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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속으로] 새끼 먹이 찾아 통영 어판장 출근…그렇게 키워도 30% 정도 살아남아

중앙일보 2016.06.18 00:31 종합 16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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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도 전경. 거제도 남단에서 18㎞ 거리에 있다.


‘괭이갈매기들이 가득한 아름다운 천국일 것’이란 추측은 뱃머리가 섬에 닿는 순간 어긋났다. 지난 10일 천연기념물 335호(1982년 지정)이자 한려해상국립공원 특별보호구역인 경남 통영시 한산면 홍도. 섬 정상의 무인등대로 올라가는 철제 계단 위에 펼쳐진 모습은 눈을 뜨고 보기 힘들었다. 알을 품은 부모 갈매기,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새끼, 그리고 부패 중인 새끼 사체가 뒤엉켜 있었다. 삶과 죽음이 한자리에 있었다. 홍도의 첫인상은 아비규환이요, 아수라장이었다.

괭이갈매기 집단 번식하는 통영 무인 등대섬 홍도

 
 

이번 방문은 국립공원관리공단의 홍도 생태계 조사에 동행하기로 하면서 이뤄졌다. 홍도는 문화재보호법과 자연공원법에 따라 일반인 출입이 금지된다. 이날 조사에는 신용석 국립공원연구원장 등 국립공원관리공단 관계자 9명이 나섰다. 조류·어류·식물 전공자들도 두루 포함됐다.

“자, 계단이 무너져 내릴 수 있으니 각자 앞뒤로 5m씩 거리를 둡시다.” 신 원장의 지시에 일행은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해발 고도 110m의 정상까지 오르는 계단은 매우 좁고 가팔랐다. 철이 녹슬어 바닥엔 발이 빠질 만한 크기의 구멍도 수두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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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통영시 한산면 홍도. 무인도인 이 섬은 국내 최대의 괭이갈매기 집단 번식지로 섬 전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다. 괭이갈매기는 매년 4월 초 거제·통영·부산 등에서 홍도로 날아와 8월 초까지 새끼를 낳고 키운다. 괭이갈매기가 많을 때는 6만4000여 마리나 된다. [사진 송봉근 기자]

홍도는 1906년 등대가 설치된 이후 등대지기가 한두 명 살았다. 하지만 2002년 무인등대로 전환되면서 철저히 무인도가 됐다. 연구진도 하루 일정으로 드나들 뿐 숙박을 하진 않는다. 낡은 계단을 손보지 않는 이유다.

폭 1m의 계단 안팎은 갈매기 천지였다. 계단 위까지 둥지를 튼 부모 갈매기는 인기척에도 좀처럼 꼼짝 않고 “까악까악” 소리를 내며 사람을 경계했다. 더러는 사람을 피해 날아오르기도 했지만 둥지를 2m 이상 떠나지 않고 곧바로 둥지로 돌아왔다.

새끼는 부모와 달리 털이 어두운 갈색이었다. 아직 날지 못해 사람이 다가오면 분주히 허둥거렸다. 혹여 사람을 피하다 철제 계단 밑으로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였다. 새끼가 남의 둥지 가까이 갈 때면 다른 부모가 날아와 새끼의 머리를 쪼아 내쫓곤 했다. 계단 위에 새끼 사체가 즐비한 까닭이다. 사체 중엔 정수리가 까져 붉은 살이 드러난 것도 많았다. 계단 양옆은 상록성 초본류인 밀사초 군락이었는데 군락 위쪽도 갈매기 떼가 덮고 있었다.

10여 분 뒤 섬 정상에 오르자 사방이 시원스레 드러났다. 땅과 하늘 모두 갈매기 차지였다. 이곳은 거제도 남단에서 18㎞, 대마도와는 48㎞ 떨어져 있다. 국내에 서식하는 갈매기는 약 20종. 괭이갈매기는 그중에서도 개체 수가 많은 축에 속한다. 갈매기보다 훨씬 덩치 큰 매 따위에게 간혹 희생되기도 하지만 해양 생태계에서 사실상 최상위 포식자다. 천적의 위협이 거의 없는 만큼 지구온난화에 따른 개체 변화를 모니터링하기에 적합하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이 홍도 괭이갈매기를 기후변화 지표종으로 지정해 정밀 관찰하는 이유다.

이 섬엔 과연 얼마나 많은 갈매기가 사는 걸까. 이나연 국립공원연구원 박사에 따르면 번식기에 홍도 갈매기는 6만4000여 마리에 이른다. 가로·세로 각 5m 크기의 방형구 5개를 설치해 그 안에서 둥지 수와 번식 밀도를 측정하는 방법으로 전체 개체 수를 추산한다.

섬 면적은 9만8380㎡인데 ㎡당 둥지가 1.1개 있다. 갈매기가 과밀하게 분포해 개체 간 생존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 번식기엔 계란 크기만 한 알을 평균 두 개 낳는다. 하지만 7월 말 또는 8월 초에 부모 갈매기와 함께 거제·통영·부산 등 육지로 떠날 수 있는 새끼는 30%밖에 안 된다.

공단에선 이 섬에 자동영상촬영카메라 두 대를 설치해 운영 중이다. 카메라는 오전 6시부터 오후 8시까지 두 시간 간격으로 전방을 촬영한다. 카메라에 찍힌 영상은 연구자들 휴대전화로 실시간 전송된다. 이를 통해 매년 번식기의 시작과 끝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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괭이갈매기가 둥지에서 새끼를 돌보고 있다.


