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박정호의 사람 풍경] 미라·인골에 빠진 신동훈 서울대 의대 교수 “뼈는 과거 엿보는 타임머신…유골 200분 넘게 모셨죠”

중앙일보 2016.06.18 00:42 종합 14면 지면보기
기사 이미지

신동훈 교수는 인골과 미라를 연구한다는 점에서 고고학자를 닮았다. “조금 과장해 의학계의 인디애나 존스라 부를 만하냐”고 물었더니 “주변에서 웃을지 모른다”며 펄쩍 뛰었다. 사진 배경은 조선시대 강릉 최씨 최경선 선생의 얼굴 3D 복원 과정. [사진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서울 대학로 서울대 의대 연구관 220호 체질인류학 및 고병리(古病理) 연구실. 이곳 좌장인 신동훈(50) 교수 책상 바로 옆에는 조선시대 수도전도(首都全圖)가 붙어 있다. 의대 연구실에 신체 해부도가 아닌 한양 지도가 있는 게 독특하다.

옛날 질병 연구하는 고병리학자
붓과 삽 들고 전국 발굴현장 돌아
해외로 눈 돌려 국제 프로젝트 5~6건


“조선시대 사람들의 기생충 감염 정도를 단국대 의대 서민 교수와 함께 연구했어요. 서 교수가 저와 서울대 의대 동기생입니다. 2010년부터 3년가량 광화문·종묘 등 발굴 현장을 돌아다녔는데 그때 채취한 시료(試料) 장소를 알아보려고 지도를 걸어 놓았어요. 18세기 한양 인구가 크게 늘면서 채소 수요가 급증하고 그에 따라 인분(人糞) 비료를 많이 사용하면서 기생충 감염도 확산됐습니다. 경복궁 앞 흙에서만 1g당 최고 165개의 기생충 알이 검출됐죠.”

또 연구실 한쪽 벽면에는 반투명 플라스틱 상자가 가지런히 쌓여 있다. 전국에서 올라온 옛 선인들의 유골이다. “상자 하나에 한 분씩 모시고 있습니다. 지난 10년간 모았는데, 200여 분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유골에 ‘분’이라는 경어를 쓰네요.
“다 한때 밥 먹고 숨 쉬고 사셨던 분들의 흔적이잖아요. 후손들도 분명 살아 있을 테고요. 당연히 존경해야죠. 인골은 우리의 과거를 들여다보는 거울입니다. 타임머신과 같죠. 옛 사람들이 무엇을 먹었고, 어떤 병을 앓았고, 어떤 일을 했는지 등등 개인과 시대의 이력서입니다. 그래서 저는 ‘모신다’고 해요.”
이걸 다 연구한다는 말이죠.
“발굴 현장에서 연락이 오면 직접 가서 모셔옵니다. 서울대 인류학과에도 비슷한 규모의 옛 인골이 있지만 아직 갈 길이 멀어요. 외국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합니다. 최소 1000~2000분을 모셔야 시대별 변천 양상을 추적할 수 있거든요.”
 
기사 이미지

디지털 3D 이미지로 복원한 6세기 신라 여성의 얼굴. 현대 여성보다 머리뼈가 앞뒤로 길고 좌우로는 좁은 것으로 확인됐다.


신 교수는 고병리학자다. 오래된 유골이나 시신에서 과거의 질병을 연구한다. 일반 의사들이 나이프와 청진기를 든다면 그는 조상이 남긴 세포 조직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본다. 컴퓨터단층촬영(CT)·유전자(DNA) 분석 결과도 빠뜨릴 수 없다. 때로는 고고학자처럼 모종삽과 붓을 들고 문화재 발굴 현장을 찾아간다. 각종 사료(史料)를 참고하는 것은 물론이다. 의학과 인문학의 만남이다. 지난주 신 교수 연구실이 중심이 돼 1500여 년 전 신라 여성의 얼굴을 3D 복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14일 그를 찾아갔다.
 
