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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현의 시시각각] 청와대는 롯데를 왜?

중앙일보 2016.06.18 00:01 종합 26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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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현
논설위원

검찰의 롯데그룹 수사를 해석하기 위해선 ‘드론’이라도 필요할 것 같다. 검찰이 롯데를 겨냥하게 된 배경에 어떤 정치적 힘이 작용했는지와 그 동력의 파장을 측정하려면 아무래도 숲에선 벗어나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 주말 검찰의 압수수색 이후 롯데를 둘러싼 각종 의혹이 봇물처럼 터져나오고 있지만 일반인은 여전히 길을 잃고 미로를 헤매는 느낌일 것이다.

시간과 공간을 로마의 원형 경기장으로 옮겨보자.

전임 황제의 신임을 받았고 귀족의 약혼녀였던 샤롯데는 왜 검투사와 사자가 기다리는 경기장으로 끌려 나와야만 했을까. 환호하는 관중 틈에 무표정하게 앉아 있는 황제는 시민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던지려 할까. 종국에는 엄지손가락을 밑으로 내릴까, 아니면 위로 들어 올릴까.

다시 2016년 6월 한국.

4·13 총선의 충격적 패배로 비틀거렸던 청와대는 정국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고심 중이었다. 정권의 특성상 두 가지 옵션을 가정할 수 있다. 경제 살리기를 통해 국민적 지지를 받을 것인가, 아니면 기강 확립을 통해 흐트러진 민습을 수습할 것인가. 경제는 이미 헝클어져 회복엔 시간이 걸릴 것으로 판단한 것 같다. 남은 선택은 ‘대통령의 칼’인 검찰을 움직이는 것.

하지만 청와대와 검찰에게 생각지 못한 암초가 나타났다. 홍만표·진경준 등 전·현직 검사장들의 부정축재 의혹 사건이 불거진 것이다. ‘잘 드는 칼’은 녹이 슬 조짐마저 보였다. 언론과 야당은 연일 검찰과 법원의 부조리를 공격했다.

20대 국회가 개원하면서 두 사건에 대한 특검제 도입 공방이 불가피한 분위기였다. 청와대는 정무수석 등 일부 참모진을 교체했고, 검찰은 이틀 뒤 압수수색을 벌였다. 검찰이 두 사건을 덮기 위해 롯데 수사를 한 것이 아니라 사건이 정치적으로 변질되는 것을 막기 위한 정치적 고려가 작용했다는 것이 적절한 해답으로 보이는 이유다. 청와대의 선제공격이라는 얘기다.

검찰 고위직 출신 변호사의 설명.

“청와대는 야당이 특검법 도입 등을 명분으로 주도권을 쥘 경우 정국 관리가 어렵다고 판단한 것 같다. 검찰의 입장에선 도마 위에 던져진 생선을 요리하는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수사는 검찰이 하지만 선택은 검찰이 하지 않은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의미다.

비슷한 증언은 여러 곳에서 나왔다. 현직 검찰 간부는 “서울중앙지검이 롯데 사건에 대한 수사를 서둘러 한 흔적이 있다. 특수4부와 첨단범죄수사1부를 급히 투입한 것은 숙제를 빨리 해야 하는 분위기와 비슷하다”고 말했다.

왜 롯데였을까.

전직 검찰총장은 “ 재벌그룹 수사는 사회적·경제적 가치 기준을 벗어난 행위에 대한 강력한 경고의 의미를 담아야 하며 이를 위해선 고도의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청와대와의 암묵적 합의를 통해 하명 사건을 인지수사 형태로 포장하는 것도 전략 중 하나다. 선택과 집중의 수사가 요구되며, 수사의 품질을 높이기 위해선 검찰 내부의 의사 결집은 물론 청와대와의 소통, 여론의 지지가 매우 중요하다고 했다. 지난해부터 형제끼리 경영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데다 국부유출 논란까지 겹친 롯데가 필요충분조건을 갖춘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래서 수사의 파장은 섣불리 예상할 수 없다.

여론은 지난해 포스코 수사의 예를 들어 신속하고 정확한 외과수술식 수사를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포스코 수사에 대한 청와대의 평가가 일반인과는 거리가 있다는 데 함정이 있다. 청와대는 여전히 포스코 수사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분위기다. 그렇다면 롯데에 대한 수사도 정권의 국정운영에 맞춰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검찰은 롯데 오너 일가에 대한 처벌을 목표로 수사를 진행하지만 청와대는 상대적으로 느긋하게 수사 상황을 관전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검찰의 롯데 수사는 국가 경영에서 필요한 또 하나의 전략적 선택이었다는 해석이 설득력을 가진다.

박재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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