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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갑 가벼워 립스틱·향수·약까지 분할 구매해 써…‘알뜰족의 품앗이’ 주장도

중앙일보 2016.06.18 00:48 종합 13면 지면보기
‘코스○○에서 산 유기농 파스타면 소분합니다.’

20~30대 새 소비문화 ‘소분(小分)’

직장인 유영선(30)씨는 최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글을 올렸다. 얼마 전 남편과 쇼핑을 하다 ‘스파게티를 만들어 먹자’며 유기농 파스타면을 샀는데 양이 너무 많았다. 유씨는 “가족이 남편하고 나 둘뿐인데 삼시세 끼 스파게티만 해먹을 순 없어 다른 사람들과 나눠 보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유씨는 ‘30인분’ 파스타면을 다섯 사람과 나눴다.

유씨는 요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분(小分)’족이다. 소분이란 특정 제품을 ‘소량 분할해’ 구매하는 것을 말한다. 주로 20~30대 청년이 대부분인 소분족들은 마트에서 산 간식거리부터 립스틱, 강아지 사료, 약 한 알까지 ‘소분’한다. 사고 싶지만 혼자 사기엔 가격이나 양 등이 부담될 때 비슷한 상황의 사람들을 찾아 일종의 ‘경제적 분담’을 하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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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분’ 전용 커뮤니티인 ‘소공녀’(위)와 ‘붕어빵네 분할홀릭’ 카페. 주로 화장품을 나눠 쓸 사람을 모으는 창구로 활용된다. [인터넷 캡처]


온라인에는 네티즌끼리 소분 구매를 하는 전용 커뮤니티까지 생겼다. 네이버 카페 ‘소공녀:소분, 공동구매하는 여자들의 모임’ 가입자 수는 7만여 명에 달한다. 대학생 한소연(20)씨는 “좋은 화장품을 쓰고 싶은데 가격이 너무 부담돼 종종 온라인에 공동구매 글이 올라오는 소분 립글로즈나 수분크림을 사서 쓰고 있다”고 말했다.

대학생 윤한석(27)씨도 “향수에 관심이 많은데 정품 향수들을 다 사서 모으기엔 용돈으로 감당이 안 돼 온라인에서 거래되는 ‘소분 향수’를 즐겨 구매한다”고 했다. 그래서 혹자는 소분을 ‘흙수저들의 품앗이’라고 표현한다.

인기 소분 품목은 주로 고급 화장품이나 향수·의약품 등이다. 큰 용기에 들어 있는 로션이나 알약 등을 작은 용기에 나눠 담아 공동구매한다. 백화점 등 상점에서 화장품을 구입하면 주는 샘플도 거래된다. 직장인 윤모(28)씨는 “거의 매일 커뮤니티를 들락거리며 오늘은 어떤 물건이 소분으로 나왔는지 확인한다”며 “소분은 온라인 세대가 만든 가장 실용적인 소비법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플랜Z’. 정해진 수입 안에서 적게 쓰면서도 만족은 크게 얻길 원하는 요즘 소비 트렌드를 뜻하는 신조어다. 소분은 ‘플랜Z’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경제 사정이 각박해지면서 소비를 하더라도 큰돈이 안 들어가게 나눠서, 혹은 쪼개서 소비하는 풍조가 나타났다”고 진단했다. 이처럼 전문가들은 주머니는 가볍지만 사고 싶은 건 포기하기 싫은 요즘 세대들이 ‘소분’이라는 새로운 소비 문화를 통해 그 욕구를 충족시키고 있다고 분석한다.

하지만 ‘합리적 소비’라 불리는 소분은 불법의 위험성도 안고 있다. 현행법상 화장품이나 의약품 등은 소분 판매가 금지돼 있다. 소분을 했을 때 유통기한, 위생 상태 등이 변질될 수 있고 성분을 확인하는 것도 어렵기 때문이다.

화장품법 제16조 2항에는 ‘누구든지 화장품 용기에 담은 내용물을 나누어 판매해서는 아니된다’고 명시돼 있고 식품위생법 등은 무허가자의 건강식품과 동물 사료, 의약품 등 소분 판매를 허용하지 않는다.

실제로 지난해 12월에는 소분으로 판매된 오징어 젓갈에서 플라스틱이 발견돼 서울 강서보건소 위생관리과가 적발한 사건이 있었다. 소분 커뮤니티에도 종종 ‘정품과 다른 것 같다’ ‘물품이 상한 것 같다’ 등의 항의 글이 올라오곤 한다. 하지만 소분은 개인들이 별도 허가 없이 소소하게 거래하는 경우가 많아 피해를 당해도 구제받기 쉽지 않다.

이준영 상명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일종의 가성비(가격 대비 효용성) 문제라고 볼 수 있다”며 “다만 소분된 물건은 그 품질을 담보할 수 없기 때문에 소비자들이 물건을 구매할 때 좀 더 꼼꼼하게 안전성 등을 체크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재영·김유빈 기자 yun.jaey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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