지난해 번식기는 4월 7일 시작해 8월 7일 끝났다. 육지에 있던 갈매기들이 4월 7일부터 홍도로 돌아와 산란·부화·양육 등을 한 뒤 8월 7일에 모두 섬을 떠났다는 얘기다.

국립공원연구원 분석 결과 괭이갈매기의 산란·부화는 5년 전에 비해 약 일주일 앞당겨졌다. 이 박사는 “번식기의 괭이갈매기는 홍도 인근 해역의 멸치 등을 주요 먹이원으로 삼는데 기후변화로 해양 수온이 높아지자 새끼의 부화 시기에 가장 많은 먹이를 먹을 수 있도록 괭이갈매기가 번식기를 조절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기후변화로 바닷물 온도가 변하고 이에 따라 해양 플랑크톤과 해양 어류 생태가 바뀌면서 최상위 포식자인 괭이갈매기의 번식기에 영향을 줬다는 것이다.

개체별로 서로 다른 번호가 적힌 가락지를 발에 부착한 갈매기들도 눈에 띄었다. 갈매기의 행태와 이동 경로를 관찰하기 위해 국립공원연구원이 2012년 이후 부착한 것이다. 현재까지 홍도 갈매기 중 가락지를 부착한 녀석은 430마리가 넘는다. 이 중 한 마리는 지난해 10월 550㎞ 거리의 일본 도쿠시마현까지 날아갔다. 낚싯줄에 걸려 날개가 부러진 채 일본 어부에게 구조됐다. 홍도 괭이갈매기가 어디까지 흩어지는지 확인한 사례였다.

이날도 공단 직원들은 괭이갈매기 몇 마리를 잡아 다리에 가락지와 초소형 위치추적장치(geolocator)를 달았다. 가락지와 위치추적장치는 괭이갈매기의 생활에 지장이 없도록 초소형·초경량 부품을 쓴다. 위치추적장치는 크기가 손톱만 하며 무게는 2.5g 정도다. 추척장치를 회수해 분석하면 갈매기가 어떤 경로로 이동했는지 알아낼 수 있다.

갈매기의 등에 작은 배낭 형태의 초소형 위치발신기(GPS logger)를 달기도 한다. 무게는 15g 정도인데 갈매기가 섬 정상에 설치된 수신기 주변을 날아가면 위치 이동 정보가 수신기로 자동 전송된다. 수신기에 들어온 위치 정보를 분석한 결과 일부 갈매기는 매일 50여㎞의 통영 수협 공판장으로 ‘출근’한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공판장 등에서 버려지는 물고기 내장 등을 먹고 오는 것이다.

김미란 국립공원연구원 철새연구센터 박사도 이날 포획틀에 들어온 갈매기의 눈을 가린 뒤 익숙한 솜씨로 가락지와 위치추적장치를 달았다. 등 깃털도 두 개 뽑았다. 김 박사는 “깃털에서 탄소와 질소의 안정성 동위원소비 값을 분석하면 갈매기가 이용하는 먹이의 종과 이용 비율을 알 수 있다”며 “가락지 등을 달고 깃털을 뽑는 작업은 갈매기가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최대한 신속히 마쳐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홍도 괭이갈매기가 봉착한 위기는 지나치게 개체 수가 많아지고 기후변화로 인해 번식기가 갈수록 앞당겨진다는 점이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은 과밀 문제의 경우 인간이 개입하기보다 갈매기들 자체의 적응으로 해소돼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공단의 괭이갈매기 연구는 2011년 시작돼 올해로 6년째다. 이곳 외에도 동해상의 독도, 서해상의 백령도·서만도(인천시 옹진군), 칠산도(전남 영광군), 난도(충남 태안군)등에서 비슷한 연구를 하고 있다. 신 원장은 “괭이갈매기는 바다 생태계에서 먹이사슬의 최상위에 위치해 해양 오염물질 농축이 가장 심각하다”며 “괭이갈매기가 환경 변화로 받는 영향은 곧 인간이 이미 받고 있거나 받게 될 영향이라는 점에서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평생 일부일처…금실 좋을 수록 오래 살아

괭이갈매기는 동북아시아에 사는 텃새다. 울음소리가 고양이와 비슷해 이런 이름을 얻었다. 태어나서 4년이 지나면 번식을 한다. 수명은 30년 정도다. 특이한 점은 평생 짝을 바꾸지 않고 ‘1부1처제’를 유지한다는 것이다. 또 궁합이 잘 맞는 커플은 오래 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국립공원관리공단이 갈매기에 부착한 가락지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이런 금실은 알을 품는 과정인 포란, 부화 이후 새끼 양육에서 두드러진다. 우선 알을 품는 데 암수 구분이 없다. 알을 품고 있는 갈매기가 암컷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는 얘기다. 금실이 좋아서일까. 괭이갈매기는 외형상으론 암수가 똑같이 생겨 성별을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부부는 산란 뒤 25일간 함께 알을 품는다. 이후 새끼가 알을 까고 나오면 두 달간 함께 새끼를 키운다. 부화 이후 첫 5일은 부부가 둥지를 떠나지 않고 새끼를 지킨다. 이후엔 한 시간씩 교대로 새끼를 돌본다. 한쪽이 새끼를 돌보는 사이 배우자는 새끼에게 줄 먹이를 구해온다. 생존경쟁이 치열한 괭이갈매기 사회에선 부화 이후에도 새끼의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그리고 다른 부모로부터의 공격을 막기 위해 새끼를 품는다.

홍도(통영)=성시윤 기자 sung.siy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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