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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가씨’ 푸드스타일링 김민지씨 “5초짜리 음식장면 만드는 데 석 달 보름 걸렸죠”

중앙일보 2016.06.20 00:47 종합 24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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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드스타일리스트 김민지씨가 영화 ‘아가씨’에서 하정우가 먹었던 도시락 용기를 들고있다. [사진 김성룡 기자]


소스가 풍부하게 올려진 양고기 스테이크, 화려하고 정갈한 에키벤(일본 철도역에서 파는 도시락), 반쯤 씹힌 바퀴벌레가 나온 주먹밥…. 지난 1일 개봉한 영화 ‘아가씨’(감독 박찬욱)에는 최고급 호텔 요리부터 정신병원 수용자들의 비루한 식사까지 다양한 음식이 등장한다.

시대는 물론 인물 의상·성격 맞춰야
기차역 도시락은 박물관 자료 연구
한국화 전공…요리에 빠져 진로 바꿔


이 음식들엔 영화 속 배경인 1930년대 일제강점기의 분위기부터 등장인물의 성격까지 세밀하게 담겨있다. 스크린에 노출되는 시간은 짧아도 디테일이 생명 같은 분야다. 지난 17일 영화 속 음식세계를 지휘한 푸드스타일리스트 김민지(38)씨를 그의 작업실에서 만났다.

영화 푸드스타일링은 미술팀·소품팀 등 영화 스태프들과 각본이나 참고 이미지 등을 주고 받으며 진행된다. 의견 조율 과정만 수개월이 걸리고 최종 시안대로 음식을 만들고 세팅하는 데에도 길게는 수십일이 필요하다. “영화 흐름과 장면을 이해해야 가장 어울리는 음식을 만들 수 있어요. 등장인물의 의상이나 성격, 역사적인 부분과도 맞아떨어져야 하고요. ‘아가씨’에선 5초짜리 장면을 만드는 데 자료 조사만 석달이 걸리고 실제 음식 준비엔 15일이 필요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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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가씨’의 양갈비와 에키벤(일본 도시락의 일종), ‘좋아해줘’의 덮밥(왼쪽부터). [사진 김민지]


특히 고증(考證)이 중시되는 시대극은 음식사(史), 국가별 식문화 등에도 통달해야 한다. “‘아가씨’에서 도망 중인 주인공들이 에키벤을 먹는 장면이 있어요. 일본에 있는 친구에게 부탁해 에키벤 박물관에서 당시 사진 등을 받았죠. 배경도시인 시모노세키에선 주로 삼발나무로 만든 통에 해산물 반찬을 넣어서 먹었다길래 통 크기와 반찬 종류까지 비슷하게 재현하려고 노력했어요.”

때문에 제69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류성희 미술감독이 영화 ‘아가씨’로 ‘벌칸상’을 수상했을 때 자기 일처럼 기뻤다고 한다. 벌칸상은 미술·음향·촬영 등에서 가장 뛰어난 작품의 아티스트를 선정하는 상이다. 김씨는 “류 감독은 음식 장면 하나하나에도 꼼꼼함을 보였다”면서 “칭찬을 받으면 감격스러울 정도였다”고 말했다.

그는 평소 남대문 시장부터 고미술상가, 소품 수입업체들을 돌며 눈에 띄는 것을 사놓기도 하고 필요하면 지인의 소장품을 빌린다. “영화 ‘모던보이’에서 조선총독부 1급 서기관인 이해명(배우 박해일)이 식사하는 장면에 50년대에 만들어진 일본 유명 도자회사 노리다케의 그릇을 썼어요. 제 스승님이 혼수로 샀던 그릇을 빌린 거였죠. 영화 ‘부당거래’에선 부정을 일삼는 검사(배우 류승범)가 요정을 찾은 장면에서 고급스럽고 은밀한 분위기를 드러내기 위해 고가의 칠기와 백자를 배치했고요.”

김씨는 2008년 개봉한 영화 ‘모던보이’를 시작으로 ‘암살’ ‘좋아해줘’ ‘타워’ 등 8편에서 푸드스타일링을 맡았다. 중앙대에서 한국화를 전공한 그는 요리에 흥미를 느껴 진로를 바꿨다. 이후 숙명여대 특수 디자인대학원에서 테이블 데코레이션을 공부했다.

‘리얼한 요리를 만든다’는 평을 듣는 그에겐 ‘연출 음식도 맛있게 만들어야 한다’는 신념이 있다. “요리가 맛있어야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연기를 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가령 영화 ‘좋아해줘’에서 주인공이 덮밥에 애정을 담아 건네주거든요. 근데 맛이 없으면 그 감정이 전해지지 않을 것 같았어요. 실제 먹어보고 맛없다 싶으면 버리고 다시 짓고…. 관객이 등장인물이 먹는 그 맛을 상상할 수 있게 하고 싶어요.”

글=김선미 기자 calling@joong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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