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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릿한 치즈, 쿰쿰한 된장…자꾸만 손이 가네

중앙일보 2016.06.20 01:03 종합 21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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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다른 나라의 닮은꼴 요리를 통해 세계 각지의 음식문화와 역사를 되돌아봅니다.

미생물이 자신이 가진 효소를 이용해 유기물을 분해시키는 과정을 발효(醱酵)라고 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발효 음식은 인간이 처한 자연 환경과 조건을 바탕으로 발전해왔다. 발효 음식에선 당초 알고 있던 맛에서 벗어난 미지의 맛이 등장한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이를 일컬어 ‘제3의 맛’이라고 명명했다.

[맛있는 월요일] 먼나라 이웃 입맛 ⑨ 발효가 만든 ‘제3의 맛’


하지만 강력한 냄새·색깔·이미지 때문에 거부감을 주기도 한다. 예를 들어 ‘삭힌 홍어’가 그러하다. 누군가에게는 쿰쿰하고 톡 쏘고 아린 별미(別味)지만 어떤 이에게는 코를 찡그리게 하는 암모니아 냄새이자 부패취(putrified flavor)로 다가온다. 발효 음식엔 개인의 취향뿐 아니라 문화적 이해가 작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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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즈의 풍미와 식감은 원재료와 숙성 기간, 곰팡이 종류 등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서양의 대표적인 발효 음식으로 치즈가 있다. 치즈는 역사가 오래된 만큼 그에 얽힌 이야기도 많다. 로마시대 때 점령군이 유럽 전역에 치즈 제조법을 전파했고 병사들은 녹봉으로 치즈 한 덩이를 받기도 했다. 오랜 십자군전쟁에 시달린 남자들은 수도원으로 숨어 들어가 수도사가 돼서는 농사를 짓고 우유를 짜서 치즈를 만들었다. 지금도 몇몇 브랜드 제품이 그 전통과 비법을 이어오고 있다.

에푸아스(Epoisse)는 프랑스 부르고뉴의 코트 도르에 위치한 수도원에서 16세기부터 생산됐다. 알렉상드르 뒤마의 소설 『삼총사』에 등장하는 포르토스가 가장 좋아하는 치즈다. 톡 쏘는 맛과 함께 시골마을 퇴비 냄새 같은 자극적인 향기가 난다.

영국의 웬슬리데일 치즈 역시 수도사들의 치즈다. 프랑스 로크포르에서 건너온 시토 수도회의 수도사들이 정착해 만들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애초엔 꼬릿한 향취의 블루치즈로 시작됐으나 오늘날은 산뜻하고 진한 향기를 담은 크리미한 치즈로 발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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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망베르 치즈

우리에게 상대적으로 익숙한 치즈로는 카망베르(Camembert)가 있다. 카망베르의 인지도를 높인 공신으로는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와 20세기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가 꼽힌다.

나폴레옹은 그의 연인이자 훗날 황후가 된 조세핀의 체취가 카망베르 향과 같다며 전장에서 이런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당신을 애타게 그리워하오. 일주일만 지나면 당신을 볼 수 있소. 그대, 그때까지 목욕을 하지 마시오. 지금 그대로의 몸으로 나를 기다려 주시오. 당신의 냄새가 그립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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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 치즈

달리의 그림 ‘기억의 지속’에 나오는 녹아내리는 시계는 숙성된 카망베르 치즈가 유연하게 흘러내린 모습에서 영감을 얻은 것으로 유명하다. 이처럼 카망베르 치즈의 속살은 부드럽고 촉촉하며 매끄러운 특징이 있다. 같은 연질치즈(Soft Cheese)에 속하는 것으론 ‘치즈의 왕’ ‘디저트의 왕’으로 불리는 브리(Brie) 치즈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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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멘탈 치즈

치즈 맛의 핵심은 숙성을 통한 발효다. 각 치즈의 풍미·식감·향은 원유의 품종과 지방 함량, 숙성과 발효를 통한 제조 방식의 차이, 박테리아와 곰팡이 등 지역마다 자생하는 미생물과 밀접한 연관을 지닌다. 이러한 지역성 때문에 치즈 이름 중에는 스위스의 에멘탈(Emmental) 치즈처럼 원산지명을 붙인 것이 많다.