뼛조각 95개를 이어 붙였습니다.
“2013년 경주에서 출토된 유골의 머리뼈는 조각난 상태였죠. 부서진 뼈를 CT 촬영하고 그 이미지를 토대로 하나하나 뼈를 맞춰갔습니다. 3차원 가상공간에서 완성한 이미지를 실제 인골에 접목한 것이죠.”
어떤 의미가 있는 겁니까.
“국내에는 고려시대 이전의 인골이 별로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나마 신라인의 완형을 찾아낸 셈이죠. 연구 결과 채식 위주의 식사를 했다는 것도 밝혀냈고요. 이번 디지털 모델링 기법을 다른 유골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겁니다.”
국내 미라 연구도 개척했습니다.
“벌써 16년째죠. 2001년 경기도 양주 해평 윤씨 문중 선산에서 나온 남자 아이(단웅이)의 미라를 처음 보았어요. 당시 단국대 해부학 교실에 있었는데, 제게 연구 의뢰가 들어왔어요. 이후 지금까지 미라 25분을 모시게 됐습니다. 복식사 위주로 진행됐던 미라 연구를 의학적 측면에서 살피게 된 계기가 됐죠.”
미라와 공룡, 가장 대중적인 주제죠.
“그러기에 더욱 조심해야 합니다. 자칫 유사과학으로 빠질 수 있어요. 과학적 근거에서 데이터를 쌓아가야 합니다. 아마 저만큼 조상님을 많이 모신 학자도 드물 겁니다.”(웃음)
그 전에도 미라를 알고 있었나요.
“아닙니다. 한국에도 미라가 있다는 걸 전혀 몰랐어요. 처음 본 순간 보존 상태가 양호해 매우 놀랐습니다. 학자로서 운이 좋았던 거죠. 의대 학부생 시절부터 역사에 관심이 많았는데 뒤늦게 저만의 블루오션을 찾게 됐습니다.”
선택이 쉽진 않았을 것 같습니다.
“저희 연구실에서 1950~60년대에 이미 한국 인골을 연구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후 맥이 끊겼다가 다시 살아난 셈이죠. 그간 우선순위에서 밀린 거죠. 당장 돈이 되는 학문이 아니니까요. 우리나라가 이제 먹고살게 됐다는 뜻도 됩니다.”
생로병사, 사는 게 뭐 달라졌을까요.
“미세한 차이가 있습니다. 고인골 치아를 보면 충치가 별로 없어요. 요즘처럼 단것을 많이 먹지 않았습니다. 또 20세기 이전 뼈나 미라에는 결핵균이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제 예상과 달랐지요. 인구밀도가 낮아 공기 전염이 적었던 거죠.”
 
기사 이미지

조선시대 남편에 대한 간절한 사랑을 담은 ‘원이 엄마’의 한글 편지.

 
기억에 남는 연구가 있다면요.
“98년 경상북도 안동에서 ‘원이 엄마’의 한글 편지가 남편의 미라와 함께 나왔어요. 저는 후속 연구에 참여했는데 남편에 대한 사랑이 감동적이었죠. 머리카락으로 짚신을 삼아 남편 무덤에 넣었잖아요. 2008년 영국 학술지 ‘앤티쿼티(Antiquity)’에 관련 내용을 실었는데 해외 반향이 컸습니다. 그해 베스트 논문 결선까지 올라갔어요. 예나 지금이나 부부의 사랑만큼 영원한 게 있을까요.”
또 다른 사례도 있을 것 같습니다.
“400여 년 전 아래턱뼈 골절로 사망한 강릉 최씨 최경선 할아버지의 미라가 생각납니다. 3년 연구 끝에 2010년 저희 연구실에서 고인의 얼굴을 3D로 처음 복원했는데 당시 유족들이 얼마나 효자였는지 몰라요. 설날·추석 등 명절 때마다 ‘조상님 잘 계시냐’고 안부를 전해왔어요. 연구에 선뜻 응해 준 것에 대한 감사의 뜻에서 할아버지 얼굴을 초상화로 만들어 선물해드렸죠.”
아직 일반인에겐 생소한 학문입니다.
“유럽·미국 등에선 100여 년 넘는 전통을 쌓아왔습니다. 인류의 진화와 맞닿은 분야죠. 현재 국내에선 피겨 스케이팅의 김연아, 리듬체조의 손연재만큼 연구진이 드물지만 앞으로 영역이 넓어질 것으로 봅니다. 요즘 젊은이들이 도전의식이 부족하다고 비판하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아요. 제 주변만 봐도 이집트 미라를 연구하고 인도 문명에 매료된 후학도 있습니다.”
 
