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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경의 남자를 위하여] 이상하고 아름다운 남자들의 나라

중앙일보 2016.06.18 00:01 종합 24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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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경
소설가

태초에 남자의 투사가 있었다. 에덴동산의 아담은 선악과를 따먹은 이유가 이브의 유혹 때문이라면서 자기 행위에 대한 책임을 여자에게 전가했다. 중세의 마녀사냥도, 니체의 유명한 여성 혐오도 무의식 속 여성에 대한 두려움을 여성 일반에게 투사한 결과였다.

심리학 영역에도 남성 학자들의 투사가 있었다. 히포크라테스는 신경증 성향이 여성에게만 나타나는 증상이라 여겨 자궁에 어원을 둔 명칭을 붙였다. ‘마치 인양’ 인격 역시 처음에는 여성에게서만 발견되는 증상이라 진단되었다. 의존성은 여성 전유물로 여겨졌다. 남자들은 의존성이 충족되지 않으면 분노를 폭발시키고 알코올·도박·섹스 등 대체물에 중독되면서도 그것이 의존성이라는 사실을 외면해왔다.

우리 문화도 남성 투사의 역사였다. 여자와 북어를 사흘에 한 번씩 두드렸던 이유는 남자들이 내면의 스트레스를 주기적으로 해소해야 했기 때문이다. 김유신이 기생집으로 향하는 말의 목을 벤 것은 자신의 죄의식과 우유부단함을 말에게 전가한 행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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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은 호색이라는 말도, 취중 잘못에 관대한 문화도 남자들이 내면의 불편한 감정을 바깥으로 내던지는 행위를 합리화하는 언어였다. “여자는…” 혹은 “여자가…”로 시작되는 통제의 언어는 남성중심 사회가 만들어 유포시킨 ‘투사적 여자 사용설명서’였다.

오늘날에도 남자의 투사는 지속된다. 자기 아이와 여자를 버리고 도망친 남자에게는 아무것도 묻지 않으면서, 미혼모만 비난하는 문화는 남자들이 공범자의 죄의식을 미혼모 여성에게 전가한 결과다. “열세 살 1개월짜리 아이도 스스로 원해서 섹스할 권리가 있다”는 제도는 어린 여자를 욕망하는 남자들의 죄의식을 아이에게 떠넘긴 결과물이다. 개인 남자든 남성사회든 문제가 생기면 여성을 비난, 통제, 희생시키는 투사적 해법을 즉각 떠올린다.

남자의 이면을 알게 된 후배 여성이 말했다. “정자 한 톨 세상에 남기는 것 외에 남자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존재군요.” 그것은 여성이 자주 하는 투사의 언어였다. 틀림없이 이상한 측면이 있지만 이 아름다운 세상을 만든 주체 또한 남성 종족이다. 그들이 세계의 변방을 탐험하고 지상의 문명을 건설해왔다.

다만 임무가 무거워 희생양을 필요로 했고, 경쟁이 심화되어 세계를 파괴하는 성향이 있을 뿐이다. 그러자 다른 여성이 물었다. “그렇다면 남자들이 망쳐놓은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나요?” 그것 역시 투사의 언어지만 답하지 못했다. 답이 먼 곳에 있을까 봐 두려웠다.

김형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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