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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view &] 답 하나만 강요하는 ‘정답사회’의 부작용

중앙일보 2016.06.20 00:06 경제 8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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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

32년 전 겪은 황당한 일이다. 부산에서 제주도행 여객선을 타고 신혼여행을 가는 중이었다. 8월 중순이라 날도 덥고 해서, 간편한 반바지를 입고 갑판에 나왔는데 갑자기 한 선원이 ‘풍기문란(?)’이라 지적하며 방으로 가라는 것이 아닌가. 하기야 짧은 치마·장발단속이 끝난 지 얼마 안 된 시절이었으니 그럴 법도 하다. 하지만 왜 긴 바지는 되고 짧은 바지는 안 된다는 것일까?

이유는 긴 바지가 그 당시 사회가 정한 ‘정답(Right Answer)’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같은 이분법적 시각에서 벗어나면 결과는 달라진다. 바로 여러 개가 답이 될 수 있는 ‘좋은 답(Good Answer)’ 관점이다. 답이 정해지지 않고 열려있기 때문에 자신의 독창적인 생각이 담길 수 있다. 분명 반바지는 여름철 의복 중 하나일 뿐, 틀린 답이 아니다.

문제는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가 여전히 여러 좋은 답보다 하나의 정답 만을 찾는 문화에 젖어 있다는 점이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다. 학생 때부터 의식주 대부분을 국가가 정해주는 대로 살았으니까. 교복을 입고, 단체 급식을 먹으며, 학교·학급·선생님·과목 등 남이 정해준 것을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시험은 학생들의 창조적인 답안보다 교육부가 정한 답을 시간 내에 찾는 ‘시합’이 돼버렸다. 대학도 마찬가지다. 교수가 말한 것을 답안지로 제출해야 A+를 받으니 말이다.

하지만, 유학 중 느꼈던 미국 교육은 달랐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브레인 워싱 클래스(Brain Washing Class)’였다. 지금까지 배운 경제학 지식이 틀렸으니 두뇌를 ‘세척’하자는 강좌다. 그 중 백미는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들의 주장이 어떻게 틀렸는지 풀어내는 것이었다. 우리가 수학올림피아드처럼 시간 안에 답을 찾는 것에는 강하면서 정작, 노벨상 수상이나 세계적인 대가가 드문 까닭은 바로 이런 교육적 차이 때문이다.

국가 정책도 하나의 정답을 정해놓은 듯하다. 예를 들어, 기업 정책은 큰 것은 나쁘고 작은 것은 좋다는 식이다. 그러다 보니 대기업은 규제대상, 중소기업은 지원대상이 된다. 그러나 선진국들은 더 이상 기업의 ‘크기(Size)’로 규제하지 않는다. 오히려 기업을 키워 ‘글로벌 챔피언’으로 성장시키겠다고 한다.

또 하나뿐인 정답이 손바닥 뒤집듯 바뀌는 경우도 많다. 예전에는 대기업의 과잉투자를 문제 삼았지만 요즘은 투자를 너무 안 한다고 야단이고, 대기업 총수 지분율이 높다는 비판은 어느새 낮다는 비판으로 바뀌었다. 상황에 따라서도 바뀐다. 외국 기업이 한국에 투자해서 돈을 벌어가면 벌어간다고 국부 유출, 한국 기업이 외국에 투자해서 돈을 벌면, 외국에 투자했다고 국부 유출이란다. 갈팡질팡 ‘정답’에 기업들만 답답해진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국회에서 갈등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이유는 각 당이 가진 여러 개의 좋은 답을 인정하지 않고 내 생각만이 맞다고 주장해서다. 국가발전을 위한 답이 어찌 하나뿐이겠는가. 종교의 자유를 인정해야 분쟁이 없듯, 상대 당에 대한 인정과 존중이야말로 국가발전의 첫걸음이다.

이런 경직된 정답문화는 여러 사회적 부작용을 낳는다. 우선 창조성이 결여된다. 안니카 소렌스탐 등 명예의 전당에 오른 세계적인 여성 골퍼들을 보면, 거의 대부분 자신만의 창조적인 스윙 폼을 갖고 있다. 내 몸에 가장 효율이 높은 ‘좋은 답’을 찾은 것이다. 반면, 한국 교습가들은 그런 폼을 따라하지 말라고 가르치기까지 한다. 그러다 보니 우리 선수들 대부분은 체형과 관계없이 거의 동일한 ‘교과서’적 폼을 구사한다.

또 사회적 정답에 벗어나면 남들로부터 지나친 관심을 받아 삶이 피곤해진다. 한 고위공직자가 밝은색 관용차를 탄 것이 언론에 기사화될 정도다. 세계적인 행복심리학자인 서은국 교수는 경제력이 있음에도 한국·일본 등의 행복도가 적은 주요 원인으로 낮은 ‘심리적 자유도’를 꼽았다.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보다 사회에 맞추길 강요·간섭하는 경향이 높다는 것이다.

이제는 정답을 맹신하는 사회적 분위기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 바탕에는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 첫째 덕목일 것이다. 정답만을 고집하지 말자. ‘좋은 답’이 ‘바른 답’이다.


이 승 철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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