그들에게 치즈가 있다면 우리에겐 된장이 있다. 우리나라 장류(醬類)의 시원은 기원 전후로 내다보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기원전 2000년께 청동기시대 유적지인 함북 회령, 평양, 팔당 등지에서 콩의 유물이 발견됐다. 콩의 작물화는 콩을 발효시킨 장류의 발전을 가져왔다. 『삼국사기』 『삼국유사』 등을 보면 전통 장류가 우리 식문화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중국에서는 장류와 시류(?類)가 나뉘어 주로 황두와 밀로 메주 원료를 삼았다. 일본은 대두와 쌀·보리·밀 등으로 장국(醬麴·메주)을 구성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콩만 이용해 메주를 만든다. 일본은 그 안에 배양된 코지균(Koji·곰팡이균류의 일종)을 넣는다. 고온다습한 환경에서 자연 발효가 어려웠기에 선별한 배양균을 삶은 콩과 곡물에 섞어 만드는 것이다. 일명 ‘공장식 된장’은 표준화와 대량 생산을 위해 이 같은 방법을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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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재래식 된장으로 끓인 된장찌개. 발효가 빚어낸 구수한 감칠맛을 낸다. 

반면 우리의 재래된장은 자연의 복합균을 그대로 이용한다. 된장은 먼저 메주를 띄울 때 1차 발효가 일어난다. 지금은 사라진 풍경이지만 예전엔 시골집 방 안에 새끼줄로 주렁주렁 매달려 있거나 이불을 뒤집어쓴 채 아랫목 주인 노릇하던 메주들을 흔히 볼 수 있었다.

일정 온도를 통해 잡균이 사멸하고 살아남은 균들은 다시 이듬해 봄에 소금물과 만나 또 한 번 발효 과정을 거친다. 곰팡이와 세균은 휴지(休止) 상태에 들어가지만 알코올을 생성하는 효모균이 작용한다. 간장과 된장으로 분리하는 ‘장 가르기’를 하고 나면 수분 함량과 재료에 따라 그에 맞는 미생물들이 번식해 제각각 고유의 맛을 지니게 된다. 집집마다 장맛이 다른 까닭이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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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운데 특히 된장은 곰팡이·세균·효모 등 세 가지 미생물을 짜임새 있게 이용한 지혜로운 발효과학의 산물이다. 지역, 온도, 만드는 사람, 재료, 방법에 따라 모두 다른 맛을 내니 가장 어렵고 귀한 것이 된장이다.

일반적으로 된장은 국·무침·조림·절임 등에 이용된다. 오랫동안 뭉근하게 끓여내는 음식보다 즉석 조리를 선호하는 현대인의 식습관에 따라 된장을 넣을 때도 간이 심심해졌다. 짭쪼름하게 조려낸 된장조림보다는 애호박에 근대와 논우렁살 등을 넣고 삼삼하게 끓여 낸 된장국을 선호한다. 나물의 향미를 즐기기 위해 최소한의 된장과 들기름만으로 조리하는 무침이 인기다. 쌈 채소에 곁들이는 쌈장을 만들 때도 견과류와 콩가루, 다시 육수 등을 이용해 은은하게 맛을 내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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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지영(左), 정신우(右)

그럼에도 한국인의 몸 안에는 된장 DNA가 탑재된 것만 같다. 차곡차곡 된장에 절인 깻잎을 보면 갓 지은 밥에 얹어 먹고 싶고, 된장을 넣고 고춧가루를 뿌려 투박하게 끓여낸 매운탕에 침이 절로 고인다. 무엇보다 초여름 풋고추를 된장에 찍어 먹는 맛은 자별하다. 구수하고 감칠맛이 있으며 애틋하다.

요즘 세계 미식계에선 ‘발효의 맛’에 관심이 높다. 발효 장으로 다양한 음식을 만들어내는 한식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요즘 우리가 치즈를 별미로 즐기고 있듯, 그들도 된장의 애틋한 맛을 알게 될 날이 올까. 사뭇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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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상식 ‘블루 치즈’의 대리석 무늬는 푸른빛 곰팡이 때문

우유를 원료로 푸른빛의 곰팡이를 첨가해 숙성시킨 치즈를 블루치즈라고 한다. 표면에 곰팡이에 의한 푸른색 대리석 무늬가 나타나는 게 특징이다. 부서지기 쉬운 연한 조직이고 자극적인 풍미와 독특한 감칠맛을 지녔으며 약간 짠맛이 난다. 영국의 스틸턴, 이탈리아의 고르곤졸라, 프랑스의 로크포르 등이 유명하다.

 강지영(세계음식문화연구가)·정신우(플레이트 키친 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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