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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멀쩡한데” …유탄 맞은 중소 해운사들 속이 탄다

중앙일보 2016.06.20 00:01 경제 3면 지면보기
해운업계 구조조정으로 재무구조가 우량한 중소 해운사가 유탄을 맞고 있다.

선주협 소속 151곳 중 114곳 흑자
“구조조정 이후 대외 신인도 떨어져”
일부 화주들 해외 선사로 물량 돌려
금융권도 대출금 조기 상환 등 압박

17일 경기도 양평 현대종합연수원에서 열린 한국선주협회 주최 ‘2016 해운 사장단 연찬회’에서 다수의 중소 해운사 사장들은 “현대상선·한진해운 구조조정 이슈가 터진 이후 컨테이너 화물을 맡기던 화주의 20%가 해외 선주와 거래를 시작했다”고 호소했다.

이윤재 한국선주협회 회장은 “정부 구조조정 이후 대한민국 해운이 침몰 직전에 있는 것처럼 잘못 알려져 대외 신인도가 크게 저하됐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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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도가 떨어지자 일부 화주들에게서 국내보다 해외 선사들을 선호하는 분위기로 강해졌다. 우량한 국내 해운사까지 위험하다는 인식이 퍼지면서다. 화주가 기존 해운사와 관계를 단절하진 않더라도 화물 운송처를 다변화하면 그만큼 국내 업체 매출은 감소한다.

이윤재 회장은 “국적 선사를 외면하고 외국 선사에게 화물을 몰아주는 국적선사 이탈현상이 심각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이날 행사에 참여한 한 선주는 “컨테이너선 부문에서 전체 영업이익의 30%가 나오는데, 하반기에는 이 비중이 크게 감소할 걸로 보고 선박 임대수익 등으로 수익처 다변화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해운업이 리스크가 큰 업종으로 분류되면서 금융권이 신규거래 개설을 거부하거나 기존 대출금을 조기 상환하라고 요구하는 것도 문제다. H해운사 사장은 “한진해운과 현대상선 이슈만 부각되다 보니 은행이 대출을 꺼리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D해운사 고위 임원도 “해운 구조조정이 시작된 이후 금융권은 우리 같은 중소업체에게 선박을 담보로 잡겠다는데도 돈을 안 빌려준다”고 말했다. “장기적 안목이 필요한 해운업 특성을 금융권이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정부가 나서 달라”(신용경 신성해운 부사장)는 제안도 나왔다.

대형 선사와 달리 국내 중소형 해운사는 화물 운임이 크게 하락한 지난해에도 꽤 좋은 실적을 거뒀다.한국선주협회 소속 151개 해운사 중 영업이익 흑자를 기록한 선사는 114개(75.5%)에 이른다. 151개 해운사의 지난해 영업이익 총합은 1조697억원으로 2014년 대비 48.3%나 증가했다.

대형 선사 위주의 시스템을 대형사와 중소선사로 구분해 이원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회사 규모에 따라 선박면허 유지 조건이나 세제 혜택 등의 지원을 달리해야 중소선사가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선주협회 회원사 대다수를 차지하는 중소선사의 경우 최근 십수년 동안 약 100개사가 퇴출되고, 100여개사가 신규 가입했다.

양진호 해인상선 사장은 “금융권 대출이나 해운사 신용평가 등 대부분의 정책이 대형선사 위주다. 중소형사와 대형사를 구분해야 중소 해운사가 중견 선사로, 나아가 대형 원양선사로 성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해운업계는 일부 규제를 풀어달라는 의견을 정부에 전달할 방침이다. 예를 들어 해운업법은 선박 검사증서를 발급한 다음 선박 면허증서를 발급한다. 검사가 끝나고 검사증서를 발급하는데 행정적으로 3~4일 정도가 걸린다.

한 선사 사장은 “굳이 검사증서를 발급할 이유가 없다. 우리가 보유한 중형 선박은 하루 운항 못하면 1만 달러(1200만원) 손해다. 서류 발급이 4일 늦어지면 앉아서 영업손실이 4만 달러(4700만원) 늘어나는 셈”이라고 말했다.

정부 단속을 강화해 기존 제도를 제대로 운영할 필요도 있다. 양진호 사장은 “싱가포르나 홍콩에 법인을 설립했지만 실제로는 대한민국에서 불법 영업하는 선사들이 많다”고 말했다. 국내에 사업자등록을 할 경우 외국인 선용 고용 관련 세금이나 법인세를 납부해야 하는데, 사업자 등록을 해외에서 하면 이런 세금을 내지 않아 운임 경쟁에서 유리하다. 국내에서 사업자등록을 한 선사가 역차별을 받는 상황을 타개하려면 정부가 단속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문희철 기자 report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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