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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속으로] 디지털이 펜의 매력 100% 대체 못해 손으로 디자인 후 컴퓨터로 작업해요

중앙일보 2016.06.18 00:27 종합 17면 지면보기
창립 110주년을 맞는 몽블랑은 ‘옷과 구두를 제외한 남성의 모든 것’을 생산한다. 지금까지는 순항 중이다. 한국 등 전 세계 120여 개국에 매장을 냈다. 몽블랑 만년필은 남성 소비자에게 성공의 증표처럼 인식된다. 명함지갑은 한국 등에서 사회생활의 로망으로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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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임 카말 몽블랑 크리에이티브디렉터는 클래식 자체의 재미와 가치가 명품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고 말했다. 1909년식 ‘루주 & 누아르’ 펜을 재해석해 올해 출시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사진 몽블랑]


창립 110주년 ‘몽블랑’ 디자인 총괄 카말

하지만 고민도 많다. 필기구를 기반으로 하는 몽블랑 역시 디지털의 파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2013년 자임 카말(52) 크리에이티브디렉터(CD)를 영입하고 ‘혁신’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파키스탄 태생인 카말은 비비안웨스트우드와 스와로브스키(부사장)에서 잔뼈가 굵은 액세서리 디자이너다. 몽블랑이 ‘인생의 동반자’라는 콘셉트를 강화하기 위해 영입했다. 최근 몽블랑 신제품 전시회 ‘블랙 앤드 화이트 위크’ 방문차 방한한 카말 CD를 만났다(괄호 안은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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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주년 기념 ‘루주 &누아르’ 펜.

 
이번 시즌에서는 1909년작 ‘루주 & 누아르(Rouge & Noir·적과 흑)’ 펜을 재해석한 라인을 선보였다.
“루주 & 누아르는 몽블랑의 첫 만년필 모델이다. ‘초심’을 키워드로 잡았다. 그 당시 창업정신인 혁신을 되새기고자 했다. 디자인적으로는 당시 인기였던 ‘아르누보(Art Nouveau)’ 모티브를 상기시키는 뱀 무늬로 포인트를 줬다. 또한 펜 외에 시계·가죽제품·액세서리 등 다른 카테고리에도 뱀 무늬와 빨간색을 적용한 제품들을 출시했다.”
하지만 지금은 디지털 시대다. 펜과 스마트기기의 공존이 가능할까.
“영원한 숙제겠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몽블랑은 ‘오래 쓸 수 있는 것’이라는 방향성으로 스마트기기와의 접목을 꾀하고 있다. 이스트랩(e-strap) 같은 것이 그렇다. 스마트워치는 2년마다 바꿔야 하지만 시곗줄은 그보다 오래간다. 그래서 스마트워치 대신 스마트워치와 연동이 가능한 기기를 만들어 시곗줄 형태로 만들었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에 바로 대고 쓸 수 있는 ‘스타워커 스크린라이터’도 있다. 몽블랑 만년필의 필기감을 디지털 기기에서 구현한 디지털펜이다. 하지만 펜 그 자체의 매력은 결코 디지털이 100% 대체할 수 없다. 인간이 표현하고 싶은 욕구가 있는 한 필기문화는 어떤 방식이든 계속될 것이다. 나 역시 제품을 디자인할 때 노트와 펜으로 그리면서 구상할 때가 많다. 펜으로 그린 디자인을 스캔해 컴퓨터로 작업할 때도 많다.”
기존 4대 사업군(필기구·시계·가죽제품·액세서리) 외에 디지털 기술과 융합한 제품 카테고리가 생겨난다는 이야기인가.
“확정된 것은 없다. 하지만 필기구나 시계 등 기존 제품이 (새로운 기술과 결합해) 더욱 확장될 것이라는 점은 확실하다.”
기계식 시계 사업자로서 전략은.
“기계식 시계를 만드는 회사로서 ‘클래식 자체의 재미와 가치’를 극대화하려고 한다. 이 시계(빌르레 메타모포시스2)를 보라. 746개 부품과 투르비옹이 정교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버튼 하나를 누르면 마치 트랜스포머처럼 표면이 갈라지고 원판이 올라온다. 건전지나 모터는 당연히 없다. 예술 작품 같은 시계를 소장하고 또 즐기는 재미를 전달하는 것이 목표다.”

