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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개헌론, 그 깊은 괴리감에 대하여

중앙일보 2016.06.20 00:30 종합 31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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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훈
중앙대 교수·정치학

최근 여의도 정가에서 다발적으로 제기되는 개헌론은 의도한 결과보다는 의도치 않은 결과로 귀착될 가능성이 더 크다. 헌법을 업그레이드하겠다는 목표와는 달리 개헌 논의는 여의도 정치인들과 시민들 사이의 참을 수 없는 괴리감을 새삼 드러내는 역설의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우리 사회 무엇이 문제이고 어디를 고칠 것인지를 논의하다 보면, 프로 정치인들과 보통 시민들이 각각 다른 나라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생겨날 수 있다. 제도론자들이 강조하다시피, 개헌과 같은 중대 제도의 변경은 공동체 내에 위기의식이 공유되고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제도적 대안에 대한 합의가 이뤄질 때만 가능하다. 문제는 개헌론자들이 언급하고 있는 위기가 평범한 시민들이 일상에서 마주하는 삶의 위기와는 지극히 동떨어져 있다는 점이다.

여의도에서 개헌의 근거로 말하는 위기는 시민적 삶의 위기보다 훨씬 (1)근시안적이고 (2)권력 구조 중심적이다. 개헌론자들이 공통적으로 내세우는 개헌의 논리는 이른바 1987년 체제가 수명을 다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민주화 시기에 성립된 87년 헌법에 포함된 대통령 5년 단임제가 오늘날 위기의 뿌리라는 것이 여의도 정치인들의 설명이다. 따라서 87년 체제의 위기를 넘어서기 위해 권력 구조를 이원집정제, 4년 중임제 또는 내각제로 고쳐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평범한 시민들이 삶 속에서 부닥치고 있는 위기는 이러한 여의도의 위기 인식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무엇보다 지금 시민들의 삶에 대한 위협은 초장기 기술-경제 패러다임의 변동에서 촉발되고 있다. 평범한 이들의 삶의 위기는 우리가 오랫동안 익숙해져 온 산업화 시대 인간 노동의 종말에서 비롯되고 있다. 수백만 명의 젊은이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방황하고, 그나마 힘겹게 구한 비정규직에서조차 얼마 전 구의역의 비극적 사건처럼 죽음 같은 위험으로 내몰리고 있는 배경에는 거대한 기술-경제 패러다임의 변화가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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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0여 년간 대량 생산, 대량 소비, 대규모 고용의 축 위에서 작동하던 산업화 경제는 오늘날 로봇이 인간 노동을 대체하고, 인공지능이 사람의 역할을 위협하는 스마트 경제로 현란하게 이동하고 있다. 1866년 대동강 강변에 나타났던 거대한 증기기관선 제너럴 셔먼호가 조선의 농촌 사회를 일깨우고 1차 산업화 패러다임의 등장을 알렸듯이, 지난 3월 서울에서는 형체나 얼굴조차 없이 이세돌 9단과 맞섰던 알파고가 인공지능 시대의 개막을 충격적으로 알려주었다.

지능을 갖춘 기계가 공장 근로자들뿐만 아니라 의사·교수·법률가들의 일자리도 대체해 가는 제2의 기계 시대는 빠르게 다가오고 있다. 인공지능과 VR, 사물인터넷이 주도하는 신경제는 수많은 일자리뿐만 아니라 표준 지식을 가르치던 학교들도 머지않아 침몰시킬 것이다. 나아가 신경제는 산업화 패러다임의 뼈대를 이루던 대기업, 노동조합, 대의제 의회, 현대 정부의 역할을 근본적으로 흔들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가 마주한 위기의 시간 단위는 1987년 민주화가 아니다. 60년대에 출발한 한국 산업화 체제가 위기이고, 더 심층적으로는 19세기 영국에서 출발한 근대 산업 시대가 저물고 있는 것이다.

근대 세계의 문을 열었던 산업화 시대의 기업·정부·의회의 존재가 흔들리는 심대한 위기 앞에서 개헌론자들이 제시하는 대안은 4년 중임제 혹은 이원집정제라는 권력 구조의 변경이다. 권력 구조를 바꾸면 협치도 가능하고 일자리도 창출되고 4차 산업혁명도 따라잡을 수 있다는 것이 여의도발 개헌론이 내세우는 위기 극복론이다.

하지만 직장 퇴직 후 평균 30년 이상을 살아가야 하는 고령화 추세 앞에서 잔뜩 움츠러든 채 직장에서 물러나고 있는 베이비부머들은 과연 권력 구조 변경이 삶의 위기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을까. 굴뚝 산업의 위축 속에서 조선·해운·건설·철강 분야의 한계기업에서 물러나야 하는 수많은 퇴직자에게 이원집정제나 4년 중임제가 문제 해결의 열쇠라는 주장은 과연 들리기나 할까.

시민들이 여의도 정치에 대해 기대하는 것은 인공지능에 맞서 일자리를 뚝딱 창출하고 금방 복지 사회를 만들어내는 기적의 정치가 아니다. 시민들에게는 흔들리고 있는 보통 사람들의 삶을 같은 눈높이에서 바라보고 공감하는 정치가 절실한 게 아닐까.

시민들이 겪는 삶의 위기와 여의도 정치권에서 말하는 위기의 괴리가 좁혀지지 않을 때 위기는 거대한 분노로 이어질 수 있다. 미국의 트럼프 현상이나 서유럽 극우정치의 약진은 시민적 삶과 유리된 대의제 정치가 쏟아내는 고통스러운 신음 소리다. 고장 난 대의제에 대한 분노가 폭발하기 전에 우리 정치는 시민들 삶의 위기와 정치권이 말하는 위기의 괴리부터 좁혀야 한다. 개헌은 그다음 일이다.

장 훈
중앙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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