기사 이미지

인더스 문명 발굴에 함께한 한국과 인도 학자들.


신 교수 연구팀은 요즘 해외로 눈길을 돌리고 있다. 지난해 인도 학자들과 함께 약 5000년 전 인더스(하라파) 문명 발상지 중 하나인 인도 라키가리 유적지에서 유골 4구를 수습했다. 올해에도 유골을 15구 추가 발굴했다. 미국 내셔널지오그래픽의 지원을 받아 인더스 문명 주인공의 DNA를 분석하고 그들의 얼굴도 3D 복원 중이다. 다음달 시작하는 러시아 시베리아 원주민 미라 연구 등 국제 공동연구만 5~6건에 이른다.
 
우리와 별 관계 없는 영역 아닌가요.
“현장에서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죠. 저를 좌절하게도 하고요. 물리학·수학에서도 그런 물음을 던질까요. 한국만의 물리학·수학이 있나요. 인류 공통의 기원을, 문명의 중심을 탐구하는 일에 동참한다고 보면 됩니다. 농경이든, 목축이든 한국에서 시작된 게 아니잖아요. 하라파 문명권은 우리로 치면 고조선 단군 왕검성과 비슷해요. 세계 4대 문명 중 하나가 시작된 곳입니다.”
우리의 객관적 위상을 진단한다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한국의 자리를 떠올려 보세요. 미국·유럽을 바짝 추격했지만 따라갈 대목이 한둘이 아니죠. 안타깝지만 그게 현실입니다. 제가 다음 세대를 잇는 다리가 된다면 만족합니다. 이제부터 다시 시작입니다. 핵심은 인간에, 역사에 대한 호기심입니다.”
 
체질인류학·뼈고고학·기생충학 전문가들과 ‘드림팀’ 꾸려
 
기사 이미지

왼쪽부터 서울대 의대 이원준 박사, 연세대 치대 우은진 교수, 단국대 의대 서민 교수.


“저는 뭐 특별히 한 게 없어요. 다른 사람들 공이 더 큽니다.” 신동훈 교수는 인터뷰 초반 말을 아꼈다. “그다지 내세울 게 없다”는 이유에서다. 여러 전문가들의 공동연구가 대부분인 만큼 팀 전체가 부각됐으면 하는 뜻을 전했다.

예로 신라 여성 얼굴 복원도 그렇다. 국제학술지 ‘플로스 원(PLOS One)’ 최신호에 실린 논문에는 연구진 12명의 이름이 올라와 있다. 소속 기관도 서울대·연세대·이화여대·성균관대·신라문화유산연구원 등 다양하다. 먼먼 옛날의 생활상을 복원하려면 ‘학제 간 연구’가 필수적이다.

신 교수에게는 늘 함께하는 동료 학자들이 있다. 일종의 ‘드림팀’이다. 신라인 얼굴 3D 복원에는 서울대 의대 고병리연구실 이원준(체질인류학) 박사, 연세대 치대 우은진(뼈고고학) 교수가 큰 역할을 했다. 단국대 의대 서민(기생충학) 교수, 서울대 의대 김종인(DNA분석) 교수, 단국대 의대 김명주(해부학) 교수, 인도 데칸대 김용준(고고학) 연구원 등도 핵심 멤버다.

연구진 경력도 특이해 치과의사 출신의 이원준 박사는 영국에서 뼈인류학으로 석·박사를 받았고, 고교교사 출신의 김용준 연구원은 인도에서 불교고고학을 전공했다. 신 교수는 또 연구 주제에 따라 인류학·생물학·의류학·역사학 등 각계 전문가들과 팀을 이룬다.

“우리 연구 역량과 수준이 올라섰다는 증거입니다. 나라가 어느 정도 잘살아야 공동연구 체제를 갖출 수 있거든요. 이 분야에서도 ‘코리아 브랜드’를 알릴 날이 오겠지요.”

박정호 문화전문기자·논설위원 jhlogos@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