(카말 CD가 소개한 ‘빌르레 투르비옹 바이실린드리크’는 지난해 전 세계에 3개 한정으로 발매됐다. 기계식 시계의 재미와 기술력을 극대화해 애호가들에게 호평을 받았다. 개당 가격이 3억원이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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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르레 투르비옹 바이실린드리크’ 시계.

 
몽블랑 명함지갑은 한국 직장인들에게 로망으로 꼽힌다.
“잘 알고 있다. 비단 한국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비슷하다. 단지 몽블랑이어서라기보다 성공한 고객이 몽블랑을 갖고 있다는 조합이 성공의 ‘표현’으로 인식된 것이라고 본다. 그 표현 방식에 대해선 꾸준히 고민하고 있다.”

‘왜 명품이냐’는 물음은 오늘날 한국 면세점 시장에도 유효한 화두다. 지난해부터 갤러리아63·신라아이파크·신세계·두타·SM 등 신규 서울시내 면세점이 5곳이나 들어섰다. 올 연말에는 4곳이 추가로 더 생긴다. 경쟁이 치열해진 면세점들은 저마다 명품 브랜드를 유치하려 하고, 명품 업체의 콧대는 더 높아진다. 해법을 묻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세일즈맨은 일단 판매 전략과 마케팅 계획부터 들이댄다. 하지만 왜 이 브랜드를 유치하고 싶은지, 자신들의 면세점이 어떤 가치를 주는지에는 일언반구도 없다. 하지만 명품을 입점시키려면 왜 우리 매장인지를 설득하는 것이 먼저다. 그 첫걸음은 면세점 자체의 럭셔리 이미지 구축일 것이다.”

카말은 완곡하게 말했지만 그의 대답은 “도떼기시장 같은 면세점에 명품은 안 된다”는 비판으로 들리기에 충분했다.
 
엠블럼은 알프스 최고봉 몽블랑 정상 본따

몽블랑은 1906년 독일의 은행가인 알프레트 네헤미아스와 엔지니어 아우구스트 에버스타인이 창업했다.

당초 ‘심플로 필러 펜’이라는 회사로 창업했으나 1909년 몽블랑으로 개명했다. 몽블랑의 트레이드마크 격인 검은색 동그라미에 하얀 별 모양 엠블럼이 생긴 것도 이때다. 유럽에서 가장 높은 산인 몽블랑의 정상을 형상화한 상징이다.

창업 초기에는 펜 하나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펜·시계·가죽제품·주얼리 등 네 가지 카테고리를 생산한다. 몽블랑의 공방은 필기구를 만드는 독일 함부르크, 시계를 만드는 스위스 르로클·빌르레, 가방·지갑 등 가죽제품을 만드는 이탈리아 피렌체 등에 있다. 제작 과정에서 몽블랑은 과거와 미래의 융합을 추구한다. 나무로 부품을 깎아서 시계를 만드는 장인과 첨단 소재로 스마트폰용 펜을 만드는 엔지니어가 한 공방에서 공존한다.

필기구에서 시작한 브랜드로서 몽블랑은 문화와 예술 후원에도 앞장선다. 1992년 설립된 몽블랑 문화재단은 독일 함부르크 본사에서 ‘몽블랑 커팅 에지 아트 컬렉션’이라 불리는 전시회를 연다. 몽블랑은 또 ‘몽블랑 문화예술 후원자상’을 제정, 매년 문화융성에 기여한 사람에게 시상하고 있다.

이현택 기자 mdf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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