낸다고 광고한다. 하지만 우리가 사용하는 식재료는 균질하지 않다. 어제의 토마토는 달고 물렀지만, 오늘의 토마토는 더 짜고 단단할 수 있다. 과연 로봇 손이 이런 미묘함까지 통제하며 요리 기술을 구현할 수 있을까.

음식용 3D프린터와 내년에 출시될 이 로봇 주방 세트는 서로 경쟁하며 미래의 밥상을 바꾸어 놓을 것이다. 3D프린터는 마치 밥솥이나 커피머신처럼 중저가형 장비로 우리 부엌을 차지하고자 할 것이고, 로봇 기반의 주방 장비는 주부의 역할을 대체하며 밥상의 패러다임을 바꾸려 들 것이다. 문화적 관점에서 두려운 마음이 없지 않다. 하지만 인간의 기술은 인간을 위한 것. 미래의 주방에서 맞벌이·육아 주부가 요리 부담을 덜기를 바란다.

문정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푸드 비즈랩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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