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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속으로] 세계 어린이 50명 동시 후원, 그 부담감이 감사하고 좋다

중앙일보 2016.06.18 00:34 종합 15면 지면보기
톱스타 출신답게 오만하진 않을까 짐작했다. 1990년대 ‘한국의 피비 케이츠’로 불리며 큰 인기를 구가했던 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섣부른 추측은 보기 좋게 깨졌다. 여전히 발랄한 미소를 가진 그는 배우이기 이전에 지천명(知天命)을 코앞에 둔 커리어 우먼으로, 삼남매의 엄마로, 막 미국생활에 적응한 유학생으로서의 고단한 일상과 고민을 솔직하게 들려줬다. LA에서 차로 1시간가량 떨어진 터스틴에 거주하고 있는 배우 신애라(47)를 자택 인근 카페에서 만났다.

미국서 교육학 박사과정 배우 신애라

2014년 삼남매를 데리고 유학길에 오른 그는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코로나 소재 히즈 유니버시티에서 교육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지난 2년간 계절학기까지 들어가며 악착을 떤 끝에 얼마 전 석사 과정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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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 앵글에 무방비 상태로 담기는 찰나의 웃음은 많은 걸 말해준다. 신애라가 인터뷰 도중 콧잔등과 눈꼬리까지 알뜰하게 따라 웃는, 그녀 특유의 아이 같은 해맑은 웃음을 짓고 있다. [사진 김상진 LA중앙일보 기자]

 
2년 전 갑작스레 유학길에 올랐다. 오래전부터 계획한 일인가.
“어휴 당연히 아니다. 이 나이에 다시 공부를 하게 될 줄은 나도 몰랐다. (웃음) 미국 방문 때 히즈 유니버시티 양은순 총장을 만난 뒤 생각이 바뀌었다. 당시 양 총장이 기회가 될 때 공부를 하라고 권유했다. 언제, 어떻게 쓰일지 모르는데 그 기회를 활용하지 않으면 직무유기가 아니겠냐고 하더라. 그래서 한국에 돌아와 반년 만에 유학 수속을 밟아 2014년 여름 이곳에 왔다.”
왜 교육학을 택했나.
“원래 아이들을 좋아하고 교육에도 관심이 많았다. 그러다 1999년부터 EBS에서 ‘육아일기’를 2년 넘게 진행하면서 부모가 그냥 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양육법(Parenting)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다. 주변에서 자녀의 명문대 진학이 인생의 목표인 것처럼 목숨을 거는 부모들과 그 틈바구니에서 마음이 멍들고 다치는 아이를 많이 봤다. 그래서 양육법을 보다 더 전문적으로 공부해 부모와 자녀 모두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데 도움을 주고 싶었다.”
2년간의 미국 생활이 쉽지는 않았을 것 같다.
“왜 아니겠는가. 그래서 이곳에 올 때 지인들에게도 도저히 못하겠다 싶으면 언제고 돌아갈 것이라 말했다. (웃음) 특히 고등학생인 큰아이가 걱정이었는데 얼마 전 다니던 사립학교가 적성에 맞지 않는다며 스스로 원하는 공립 아트스쿨을 찾아 전학 수속까지 하는 걸 보고 대견했다. 내 방목 교육법이 빛을 발한 것 같아서. (웃음) 물론 시간만 되면 한국에서 날아와 물심양면 도와주는 남편의 공이 가장 컸다.”

그의 남편은 배우 차인표(48)다. 95년 결혼 후에도 부부 모두 배우로서 꾸준히 입지를 다져갔지만 연기보다 더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건 부부의 삶을 통해 보여준 공개 입양과 기부, 봉사 등 나눔의 실천이었다. 이들 부부는 슬하에 정민(17)·예은(10)·예진(8) 삼남매를 두고 있다. 이들 중 예은·예진 자매는 2005년과 2008년 공개 입양한 ‘가슴으로 낳은 딸들’이다. 또 부부는 2005년부터 세계 빈곤 아동과 일대일 결연을 맺도록 도와주는 국제 어린이 양육기구인 한국컴패션 홍보대사로 활동 중이다. 
 
한국컴패션 활동을 시작한 계기는.
“그 무렵 마음이 공허했다. 분명 경제적, 가정적으로는 안정됐지만 여전히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이 있었다. 그때 마침 컴패션이 주최한 비전트립으로 필리핀에 갔다가 그곳에서 만난 가난하지만 해맑은 아이들을 보면서 행복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그 후 그들에게 작은 도움을 주고 그를 통해 더 큰 행복을 얻으면서 삶이 바뀌었다.”

그렇게 10년간 컴패션을 통해 한 명 두 명 늘어난 결연 아동이 어느 새 50여 명에 이른다고 한다.
50명이면 후원금만도 만만치 않을 텐데 부담스럽지 않나.
“돈이 주머니에서 나가는지 마는지 모를 정도로 신경 쓰이지 않는다면 아이들에 대한 마음 씀씀이도 그만큼 가벼울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래서 오히려 난 이 부담감이 감사하고 좋다.”
앞으로 연기활동에 대한 계획은 없나.
“당연히 내 직업은 배우다. 언젠가 드라마나 영화에서 엄마 역할을 멋지게 연기할 날을 나 역시 기대한다. 주연 욕심? 어휴, 이만큼 할 수 있었던 것만도 감사하다. 이젠 내 나이에 맞는 역할을 하고 싶다. 내가 주연일 때 여러 선배 연기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문득 카페 의자와 테이블에 놓인 그녀의 핸드백이며 장지갑, 휴대전화 등이 눈에 들어왔다. 그 흔한 명품은 고사하고 평범하다 못해 낡아 해진 것도 있었다.
 
대한민국 여자들이라면 한 개쯤 갖고 있다는 명품 지갑 하나 없다.
“한때는 주위에서 남편 위신 생각해서라도 명품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고 해 고가의 명품 백을 구입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어느 행사장에서 나도 모르게 그 핸드백을 재킷으로 슬쩍 덮어버리는 걸 보며 깨달았다. 내가 그 명품 백을 부끄러워한다는 걸. 그 돈이면 빈곤 아동 몇 명을 더 도울 수 있을 텐데 하는 미안한 마음이 들더라. 그 뒤론 남의 눈치 보지 않고 내가 행복한 대로 입고 든다.”
지금 행복한가.
“돌이켜 보니 배우로 유명해진 데는 그 명성을 통해 좋은 일을 하라는 하늘의 뜻이 있었던 것 같다. 세상에 온 목적을 알고 소명 받은 길을 걷고 있다 생각하니 내 인생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하다.”
 
LA 인근에 버려진 한인 아이들만 60여 명

신애라는 위탁가정(Foster Home) 프로그램에 관심이 많다고 했다.

지난해 가을 한인가정상담소에서 개최한 위탁가정 홍보 행사 소식을 듣고는 직접 관계자에게 연락을 해 연사로 나설 만큼 열성적이다. 미국의 위탁가정 프로그램은 학대·방치·빈곤 등의 이유로 친부모와 함께 살 수 없는 아동들에게 정부가 6~18개월 동안 안전하게 머무를 수 있는 임시 가정을 찾아주는 제도다.

그는 “한국에서 열심히 홍보를 한다고 해도 입양 가정 수를 늘리는 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며 “입양이 부담스러운 사람도 위탁가정 프로그램에는 좀 더 쉽게 참여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한국에서부터 위탁가정 제도에 관심이 있었던 터라 버려진 한인 아동을 위한 한인 위탁가정 모집 행사 소식을 듣고는 모른 척할 수 없었다. “LA 인근에만 버려진 한인 아동 수가 60여 명이 넘는데 이들에게 좋은 한인 위탁가정을 찾아주고 싶다는 생각에 홍보에 동참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앞으로 이 위탁가정 프로그램을 한국에도 정착시키는 데 앞장설 계획도 갖고 있다. 그는 “한국에 돌아가면 교회나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입양과 위탁공동체를 만들고 위탁가정 부모들을 위한 양육법을 가르치고 싶다”고 했다.

LA=이주현 LA중앙일보 객원기자 joohyunyi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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